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눈앞에 이구아나가 나타난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는 그 이상한 손님을 서둘러 치우지 않는다. 작은 파충류의 얼굴을 바짝 들여…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눈앞에 이구아나가 나타난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는 그 이상한 손님을 서둘러 치우지 않는다. 작은 파충류의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고, 평소와 다른 질감의 화면에 시간을 내준다. 범인을 찾아야 하는 형사도 걱정스럽지만, 그를 따라가던 영화까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졌다.
〈악질경찰〉의 테렌스 맥도나(니콜라스 케이지)는 뉴올리언스의 형사다. 카트리나가 도시를 덮쳤을 때 물에 잠긴 유치장의 수감자를 구하다 허리를 다친다. 통증을 견디려고 진통제를 먹던 그는 마약에도 손을 댄다. 그러면서도 경찰의 권한은 그대로 행사한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이 부패한 형사를 무겁게 꾸짖는 대신, 그가 자기 멋대로 움직일 때 생기는 우스꽝스러움과 위험을 한 화면 안에 풀어놓는다.
테렌스의 구조는 좋은 행동이다. 하지만 영화는 구조 전의 그를 처음부터 숭고한 사람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물이 차오르는 곳에 갇힌 수감자를 앞에 두고 동료와 주고받는 말에는 잔인함이 있다. 뒤이어 사람을 구했다고 해서 앞의 태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영웅으로 기억될 만한 일을 한 사람에게도 처음부터 불편한 면이 있었다.
허리 부상은 이후의 행동에 구체적인 사정을 더한다. 테렌스는 통증을 안고 움직이고, 약을 구하려고 권한을 악용한다. 그러나 영화의 관심은 선량했던 사람이 한 번의 사고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설명에 있지 않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남을 겁줄 수도 있고, 이 두 능력 모두 경찰이라는 신분에 기대고 있다.
그가 맡는 일은 한 이민자 가족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필요한 수사와 형사 개인의 욕망이 같은 사람 손에 놓인다. 테렌스는 사건에 매달리다가도 도박과 약물, 자신에게 닥친 문제로 자꾸 새나간다. 그를 따라가는 관객은 범인이 누구인지뿐 아니라 이 사람이 오늘 어디까지 일을 망칠지도 걱정하게 된다.
케이지는 이 모순을 몸으로 만든다. 허리 때문에 기울어진 자세가 남을 위협하는 태도와 함께 있다. 몸은 불편한데 상대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똑바로 서 있는 늠름한 형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에게 압박받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총과 배지를 가진 경찰이다. 우스워 보인다고 덜 위험한 것은 아니다.
테렌스는 말투와 표정이 점점 과해진다. 케이지가 그저 정신없이 날뛰도록 내버려둔 결과는 아니다. 헤어조크는 배우에게 대담하게 나아갈 여지를 주되, 장면의 상황 안에서 움직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상대가 누구이며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는 분명하다. 그 목적을 밀어붙이는 방식이 우리가 예상하는 범위를 넘는다.
누군가를 다그치는 장면에서 말은 필요한 정보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자기 분노가 끼어들고, 터무니없는 확신이 붙는다. 케이지의 연기가 웃음을 일으키는 순간에도 상대는 그 자리를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관객의 웃음과 장면 안의 공포가 같은 것이 아니어서 불편하다. 우리는 연기의 기세에 놀라지만, 그 기세를 직접 받아내는 사람에게는 협박이다.
감독은 왜 이 사람이 이렇게 나쁜지 원인부터 길게 토론하는 방식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약물 사용을 보여주는 장면도 반복을 줄이기 위해 일부 덜어냈다. 대신 케이지가 상황마다 다른 속도와 강도로 행동하게 했다. 중독이라는 정보 하나를 알았다고 테렌스의 다음 반응을 전부 예상할 수는 없다. 사건의 진척보다 인물의 변덕이 장면의 리듬을 바꾸는 때가 많다.
여기에 이 영화의 이상한 활력이 있다. 갈수록 믿을 수 없는 사람이 화면에서는 갈수록 눈을 떼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영화가 그를 매력 있게 보여준다는 말이 그의 행동을 칭찬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 배우가 장면을 어떻게 장악하는지 보는 즐거움과 그 장면 속 인물이 저지르는 일에 대한 판단을 함께 가져가게 한다.
테렌스 앞에 파충류가 나타나도 그것이 수사에 필요한 힌트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던 일이 잠시 끊긴다. 이런 순간에는 사건을 따라가려던 관객도 낯선 화면 앞에 붙잡힌다. 형사가 보는 것이 실제로 있는지부터 불분명해졌으니, 이제 그의 판단을 믿고 움직이는 일도 어렵다.
헤어조크는 이 장면을 직접 촬영했다. 작은 렌즈를 동물의 눈 가까이에 가져가고 화면 안으로 빛이 스며들게 했다. 매끈한 수사극의 화면과는 다른 느낌을 원한 것이다. 제작진이 의미를 물었을 때 감독은 정해진 해석을 들려주지 않았다. 촬영 중 떠오른 아이디어가 영화 안에 남았고, 그 갑작스러움도 장면의 일부가 됐다.
그렇다면 관객도 이구아나가 정확히 무엇을 상징하는지 정답부터 찾지 않아도 된다. 주인공이 몰두해야 할 일과 지금 그의 관심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보면 된다. 수사의 세계를 유지해야 할 형사의 눈앞에서 엉뚱한 광경이 펼쳐진다. 카메라가 그 광경을 따라가니 테렌스 혼자만 딴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잠시 그의 불안정한 시야에 들어선다.
이처럼 엇나가는 장면 덕분에 〈악질경찰〉은 사건을 알아가는 긴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패한 형사의 이야기라면 익숙한 결말을 기다릴 법한데, 중간중간 그 기대를 잊게 하는 이상한 시간이 생긴다. 헤어조크와 케이지가 만난 재미는 그런 틈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배우가 평소보다 과하게 움직일 때 영화의 화면도 함께 평소의 규칙에서 벗어난다.
테렌스의 연인 프랭키(에바 멘데스)는 그와 약물을 함께 사용하는 사이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것만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테렌스는 프랭키를 걱정하고 그를 위협하는 사람에게 맞서기도 한다. 다만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늘 상대를 안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자신도 문제에 깊이 얽혀 있어서 한 번의 개입이 또 다른 위험을 불러온다.
헤어조크는 두 사람의 관계에 사랑이 있기를 바랐고, 테렌스가 어린 시절의 보물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남을 추궁하거나 거래하느라 바빴던 남자가 연인에게는 자기 기억을 들려준다. 이 짧은 변화가 테렌스의 악행을 지워주지는 않지만, 영화가 그를 한 가지 표정으로만 찍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프랭키를 연기한 멘데스는 인물의 선택을 미리 재단하기보다 살아남으려는 사람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보는 동안 필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구원할 것인지 빨리 정하는 일이 아니다. 다정한 말이 오가는 순간과, 서로를 더 곤란하게 하는 행동이 이어지는 순간을 함께 보게 된다. 애정이 있다고 해서 같이 있는 시간이 저절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악질경찰〉에는 해결해야 할 사건도 있고 책임져야 할 행동도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 선명하게 남을 얼굴은 일을 정리하는 형사의 얼굴보다, 갑자기 이상한 것을 보고 웃거나 예상 밖의 말을 내뱉는 케이지의 얼굴일 수 있다. 그 불균형이 묘한 뒷맛을 만든다. 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가 나오는 장면을 조금 더 보고 싶어진다. 영화는 그 곤란한 재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 구조 장면의 앞뒤 — 테렌스가 수감자를 구하기 전 어떤 태도로 그를 대하는지 함께 보자. 좋은 행동 하나로 인물의 성품을 다 설명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작이다. 뒤의 부상을 이해하되, 이후의 악행이 불행한 사고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겼다고 단순화하지 않을 수 있다.
◆ 불편한 몸과 큰 권한 — 케이지의 자세와 상대를 대하는 기세를 동시에 보자. 육체적으로 안정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압박할 권한은 그대로 갖고 있다. 연기의 우스꽝스러움이 상대 인물의 두려움과 어떻게 한 장면에서 공존하는지 살필 수 있다.
◆ 이구아나 앞에서 바뀌는 화면 — 동물을 가까이 찍은 영상의 질감과 시간을 눈여겨보자. 사건의 단서를 건네는 장면과는 다르게 시선을 붙잡는다. 상징을 해독하려 하기 전에, 이 낯선 순간이 수사의 흐름과 관객의 기대를 어떻게 끊는지 느껴볼 만하다.
◆ 프랭키에게 들려주는 기억 — 테렌스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던 태도와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자. 인물에게 애정과 추억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다정함과 행동의 위험을 함께 남겨두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보는 어려움이자 흥미다.
◆ 〈배드 루테넌트〉 (1992, 아벨 페라라) — 하비 케이틀이 또 다른 부패 형사를 연기한다. 제목은 이어지지만 헤어조크의 영화와 인물·이야기가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죄책감과 구원을 다루는 방식, 배우의 몸을 통해 인물을 밀어붙이는 방식을 비교하면 두 영화의 차이가 더 뚜렷해진다.
◆ 〈솔트 앤 파이어〉 (2016, 베르너 헤어조크) — 과학자들이 납치되면서 시작되는 영화지만 예상한 스릴러의 진행에서 벗어나 다른 풍경과 시간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효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에 감독이 왜 오래 머무는지 이어서 볼 수 있다. 〈악질경찰〉의 엉뚱한 중단이 흥미로웠다면 함께 살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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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