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아빠가 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몸을 단련한다. 사냥해서 먹을 것을 구하는 법도 가르친다. 〈캡틴 판타스틱〉의 벤(비고 모르…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아빠가 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몸을 단련한다. 사냥해서 먹을 것을 구하는 법도 가르친다. 〈캡틴 판타스틱〉의 벤(비고 모르텐슨)은 숲에서 여섯 자녀를 키운다. 아이들에게 쏟는 시간과 정성만 본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아빠다.
문제는 그가 만든 학교와 집과 세상이 모두 같은 곳이라는 데 있다.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우지만, 아빠가 선택한 생활 밖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는 적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가족이 장례식에 가기 위해 숲을 나서자, 벤이 자랑스럽게 가르쳐온 것과 아이들이 새로 알고 싶은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맷 로스 감독은 좋은 부모가 되려는 남자를 논쟁거리로만 세우지 않는다. 이 가족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 아빠가 매력적인 이유와 답답한 이유를 번갈아 겪게 한다.
영화는 장남 보(조지 맥케이)의 사냥으로 가족을 소개한다. 책상에 앉아 점수를 받는 대신 숲에서 몸을 움직이며 실력을 증명하는 아이들이다. 위험을 피하는 법, 먹을 것을 얻는 법, 힘을 합쳐 생활하는 법을 알고 있다. 도시에서 익숙한 기준으로만 보면 놓치기 쉬운 능력들이다.
그렇다고 벤이 지식보다 체력만 중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집의 아이들은 어려운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도 있다. 벤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 생활이 근사하게 보이는 것은 숲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어른이 아이의 하루에 이만큼 깊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마음이 간다.
영화는 그런 가족의 능숙함을 보여준 뒤, 보를 낯선 또래들 앞에 세운다. 사냥과 독서에서 자신 있던 청년도 좋아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에는 서툴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다른 사람을 만나봐야 알 수 있다. 보의 당혹스러움이 웃음을 주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가 게으르게 배운 아이가 아니라 아주 열심히 배워온 아이이기 때문이다.
숲을 나선 가족의 여행에는 한 팀으로 움직이는 즐거움이 있다. 아이들은 서로를 잘 알고, 벤은 뜻밖의 상황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해결하려 든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항상 믿음직한 것은 아니다. 가족이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대목에서는 능숙한 협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쓰인다.
이 장면을 숲에서의 자립생활과 나란히 놓으면 벤의 원칙이 복잡해진다. 아이들에게는 자기 손으로 살아갈 능력을 강조하던 아빠가, 바깥에서는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행동을 이끈다. 가족끼리는 기지가 통하고 신나는 작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족 밖의 사람에게도 같은 설명이 통할지는 별개다. 벤이 세상에 품은 불만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허용하는 근거가 되는지 돌아보게 된다.
비고 모르텐슨은 벤을 늘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연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곤란하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기 방식을 믿는 사람의 태도가 먼저 전해진다. 그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에는 지금 하는 일의 문제를 잠깐 뒤로 미루기 쉽다. 영화의 코미디도 이 믿음과 어긋남을 이용한다. 이상한 가족을 멀리서 구경하다 웃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전까지 응원했던 아빠를 다시 보게 한다.
보에게 숲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그동안의 생활이 전부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도, 아빠가 정한 세계 밖에서 살아보고 싶을 수 있다. 벤에게 그 마음을 인정하는 일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선택한 교육이 아이에게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벤이 아이들을 위해 자기 야망과 경력을 내려놓았다는 점에 끌렸다고 밝혔다. 동시에 그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했다. 이 설명은 벤의 헌신을 의심하라는 뜻으로 읽기보다, 헌신이 큰 사람일수록 자기 선택을 고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만하다. 온 힘을 기울여 만든 생활에서 아이가 다른 것을 원한다면, 아빠는 그동안의 노력을 부정당한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일 역시 벤의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자기 생각을 갖고 스스로 판단하라고 배웠으니, 그 판단이 아빠와 달라지는 때도 올 수 있다.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곳은 바로 이 모순이다. 벤은 아이들이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 독립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이 아빠의 매력이다. 벤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어서, 그들이 무엇을 더 원하는지 묻기 어려워진 사람이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수업은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갖는 데 성공한 다음에 시작된다.
◆ 사냥으로 시작하는 가족 소개 — 아이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가족이 그 능력을 어떻게 인정하는지 보자. 이들에게 익숙한 성취의 기준이 먼저 드러난다. 이후 바깥에서 겪는 당혹스러움은 무능한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익혀온 능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을 만난 결과로 읽힌다.
◆ 아빠가 아이들에게 쓰는 시간 — 독서와 토론, 음악과 훈련을 함께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벤의 교육에 마음이 가는 이유에는 실제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태도가 있다. 그 장점을 충분히 본 뒤에야, 같은 헌신 안에 있는 강요도 단순한 악의와 구별해 생각할 수 있다.
◆ 가족의 작전이 통하는 순간 — 상점 장면에서 가족의 협동과 그 협동이 향하는 목적을 함께 보자. 한 팀으로서의 능숙함은 분명 즐겁지만, 잘해냈다는 이유만으로 행동까지 옳아지지는 않는다. 코미디의 속도가 관객의 판단을 어떻게 앞질러가는지 느껴볼 만하다.
◆ 보가 바깥을 궁금해하는 마음 — 장남이 아빠를 대할 때와 또래를 만날 때의 태도를 비교해보자. 익숙한 가족 안의 자신감과 낯선 관계의 서툶이 한 사람에게 공존한다. 가족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 줄었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을 실마리다.
◆ 〈와일드라이프〉 (2018, 폴 다노) — 부모의 관계가 흔들리는 동안 아들 조는 어른들의 선택을 곁에서 지켜본다. 〈캡틴 판타스틱〉의 아이들이 아빠의 확신을 따라 살아왔다면, 이 영화의 소년은 부모조차 자기 삶을 어떻게 할지 모르는 시간을 통과한다. 두 가족의 다른 상황에서 아이가 무엇을 혼자 이해해야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 〈파편들의 집〉 (2022, 시몬 레렝 빌몽) — 우크라이나의 아동 쉼터에서 아이들과 돌보는 어른들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가족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만, 어른이 정해주는 거처와 아이가 맺고 싶은 관계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어 읽을 수 있다. 아이를 아끼는 일에 그 아이의 바람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돌아보게 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