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데려온 친구를 집에서 함께 지내게 할 만큼 좋아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들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같은 사람을 전처럼 대할 수 있을까. 〈환절기〉의 미경(배종옥)…
아들이 데려온 친구를 집에서 함께 지내게 할 만큼 좋아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들의 연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같은 사람을 전처럼 대할 수 있을까. 〈환절기〉의 미경(배종옥)은 아들 수현(지윤호)의 친구 용준(이원근)에게 살갑다. 어려운 사정이 있는 용준을 받아들이고, 세 사람은 한집에서 지낸다. 그때 미경이 아는 두 사람의 관계는 친한 친구 사이다.
몇 년 뒤 수현과 용준이 함께 떠난 여행에서 사고가 난다. 수현은 의식을 잃고, 용준은 남는다. 미경은 아들이 누워 있는 병실을 지키면서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제까지 모르던 사실 하나가 지금까지 알던 사람을 낯설게 만든다. 영화가 따라가는 것은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의 충격보다 그 뒤에도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이다.
미경의 마음에서 아들의 사고와 두 사람의 사랑을 따로 떼어놓기는 어렵다. 용준을 보면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혼자 멀쩡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자신만 모르고 있던 관계까지 겹친다. 왜 하필 우리 아들이 이렇게 됐는지 답을 얻을 수 없을 때, 눈앞에 있는 사람이 원망의 대상이 된다.
영화는 그 원망이 생겨나는 사정을 보여주지만 용준에게 사고의 책임을 돌리지는 않는다. 아들이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과 아들에게 남자 연인이 있다는 사실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미경의 마음에서는 두 일이 얽히더라도, 관객까지 그것을 하나의 잘못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미경을 이해하며 보다가도 그가 용준을 대하는 방식에서는 멈칫하게 되는 까닭이다.
배종옥의 미경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참는 어머니의 모습과 다르다. 화를 내고, 상대를 밀어내고, 자기 감정을 쉽게 감추지 못한다. 이동은 감독은 배종옥의 도회적이고 단단한 인상이 전형적인 어머니상에서 비껴나 있다는 점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미경의 행동을 모두 모성이라는 말로 정리하지 않게 하는 선택이다. 그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용준에게 수현은 친구보다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데 미경이 아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알리지 않자, 용준은 둘의 행방부터 찾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미경이 관계를 받아들이는지 아닌지가 용준에게는 추상적인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수현을 다시 만날 수 있는지와 곧바로 연결된다.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의 처지는 뚜렷하게 다르다. 미경은 아들을 데리고 떠날 수 있지만 용준은 남겨진다. 수현을 걱정하는 마음은 용준에게도 있다. 그 마음이 크다고 해서 그가 원하는 만큼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성소수자 연인의 관계를 설명하는 긴 연설 없이, 누가 곁에 머물 수 있고 누가 찾아 헤매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원근은 용준을 연기할 때 지치고 외로운 상태를 가져가려 했다고 말했다. 미경에게 자기를 인정해달라고 설득하는 일보다, 수현이 없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먼저인 사람이다. 말수가 적다고 느끼는 것이 적은 것은 아니다. 말을 아끼는 연기는 상대에게 다 털어놓을 수 없는 처지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두 청년의 사랑은 사고를 통해 새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감독은 수현과 용준이 이미 자기 관계를 긍정하고 있으며, 영화는 그다음에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다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미경에게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어도 두 사람에게는 함께 살아온 시간이다. 관객이 미경의 시선으로 이야기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들의 과거까지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아픈 수현을 가운데 두고 미경과 용준은 계속 마주하게 된다. 둘에게 공통된 바람이 있다고 해서 금방 가까워질 수는 없다. 상대에게 받은 상처도,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도 남아 있다. 다만 영화는 미경이 올바른 생각을 배운 뒤 용준을 승인하는 과정만을 그리지 않는다. 함께 견디는 시간이 두 사람 사이에 다른 관계를 만들 가능성을 지켜본다.
수현의 어머니와 연인이라는 설명만으로는 그 관계를 다 말하기 어렵다. 서로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지금 무엇이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같은 슬픔을 나눈다는 이유로 언제나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미경은 아들을 기다리고 용준은 연인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대상은 같아도 각자가 잃어버린 일상은 다르다.
이 차이를 남겨두는 것이 〈환절기〉의 다정함이다. 함께 있으면 모두 해결된다고 말하기보다, 여전히 불편한 사람과 어떻게 한 공간을 나눌 수 있을지 살핀다. 용준이 미경의 빈자리를 채우는 새 아들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는 수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곁에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일과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까지 존중하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이동은은 인물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는 장면보다 주변 공간을 함께 보여주는 장면을 많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 우는 얼굴만 크게 보면 관객의 관심은 그 사람의 감정으로 쏠린다. 거리를 둔 화면에서는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둘 사이에 얼마나 공간이 남아 있는지도 보게 된다. 말로 드러내지 않은 관계가 사람들의 배치에 남는다.
화면의 색도 조금씩 달라진다. 초반의 차갑고 단조로운 색에서 출발해 뒤로 갈수록 꽃과 식물, 여러 색을 더했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상황이 모두 좋아져서 화면이 환해진다고 생각하면 영화가 주는 느낌과 어긋난다.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곁에도 다른 색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이 끝난 다음에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누가 누구를 완전히 이해했는지 결론부터 내리지 않는다. 미경에게 필요한 시간과 용준에게 필요한 시간이 같지 않고, 수현에게도 두 사람이 대신 정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한 사람이 변했다고 세 사람의 관계가 동시에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작은 변화가 생길 때 더 주의 깊게 보게 된다. 화해를 알리는 큰 선언보다 이전과 조금 달라진 태도에 마음이 간다.
아들의 친구였을 때는 어렵지 않았던 다정함이, 아들의 연인이라는 사실 앞에서 멈춘다. 〈환절기〉는 바로 그 멈춤을 오래 바라본다. 내가 알고 있던 모습으로만 상대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용준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전과 같은 아이로 되돌려놓는 일이 될 수 없다. 처음부터 그에게 있었지만 내가 몰랐던 사랑도 함께 보는 일이어야 한다.
◆ 같은 용준을 다르게 대하는 미경 — 사고 전후 미경이 용준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보자.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고 무엇은 미경이 새로 알게 된 것인지 나눠 생각하면 감정의 충돌이 더 선명해진다. 원망을 이해하는 일과 그 원망이 옳다고 인정하는 일도 구별할 수 있다.
◆ 찾아가는 사람과 자리를 정하는 사람 — 미경이 수현을 데리고 떠난 뒤 용준에게 어떤 일이 남는지 살펴보자.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처지가 드러난다. 관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곤란으로 이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 말하지 않는 용준의 시간 — 용준의 침묵을 감정이 없는 상태로 넘기지 말자. 이원근이 유지하는 지친 기색과 조심스러운 말투를 따라가면, 자기 마음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게 된다. 관계의 변화를 만드는 작은 반응도 더 잘 눈에 들어온다.
◆ 사람 사이의 공간과 조금씩 늘어나는 색 — 얼굴만 바라보기보다 같은 화면에 누가 함께 있는지 살펴보자. 인물 사이의 거리가 말보다 먼저 관계를 알려주기도 한다. 뒤로 갈수록 나타나는 꽃과 식물은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표시라기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곁에 다른 감각이 들어오는 변화로 볼 수 있다.
◆ 〈딸에 대하여〉 (2023, 이미랑) — 딸이 여성 연인과 함께 어머니 집에 들어온다.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을 나누는 일과 상대의 관계를 인정하는 일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환절기〉의 미경을 떠올리며 보면, 부모의 걱정이라는 말 안에 섞여 있는 애정과 배제를 함께 살필 수 있다.
◆ 〈당신의 부탁〉 (2017, 이동은) — 죽은 남편의 아들이 찾아오면서, 아이와 살아본 적 없는 여자가 함께 지낼 방법을 찾는다. 관계를 부르는 이름이 생긴 뒤에도 실제 생활은 따로 익혀야 한다. 이미 가족인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 새로 가족이 되어가는 일을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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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