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아이를 돌보고 요리책을 펼친다. 장을 보고 집안일을 익히는 이 남자는 〈해피엔드〉의 민기다. 은행에서 일하다 실직한 그는 바쁜 아내 대신 집에 머문다. 연애소설을 읽으며…
최민식이 아이를 돌보고 요리책을 펼친다. 장을 보고 집안일을 익히는 이 남자는 〈해피엔드〉의 민기다. 은행에서 일하다 실직한 그는 바쁜 아내 대신 집에 머문다. 연애소설을 읽으며 보내는 한낮에는 불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할 때는 몰랐던 한가로움도 있다. 훗날 이 사람의 침묵이 무서워지는 것은, 영화가 먼저 그 평범한 하루를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내 보라(전도연)는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가족의 생활을 책임진다. 동시에 옛 연인 일범(주진모)과 다시 만난다. 남편과 아이가 있는 집, 젊은 시절 사랑했던 남자의 방. 보라는 둘 중 한곳을 없애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과 연인은 각자 그 관계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 세 사람이 함께 바라는 결말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정지우의 첫 장편은 이들의 생활이 스릴러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간다.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등장보다 더 서늘한 것은 이미 집 안에 있던 사람과 물건이다. 여느 집에도 있을 열쇠 하나가, 묻지 않고 넘기던 외출이,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달라 보인다.
민기를 실직한 가장이라고만 소개하면 매일 실패를 곱씹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영화는 그에게 다른 시간도 준다. 소설을 읽고 음식을 만들고 분리수거하는 요령을 익힌다. 출근이 사라진 자리에 생활이 들어온다. 그가 하는 일들은 가족에게 필요한 일이며, 그 속에서 작은 재미를 발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민기 자신도 실직의 불안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집에서 하루를 잘 보냈다고 해서 직장을 잃은 사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라는 돈을 벌고, 민기는 집을 돌본다. 생활의 분담은 달라졌지만 그 변화를 부부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지우는 이 영화를 만들며 성역할은 바뀌는데 익숙한 가족의 가치관은 그대로인 상황에 관심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그 설명은 집안일을 하는 남편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 아니다. 민기가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와 그가 자기 처지를 어떻게 느끼는지를 나누어 보게 한다. 돌봄과 살림은 쓸모 있는 일인데, 그것만으로 이 남자의 자존심까지 편안해지지는 않는다.
최민식이 연기하는 민기의 일상에는 그래서 양쪽 마음이 함께 있다. 아이에게 손이 가고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막막하다. 가족에게 다정한 모습과 자기 삶에 대한 불안이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다. 이 영화는 그 다정함을 충분히 보여준 뒤, 그것만으로 민기를 다 알게 된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만든다.
민기는 아내의 열쇠고리에서 낯선 열쇠를 발견한다. 자동차 주행거리도 평소와 다르다. 작은 물건과 숫자가 보라에게 따로 보내는 시간이 있음을 알린다. 누군가가 모든 사정을 고백하는 대신,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알아챌 만한 변화가 의심을 만든다.
이때 집은 더 이상 서로의 하루가 돌아와 쉬는 곳만은 아니다. 밖에서 무엇을 했는지 흔적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열쇠는 문을 열기 위해 갖고 다니지만, 민기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방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익숙한 물건의 쓸모가 감시의 쓸모로 바뀌는 것이다.
관객은 보라의 관계를 알고 있다. 민기가 의심하는 동안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함께 추리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가 어디까지 알았는지, 알고도 왜 말하지 않는지가 신경 쓰인다. 같은 집에서 대화를 나누어도 한 사람이 감추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이미 알려져 있을 수 있다. 누가 진실을 아느냐보다 누가 아는 척하지 않느냐가 긴장을 만든다.
그 침묵은 폭발 직전의 분노라는 한 가지 표정만 갖지 않는다. 평소 하던 일이 계속되기 때문에 더 불편하다. 식사가 준비되고 아이를 돌보는 동안에도 관계는 달라지고 있다. 특별한 장소로 옮겨가지 않고 살던 집에서 스릴러가 시작된다. 영화의 무서움은 일상을 중단시키는 대신 그대로 남겨두는 데 있다.
보라는 가족이 싫어서 무작정 달아나려는 인물이 아니다. 남편과 딸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일범과의 만남도 놓지 못한다. 전도연은 가족과 연애 중 하나가 가짜라서 가능한 생활로 보라를 단순화하지 않는다. 두 곳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편해지기 어렵다.
일범에게 옛 연인과의 재회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일이 된다. 보라에게는 지키려는 가정이 있다. 처음에 두 사람을 끌어당긴 기억이 같더라도 앞으로 살고 싶은 모습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일범의 집착이 커질수록 보라는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만남을 계속할 때 생겼던 문제가 헤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보라의 선택에는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그렇다고 그녀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그녀의 삶을 처분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의 긴장을 따라가다 보면, 집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함께 사는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과 언제 갈라지는지 두려워진다. 겉으로 가족의 형태가 남는 것만으로는 행복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피엔드〉의 제목이 오래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목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관객은 그 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제자리인 듯한 생활 속에서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앞서 보았던 민기의 살림과 돌봄까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다정한 사람이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판단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단지 충격적인 결말로 기억하기에는 그 앞의 일상이 아깝다. 책을 읽던 남자, 일하고 돌아오던 여자, 함께 쓰던 집의 물건들이 차곡차곡 불안을 만든다. 가장 가까이서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에도 끝내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그 평범한 풍경을 서늘하게 한다. 영화가 끝난 뒤 다시 떠오르는 것은 큰 사건뿐 아니라, 아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집의 하루다.
◆ 살림을 배우는 민기 — 요리와 육아, 독서가 민기의 하루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자. 실직자라는 설명으로는 빠뜨리기 쉬운 생활이 있다. 그 시간을 충분히 보고 나면 이후의 변화도 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변신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 낯선 열쇠와 주행거리 — 민기가 무엇을 단서로 삼는지 살펴보자. 특별한 수사 도구가 필요하지 않다. 함께 생활하며 알고 있던 물건과 습관이 의심의 근거로 바뀌면서, 집이라는 장소의 익숙함까지 불편해진다.
◆ 관객보다 적게 아는 사람 — 보라의 관계를 알고 보는 관객과 그것을 알아가는 민기의 차이를 의식해보자. 사실을 밝히는 놀라움보다 민기가 아는 것을 숨기는 시간이 긴장을 만든다. 말하지 않는 인물에게 자꾸 눈이 가는 이유다.
◆ 책을 고르는 손 — 민기가 헌책방에서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지 기억해두자. 독서는 집에 머무는 남자의 취미이면서 마음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행동이다. 대사로 감정을 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일상의 선택에서 달라진 관심이 드러난다.
◆ 〈와일드라이프〉 (2018, 폴 다노) — 아버지가 일을 잃은 뒤 달라지는 부모의 관계를 아들의 눈으로 바라본다. 일자리의 상실이 가정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어른들이 선택한 삶이 아이에게 어떤 장면으로 남는지 함께 생각할 수 있다.
◆ 〈질투는 나의 힘〉 (2002, 박찬옥) — 질투가 폭발하기보다 직장 생활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오래 이어진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상대를 의식하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 어떻게 공존하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비슷한 삼각관계가 전혀 다른 불편함과 웃음을 만든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