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맛을 배웠는데, 엄마는 먹지 못한다 | MovieLAB LAB

갈비를 손질할 때 살을 뼈에서 완전히 떼어내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배운 방식이다. 〈커밍 홈 어게인〉의 창래(저스틴 전)는 그 손길을 따라 가족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어머니(…

엄마의 맛을 배웠는데, 엄마는 먹지 못한다 | MovieLAB LAB

갈비를 손질할 때 살을 뼈에서 완전히 떼어내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배운 방식이다. 〈커밍 홈 어게인〉의 창래(저스틴 전)는 그 손길을 따라 가족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어머니(재키 정)가 해주던 음식을 이제 아들이 만든다. 다정한 보답이 될 법한 일인데, 이 집에서는 그렇지만도 않다. 위암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음식을 제대로 먹기 어렵다.

창래는 뉴욕의 생활을 접고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곁을 지키려는 마음은 분명하지만, 막상 곁에 있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재료를 고르고 조리법을 익혀도 병을 물리칠 수는 없다. 이 영화의 식사는 정성을 쏟은 만큼 좋은 결과가 돌아오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창래는 부엌을 떠나지 않는다. 배운 대로 손을 움직이는 동안만큼은 어머니에게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요리하는 손을 오래 보는 이유

이 영화에는 완성된 요리만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고기를 손질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손이 화면에 머문다. 맛있는 접시를 빠르게 늘어놓아 식욕을 돋우기보다, 한 끼를 차리는 데 실제로 드는 시간을 느끼게 한다. 평소 식탁에 앉아 기다리기만 했다면 보지 못했을 일들이다. 창래는 이제 그 일을 직접 한다.

연출을 맡은 웨인 왕은 요리 장면을 위해 셰프 코리 리의 도움을 받았다. 배우들은 실제 조리법을 배웠고, 손을 가까이 찍는 일부 장면에는 셰프가 직접 참여했다. 집에서 쓰는 양념과 도구도 손봤다. 음식이 단지 모자의 사랑을 상징하는 예쁜 소품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였다. 갈비를 대하는 손에 익숙한 생활이 있어야, 그 손을 배워가는 아들의 시간도 믿을 수 있다.

어머니의 조리법은 계량과 순서만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왔는지, 누가 그 음식을 만들었는지까지 떠올리게 한다. 창래가 익히는 것은 새 요리이면서 오래된 가족의 습관이다. 그 습관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동시에 요리법이 남는 것과 가르쳐준 사람이 남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부엌의 시간이 더 애틋해진다.

살과 뼈의 관계를 모자 사이에 겹쳐보도록 만든 것은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징을 알아봤다고 해서 이 장면을 다 본 것은 아니다. 손에 힘을 얼마나 주고 어느 부분을 남겨야 하는지 살피는 일은, 설명 한 줄로는 대신할 수 없는 배움이다.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기억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자기 손에도 남아 있는 순간. 이 영화는 그런 기억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창가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여성과 남성

착한 아들이라고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머니는 도움받는 모든 일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 아들의 손을 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창래에게는 곁에서 돕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어머니에게는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몸과 생활이 있다. 아들이 걱정할수록 어머니가 순순히 기대게 되는 관계가 아니다. 돌보려는 사람의 뜻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뜻이 다를 수 있다.

가족 사이에도 의견이 갈린다. 누나 지영(크리스티나 줄라이 킴)은 치료를 더 이어가길 바라지만 창래는 어머니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구도 어머니를 잃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마음만으로 같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 가족이 모였는데도 창래가 편안해지지 않는 것은, 함께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일과 당장의 돌봄을 나누는 일이 꼭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 창래가 불편함을 드러내는 장면에도 답답함이 배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말을 이 아들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웨인 왕은 원작자에게 들은 실제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장면을 더했다. 방문객이 옳은지 아들이 옳은지 판정하기에 앞서, 다들 무언가 말하려 하는 자리에서 창래는 자신이 겪는 시간을 아무도 충분히 모른다고 느끼는 듯하다.

저스틴 전의 창래는 지극한 효심을 흐트러짐 없이 보여주는 인물이 아니다. 돌보는 중에도 짜증과 분노가 생긴다. 그 감정을 어머니를 덜 사랑한다는 증거로 읽으면 이 인물에게 남는 자리가 너무 좁아진다. 좋은 아들이 되고 싶은 사람도 지치고, 지쳤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에게 더 화가 날 수 있다. 영화는 그 불편한 모습까지 아들의 얼굴에 남긴다.

어두운 방과 식탁 너머 밝은 창가에 서 있는 사람

같은 집에서 다른 시간이 겹친다

현재의 간병 사이로 어머니와 보냈던 시간이 들어온다. 기억 속 어머니는 병든 몸으로 누워 있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아들에게 기대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 시간을 함께 볼 때 창래가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이별을 앞둔 환자라는 설명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얼굴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뚜렷하게 구획해 차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감독은 창래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기억에 가깝게 시간을 다루었다고 말했다. 배우의 외양도 매번 크게 바꾸지 않았다. 관객은 연도와 나이를 계산하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불쑥 떠올릴 법한 말을 듣는다. 이미 지나간 일도 아픈 사람 곁에서는 갑자기 현재의 대화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

이 방식은 모자의 지난 관계를 완벽하게 복원해주지는 않는다. 기억하는 사람이 창래라는 점도 남아 있다. 그때 어머니가 정확히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들은 지금도 다 알지 못할 것이다. 돌아온 집에서 조리법은 다시 물어볼 수 있어도, 떨어져 지낸 시간을 전부 돌려받을 수는 없다. 창래가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도 조급해 보이는 이유를 여기서 헤아려볼 수 있다.

아무 일 없이 곁에 앉아 있는 시간

이 영화는 소설가 이창래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출발했다. 웨인 왕에게도 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두 사람의 경험이 만났다고 해서 영화가 무엇을 느껴야 할지 계속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감독은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잠시 앉아 있는 시간부터 충분히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인물이 이미 누군가를 돌보는 하루 안에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대부분의 장면에는 감정을 이끄는 배경음악이 없다. 대신 집 안팎의 작은 소리와 침묵이 들린다. 관객이 금세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어지는 순간에도, 창래는 그 집에 남아 있어야 한다. 반복되는 일과 기다림은 간병의 주변 풍경이 아니라 간병의 상당 부분이다. 조용한 시간을 지나며 그의 다정함뿐 아니라 피로에도 조금 가까워진다.

그래서 식탁을 차리는 일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기 어렵다. 어머니가 아들이 만든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다고 해서, 부엌에서 보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정성이 기적을 만들어야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싶지도 않다. 갈비를 손질하는 손에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이미 남아 있다. 창래가 지키고 싶었던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어도, 이제 그 손길까지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감상 포인트

◆ 갈비를 손질하는 손 — 완성된 음식이 나오기 전의 과정을 충분히 보자. 창래가 배우는 조리법에는 어머니가 가족을 먹여온 시간이 담겨 있다. 음식의 상징을 알아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군가의 습관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따라볼 만하다.

◆ 도움을 거절하는 어머니 — 아들이 도우려는 장면에서 어머니가 무엇을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지 살펴보자. 환자가 된 뒤에도 자기 몸과 생활을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들의 걱정만 이해할 때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갈등이 보인다.

◆ 기억 속에서 다시 만나는 얼굴 — 현재와 과거가 이어질 때 큰 외양 변화나 친절한 시간 표시만 기다리지 말자. 익숙한 집과 인물의 말이 시간을 건너게 한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오래 기억해온 사람이 한 얼굴에 겹치는 감각이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 말과 음악이 멎은 뒤 — 정적이 이어질 때 화면 속 사람이 하고 있는 작은 일을 보자. 커피를 마시거나 잠시 앉아 있는 순간도 하루를 견디는 시간이다. 음악이 대신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 자리에서 인물에게 어떤 마음이 드는지 천천히 느껴볼 수 있다.

관련 작품

◆ 〈화장〉 (2014, 임권택) — 아픈 아내를 돌보면서도 다른 여성에게 마음이 가는 남자를 그린다.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게 사랑과 헌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더 불편한 자리에서 다룬다. 간병하는 몸과 그 안의 복잡한 마음을 함께 보는 작품이다.

◆ 〈어느 멋진 아침〉 (2022, 미아 한센러브) — 아버지의 병을 돌보는 딸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병든 가족 곁의 시간과 자기 삶을 이어가는 시간이 나란히 흘러간다. 창래의 집에 집중했던 시선을 돌봄 바깥의 생활로 넓혀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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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