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다만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보도를 걷는다.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턴)는 아들 헌터(헌터 카슨)에게 가까이 가고…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다만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보도를 걷는다.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해리 딘 스탠턴)는 아들 헌터(헌터 카슨)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그러나 4년 동안 사라졌던 아버지를 아이가 곧바로 반길 수는 없다. 두 사람은 떨어져 걸으며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 한다.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사실보다, 함께 놀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경험이 먼저 거리를 좁힌다.
이 장면에 이르기까지 트래비스는 사막을 걷고 자동차를 타며 먼 길을 왔다. 하지만 그가 건너기 가장 어려운 거리는 아들과 나란히 서기 위해 필요한 몇 걸음이다. 영화는 가족을 다시 찾는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찾았다는 사실만으로 관계가 회복된다고 서두르지 않는다. 돌아온 사람의 간절함과 기다리지 않으며 살아온 사람의 생활이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머리에서 트래비스는 붉은 모자를 쓴 채 사막을 걷는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동안 관객은 메마른 풍경과 지친 몸을 먼저 보게 된다. 로비 뮐러가 촬영한 넓은 하늘과 땅, 라이 쿠더의 기타 소리가 이 남자 곁을 채운다.
트래비스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동생 월트(딘 스톡웰)가 그를 데리러 온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서 트래비스에게도 조금씩 관계가 돌아온다. 홀로 걷는 사람이라면 다음 걸음을 내디디면 그만이지만, 가족에게 돌아가려면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과 맞춰야 한다. 왜 사라졌는지 묻는 사람도 생기고, 그가 없던 시간을 대신 견딘 사람도 만나야 한다.
월트와 그의 아내 앤(오로르 클레망)은 그동안 헌터를 길렀다. 트래비스에게 4년은 잃어버린 가족을 향한 공백일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아이와 함께 살아온 구체적인 시간이다. 영화의 여정에 마음이 쏠릴수록 이 부부가 마련한 일상을 쉽게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헌터가 낯선 아버지를 받아들이기까지의 머뭇거림에는 이미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정도 들어 있다.
그래서 트래비스가 아버지다워지려 애쓰는 모습은 뭉클하면서 어색하다. 오래 비웠던 자리에 돌아왔다고 그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는 않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도 처음부터 가까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도로 양쪽에서 서로를 따라 하는 장면은 그 어려움을 훈계 없이 보여준다. 아이를 성큼 끌어당기기보다 아이가 반응할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는 편이 관계를 시작하게 한다.
가족이 함께 찍었던 옛 영상을 볼 때, 관객은 아내 제인(나스타샤 킨스키)의 모습을 먼저 만난다. 필름 안에서는 사람들이 웃고 어울린다. 화면을 보는 지금의 가족은 그때와 다르다. 흩어진 사람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이지 않았지만 영상은 예전의 시간을 계속 재생할 수 있다.
이 장면의 아픔은 한때 행복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는 데만 있지 않다. 같은 영상을 보아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 트래비스에게는 자신이 함께 살았던 시간이지만, 어린 헌터에게는 지금의 기억만으로 온전히 붙잡기 어려운 엄마의 모습이다. 영상은 가까이 데려다주는 동시에 얼마나 멀어졌는지도 알려준다.
제인을 곧바로 현재의 인물로 만나지 않는 구성도 그 거리와 연결된다. 우리는 먼저 트래비스가 그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남아 있는 이미지로 그의 모습을 짐작한다. 그러다가 실제 제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때부터는 찾는 사람의 사연만으로 이 가족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자기 시간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트래비스가 제인과 마주하는 곳에는 두 사람을 가르는 유리가 있다. 제인은 남자 손님과 대화하는 일을 하며, 그 구조상 손님은 제인을 볼 수 있지만 제인은 손님을 볼 수 없다. 두 사람은 가까이 있어도 서로를 같은 조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익숙한 얼굴을 찾는 여행이, 얼굴을 마주 보기조차 어려운 방에 도착한 것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촬영 때도 실제로 한쪽에서만 보이는 거울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킨스키는 상대 배우의 얼굴 대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연기했다. 제인이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대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목소리에 반응하면서도 눈으로 상대를 확인할 수 없는 조건이 배우에게도 주어졌다.
트래비스는 과거를 곧장 자기 이야기라고 꺼내지 않고 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처럼 시작한다. 남의 일로 말할 때 가까스로 할 수 있는 고백이 있다. 그렇다고 거리를 두어 말하면 자기 책임도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들려주는 지난날에는 상대를 잃을까 두려워 그 사람을 통제했던 시간이 있다. 이제는 그 사랑을 그리웠다는 말 하나로 아름답게 정리할 수 없다.
관객은 사막에서부터 이 남자를 따라왔고, 아들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응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인에게 기울이는 관심에는 더 주의가 필요하다. 트래비스가 얼마나 괴로웠는지만 들으면 그의 후회가 이야기의 전부가 된다. 제인이 말을 시작하면 그가 떠나온 자리에서 다른 사람도 자기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킨스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이유도 그 아름다움만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뒤늦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된 사람의 얼굴이다.
〈파리, 텍사스〉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리라는 기대를 조금씩 바꾼다. 헌터는 아버지와 새롭게 친해져야 했고, 제인은 기억 속의 모습에 머물지 않았다. 월트와 앤에게도 함께 보낸 시간을 갑자기 없는 일로 만들 수 없는 아이가 있다. 돌아온 한 사람의 바람만으로 이들의 삶을 정할 수는 없다.
벤더스는 트래비스와 제인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구상하면서 서로를 볼 수 있는 조건의 차이에 주목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면 영화 앞부분의 보도도 다시 떠오른다. 헌터와 트래비스는 떨어져 걸으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제인과 트래비스 사이에도 간절함으로 곧장 넘어갈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해도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의 감정을 가족을 되찾았는지 잃었는지로만 정리하기는 어렵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마음에는 곁에 있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상대가 원하는 삶까지 대신 정할 권한이 생기지는 않는다. 〈파리, 텍사스〉의 여정이 오래 남는 것은 그 차이를 머리로만 이해하게 하지 않아서다. 다가가고 싶은 남자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사람을 같은 화면 안에서 보게 한다.
도로 건너편에서 아들을 따라 걷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서툴고 작은 기쁨이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아이의 움직임에 응답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먼저 되찾으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까워짐은 그렇게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애틋하다.
◆ 두 보도에서 함께 걷는 부자 — 트래비스가 아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지보다, 아이의 반응에 어떻게 맞추는지 살펴보자. 몸짓을 따라 하는 동안 낯섦이 놀이로 바뀐다. 아버지라는 설명보다 함께 보낸 짧은 경험이 관계를 움직이는 장면이다.
◆ 옛 영상을 보는 지금의 얼굴 — 필름 속 가족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번갈아 살펴보자. 행복했던 순간이 다시 보인다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영상이 누군가에게는 선명한 추억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미한 기억이라는 차이도 있다.
◆ 유리 양쪽의 다른 조건 — 제인과 트래비스 중 누가 상대를 볼 수 있고 누가 목소리에 의지하는지 따라가보자. 얼굴을 주고받는 평범한 대화와 달라서, 잠깐의 침묵이나 말의 변화에도 더 집중하게 된다. 트래비스의 고백을 듣는 동안 제인의 경험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기타 소리 — 초반 트래비스가 말을 하지 않는 시간에 라이 쿠더의 음악이 풍경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들어보자. 감정을 설명하는 대사가 없어도 사람이 놓인 거리와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후 긴 대화가 등장할 때, 영화가 그 목소리를 듣기까지 마련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가족의 죽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남자가 조카와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마주한다.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지난 일을 견딜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 가까운 사람을 아끼는 마음과 함께 살 수 있는 능력 사이의 차이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 〈애프터썬〉 (2022, 샬럿 웰스) — 아버지와 함께한 여행을 딸이 남은 영상과 기억으로 돌아본다. 한때 곁에 있었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을 모두 알았던 것은 아니다. 〈파리, 텍사스〉의 가족 영상을 떠올리며 보면, 기록 속 얼굴에 나중의 시간이 더하는 감정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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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