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윤여정)은 예순다섯 살에도 손님을 찾아 나선다. 종로 일대의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그를 찾는 남자들의 부탁은 어느 순간 감…
소영(윤여정)은 예순다섯 살에도 손님을 찾아 나선다. 종로 일대의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먹고사는 사람이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그를 찾는 남자들의 부탁은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병들고 외로워진 손님들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자기 생활을 꾸리기도 벅찬 여자에게, 남의 삶을 끝내는 일까지 맡겨진다.
그 부탁을 하는 이들의 절박함을 모른 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말을 듣고 난 소영의 처지도 생각해야 한다. 연민이 생긴다고 곧바로 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니고, 거절한다고 상대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이 난감한 자리에 소영을 세우기 전에 그가 어디서 살고 누구를 만나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관한 찬반을 정하기에 앞서, 이 여자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부터 알게 된다.
소영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말만으로 소개하기 어렵다. 손님을 만나고, 대가를 받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자신의 몸으로 생활비를 마련한다는 사정은 직업을 설명하는 한 줄보다 오래 영화에 남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비용이 없어지는 것도, 일을 멈춰도 되는 형편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영이 성병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모습을 담는다. 이재용 감독은 이 상황이 소영의 처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몸과 돌봄이 필요한 몸이 따로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소영에게도 피로와 통증이 쌓인다.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자기 상태를 살필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먼저 와닿는다.
윤여정이 연기하는 소영에게는 남의 말에 맞장구만 치지 않는 성격도 있다. 자기 이야기를 영화로 찍으려는 청년에게 다른 소재로 돈을 버는 편이 낫겠다는 뜻의 말을 건넨다. 청년에게는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인생일지 몰라도, 소영은 영화의 소재로 소개받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먼저 생각하는 이 한마디가 관객의 감상에도 끼어든다. 이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 정작 소영은 눈앞의 손님과 다음 벌이를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몸이 아프고 곁에 사람이 없는 손님들이 소영을 찾는다. 그들의 부탁은 죽음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다. 현재의 생활을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말에 가깝다. 소영에게는 그 말을 듣는 동안 떠오르는 자기 노년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이니, 더는 일할 수 없게 되는 날이 남의 이야기로만 들릴 수 없다.
그렇다고 손님의 절박함만으로 소영이 해야 할 일이 정해지지는 않는다. 죽음을 부탁받은 뒤에도 그는 살아가야 한다. 상대가 바라는 일을 해주고 싶은 마음과, 그 일을 한 뒤 자신에게 남을 감정 사이에서 쉽게 답할 수 없다. 부탁하는 사람이 자기 고통을 자세히 말할수록, 부탁받는 사람이 겪을 고통은 오히려 대화에서 빠지기 쉽다. 소영의 망설임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다.
제목의 거친 말장난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님을 만족시킨다는 말이 실제 죽음의 부탁과 겹치는 순간, 소영의 일이 어디까지 남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를 모든 고통을 받아주는 특별한 사람으로 치켜세우면 이 부담이 가려진다. 소영이 다정할 수 있다는 것과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소영의 생활에는 손님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주인 티나(안아주), 피규어를 만드는 도훈(윤계상)과 같은 집에서 지내고, 병원에서 만난 아이 민호(최현준)를 데려와 돌보기도 한다. 이들과 함께 있을 때 소영에게는 손님의 요구에 응하는 일 밖의 시간이 생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생활을 나누며, 아이를 챙기는 이웃의 모습이다.
이재용은 소영도 누군가와 어울려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에서 주변 인물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소영의 불행을 설명하기 위해 옆에 세워놓은 사람들이 아니다. 티나에게는 자기 일과 생활이 있고 도훈에게도 만드는 일이 있다. 각자가 하던 일을 가진 사람들이 한집에서 마주친다. 소영에게 마음이 가는 것도 이 구체적인 관계들 덕분이다. 그의 사연을 알게 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누구와 있을 때 어떤 사람인지 보게 된다.
아이를 데려온 소영의 행동은 특히 눈길을 끈다. 민호의 엄마가 경찰에 붙잡혀 가면서 혼자 남은 아이를 챙긴다. 병원에 갔다가 마주친 일이라 미리 준비해둔 방안도 없다. 손님이 자기 사정을 길게 말하며 부탁하는 장면과 달리, 여기서는 소영이 먼저 움직인다. 그가 내리는 결정에는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뿐 아니라 눈앞의 사람을 그냥 두고 갈 수 없는 마음도 있다. 아이가 집에 들어오면서 소영의 이웃들도 그 일을 함께 겪는다.
이 영화에는 노년의 빈곤이나 고립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많다. 그 설명만으로 소영을 다 알게 되지는 않는다. 무거운 부탁을 들으면서도 생활을 계속하는 사람에게는 매번 다른 대답과 기분이 있다. 윤여정의 말투를 따라가다 보면, 소영을 슬픈 사연의 주인공으로만 여기고 있던 마음이 자꾸 빗나간다. 그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현실적인 말에는 생활을 오래 꾸려온 사람의 판단이 담겨 있다.
영화로 만들겠다는 청년의 제안에 응수하던 소영을 다시 떠올려보자. 관객은 그 청년처럼 소영에게서 특별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수 있다. 그러나 소영에게는 남에게 들려줄 만한 사연보다 당장 꾸려야 할 생활이 먼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이 예고한 충격적인 일들만큼, 그런 기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하던 윤여정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 손님을 만날 때와 이웃을 만날 때 — 소영이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목적이 달라진다. 요구를 듣고 응대하는 자리와 집에서 생활을 나누는 자리를 함께 보자. 같은 사람이 여러 관계 속에서 어떤 표정과 말투를 보이는지 살피면 직업이나 나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성격을 만날 수 있다.
◆ 소영을 찍고 싶다는 제안 — 소영의 삶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청년에게 소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들어보자. 기록하려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도 똑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영이 자기 이야기에 관해 직접 판단하고 말하는 순간이다.
◆ 무거운 부탁을 듣는 쪽의 얼굴 —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사정을 말할 때, 듣는 소영의 반응도 놓치지 말자. 장면의 중심을 요청 내용에만 두면 그 요청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뒤로 밀린다. 소영이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사정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 집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 — 소영이 데려온 아이와 이웃들이 함께 지내는 모습을 살펴보자. 이 관계는 사연을 설명하는 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챙기고 어떤 시간을 나누는지 보면, 소영의 생활에 실제로 필요한 도움이 어떤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 〈방랑자〉 (1985, 아녜스 바르다) — 떠돌던 젊은 여성을 만난 사람들의 기억을 따라간다.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타인의 말이 얼마나 쉽게 평가가 되는지 살필 수 있다. 소영에게 말을 거는 청년의 태도와 함께 보면, 사연을 듣는 일과 상대를 이해하는 일 사이의 어려움이 더 또렷해진다.
◆ 〈파편들의 집〉 (2022, 시몬 레렝 빌몽) — 아동 쉼터의 아이들과 돌보는 어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담았다. 보호가 필요하다는 설명 뒤에 통화와 놀이, 친구를 사귀는 생활이 이어진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여러 관계와 기분이 있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만나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