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에선 쓰레기도 케이블카를 탄다 | MovieLAB LAB

눈 덮인 산 위로 쓰레기차가 건너간다.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카에 매달려 있다. 〈아름다운 쓰레기 여행〉에 나오는 스위스 산악 휴양지에서는 쓰레기를 나르는 데도 이런 …

휴양지에선 쓰레기도 케이블카를 탄다 | MovieLAB LAB

눈 덮인 산 위로 쓰레기차가 건너간다.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카에 매달려 있다. 〈아름다운 쓰레기 여행〉에 나오는 스위스 산악 휴양지에서는 쓰레기를 나르는 데도 이런 수고가 필요하다. 깨끗한 풍경을 보러 온 사람이라면 쉽게 떠올리지 못할 광경이다. 관광객이 올라오는 길과 쓰레기가 내려가는 길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같은 운송 수단에 올라탄다.

쓰레기봉투를 집 밖으로 내놓으면 우리 몫은 대체로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진다. 차에 싣고, 먼 곳으로 운반하고, 가려내고, 태우거나 묻는다. 누군가는 우리가 잊어버린 물건을 계속 옮기고 있다. 감독 니콜라우스 게이할터는 쓰레기로 뒤덮인 장소만큼이나, 그곳을 치우려고 사람들이 벌이는 일에 관심을 둔다. 청소가 끝난 풍경에는 잘 남지 않는 사람들의 영화이기도 하다.

깨끗한 풍경에도 뒷문이 있다

이 영화의 여행 코스는 휴양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묘하게 겹친다. 산으로 가고, 바닷가로 가고, 물속에도 들어간다. 달라지는 것은 카메라가 찾아가는 대상이다. 멋진 풍경을 방해하는 물건들을 화면 밖으로 치우지 않는다. 바닷속에서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사람들까지 따라가면, 눈에 띄는 해변을 청소하는 일과 바다 전체가 깨끗해지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된다.

카메라가 보여주는 공간은 넓다. 쓰레기 하나를 가까이 들이대기보다 주변 풍경과 함께 놓아두는 화면에서는 관객도 조금 더 살펴보게 된다.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던 화면에서 플라스틱과 버려진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풍경에 감탄하던 시선이 천천히 달라진다. 자연이 훼손됐다는 설명을 먼저 들을 때와는 다른 순서다. 처음에 무엇을 못 보고 지나쳤는지 스스로 알아차리는 시간이 생긴다.

그렇다고 아름다움을 모두 눈속임으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쓰레기차가 산을 건너는 모습은 신기하고, 그 운송 방법에는 생활의 궁리도 담겨 있다. 문제는 깨끗하게 유지된 장소만 보고 그것이 원래의 상태라고 여기는 데 있다. 산에 올라간 물건을 다시 내려보내려면 누군가 차를 준비하고 운송 시설을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즐기는 풍경에도 매일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뿌연 먼지 속에서 사람들이 긴 도구를 들고 걸어오고 있다

버리는 데는 잠깐, 치우는 데는 하루

네팔에서는 쓰레기차가 매립장에 도착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비가 쏟아져 길을 다니기 어려워진다. 감독은 조사할 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이 운반 과정이 현장에서 중요한 촬영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쓰레기 처리라고 하면 대개 마지막에 쌓인 산더미를 생각한다. 이 영화는 거기까지 가는 길에도 시간을 쓴다.

차가 움직이고 물건이 옮겨지는 과정을 오래 보면, 빠르게 지나가는 뉴스 화면에서는 알기 어려웠던 수고가 보인다. 한 번 힘을 썼다고 곧바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기계를 가져다 놓아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남아 있다. 거대한 시설을 운용하는 노동과 손으로 하나씩 집어내는 노동이 한 영화 안에 들어온다. 둘 가운데 어느 쪽을 더 대단하게 칭찬하기보다, 이렇게 많은 작업이 있어야 우리가 버린 것이 처리된다는 사실부터 실감하게 한다.

감독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인터뷰도 했지만 최종 영화에는 대부분 쓰지 않았다. 각자의 일터를 잘 아는 사람에게 전 세계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답까지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명을 줄인 선택이 현장의 사람들을 말없는 배경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일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볼 여유가 생긴다.

이때 관객의 조급함도 영화의 일부가 된다. 이제 무슨 작업인지 알겠으니 다음 장소로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화면 속의 일은 계속된다.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실제로 일을 마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같지 않다. 지켜보기만 하는 우리에게 길게 느껴지는 과정을 누군가는 날마다 되풀이한다. 쓰레기 문제가 크다는 말에 노동의 무게가 더해진다.

초록 산자락 옆으로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높게 쌓여 있다

땅속에 넣어두면 없어진 걸까

스위스 졸로투른에서는 굴착기가 땅을 판다. 흙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수십 년 전 묻어둔 쓰레기다. 풀이 자라고 겉모습이 달라졌어도, 땅속 물건들은 다시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매립이 끝났던 자리가 다른 세대의 작업 현장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장면은 영화의 여러 장소를 연결해준다. 산에서 내리든 땅에 묻든 물건은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소각 시설에서도 태운 뒤의 잔여물은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처리 방법이 똑같다거나 재활용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다. 수고의 결과를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 다만 집 앞에서 가져간 쓰레기봉투가 그 순간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기 어렵게 한다.

여러 나라의 현장을 차례로 보여주지만, 영화는 어느 나라가 가장 깨끗한지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최신 시설과 거대한 노천 매립장을 비교하면 곧장 우열을 가리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처리에 쓸 수 있는 자원이 다른 데다, 더 좋은 시설을 갖춘 나라들이 더 많이 소비하고 버리기도 한다는 점을 짚는다. 처리장의 외관만으로 책임을 따질 수는 없다.

그래서 먼 나라의 쓰레기 더미를 낯선 사회의 문제로 구경하기가 어렵다. 봉투에 넣고 배출 요일을 지키는 우리의 생활도 이 운반과 처리 과정에 연결된다. 영화는 관객에게 갑자기 완벽한 실천가가 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누구에게 넘어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분리배출을 잘했다는 안도감 옆에, 그다음 일을 맡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는다.

축제보다 오래 남는 뒤풀이

네바다 사막의 버닝맨 행사에서는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세심하게 정리한다. 커다란 쓰레기만 치우면 끝나는 청소가 아니다. 작은 흔적까지 찾아내야 한다. 원제인 ‘Matter Out of Place’도 그곳에서 쓰는 표현에서 왔다. 원래 그 환경에 없던 것을 사람들이 가져왔다면, 다시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축제가 끝난 뒤의 청소에 이렇게 오래 머무는 영화는 드물다. 관객이 기억할 만한 장관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른 종류의 공동 작업이 시작된다. 즐거운 행사를 함께 만드는 일과 그 흔적을 함께 치우는 일이 떨어져 있지 않다. 이들의 부지런함이 앞서 본 세계 곳곳의 쓰레기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함께 사용한 장소를 어떻게 떠나야 할지 직접 몸을 움직이며 답하는 모습에는 관심이 간다.

〈아름다운 쓰레기 여행〉은 깨끗해진 집으로 돌아간 뒤에 생각날 법한 영화다. 봉투를 내놓은 뒤 텅 빈 자리를 볼 때, 그 자리가 왜 비어 있는지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로 떠난 쓰레기와 그것을 맡은 사람에게는 아직 하루가 남아 있다. 이 영화가 굳이 따라간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생략해온 그 하루다.

감상 포인트

◆ 케이블카에 실린 쓰레기차 — 낯선 운송 방법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차가 왜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관광객이 즐기는 깨끗한 장소를 유지하는 데 드는 노동과 시설이 드러난다. 휴양 풍경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던 생활을 같은 화면에서 볼 수 있다.

◆ 작업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는 화면 —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한 뒤에도 장면이 이어질 때, 사람과 기계의 움직임을 조금 더 따라가보자. 처음에는 한 덩어리로 보이던 작업이 여러 단계로 나뉜다. 긴 촬영이 규모를 강조하는 데만 쓰이지 않고 노동의 시간을 전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땅 위와 땅속의 차이 — 졸로투른의 굴착 장면에서는 표면의 풍경과 파낸 물건을 함께 살펴보자. 눈에 보이지 않게 됐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매립이나 소각을 볼 때도 처리 뒤에 무엇이 남는지 궁금해지는 장면이다.

◆ 사막에 남은 작은 흔적들 — 행사 뒤 청소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찾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자. 거대한 기계가 등장하던 장면과는 규모도 속도도 다르다. 물건을 가져오는 일과 다시 가져가는 일을 한 과정으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된다.

관련 작품

◆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아녜스 바르다) — 수확 뒤 남은 농산물과 버려진 물건을 줍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 영화가 버린 뒤의 운반과 처리를 따라간다면, 바르다는 누군가 버린 것에서 다른 누군가가 무엇을 발견하는지 살핀다. 같은 물건이 누구에게는 쓸모없고 누구에게는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 〈곤돌라〉 (2023, 파이트 헬머) — 산골 마을의 케이블카를 오가는 두 여성의 관계를 대사 없이 그린다. 여기서는 케이블카가 노동의 수단이자 마음을 전하는 장소가 된다. 기능만 보고 지나치기 쉬운 운송 시설에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풍부하게 얽혀 있는지, 한결 가벼운 분위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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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