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바이크를 보러 온 여자가 잠깐 타봐도 되느냐고 묻는다. 판매자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 〈로데오〉의 줄리아(줄리 레드루)는 여자가 바이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대수롭지…
중고 바이크를 보러 온 여자가 잠깐 타봐도 되느냐고 묻는다. 판매자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 〈로데오〉의 줄리아(줄리 레드루)는 여자가 바이크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들의 태도를 이용한다. 시동을 걸고 출발한 뒤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소유권도 허락도 기다리지 않는 이 여자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자기 속도로 끌고 간다.
줄리아가 가고 싶은 곳에는 바이크로 곡예 주행을 즐기는 남자들이 모여 있다. 앞바퀴를 든 채 달리고, 서로의 기술을 구경하고, 엔진 소리에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바이크를 좋아하는 줄리아에게 그들은 함께 달리고 싶은 동료다. 그러나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바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로에서 원하는 대로 질주하는 이들에게도, 누가 끼어들 수 있는지를 가르는 자기들만의 규칙이 있다.
줄리아는 라이더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바이크를 훔쳐오고, 감옥에 있는 보스의 심부름도 한다. 그녀가 일을 해낼수록 다른 이들도 함부로 무시하기는 어려워진다. 훔친 바이크를 가지고 차고로 돌아오는 순간에는 경계하던 사람들의 반응도 흔들린다. 얕보던 사람이 자기들보다 대담한 일을 해냈으니, 못마땅해하면서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인정을 받는 순간은 짜릿하다. 동시에 줄리아에게 더 위험한 일을 맡기기 쉬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마음이 클수록, 줄리아는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시키는 일을 잘해내는 것과 그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다르다. 바이크 위에서는 거칠 것 없어 보이던 사람이 차고에 돌아오면 다시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펴야 한다.
줄리아를 둘러싼 남자들이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다. 가까워지려는 사람도 있고, 경쟁자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여자에게 도움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불편해하는 태도도 보인다. 이런 작은 반응의 차이가 집단을 살아 있게 만든다. 줄리아가 부딪히는 것은 출입을 금지한 문 하나가 아니다. 함께 어울리는 중에도 수시로 바뀌는 환영과 거절이다.
그래서 줄리아를 오직 차별받는 사람으로만 응원하기는 어렵다. 그녀도 남을 속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영화는 그 행동을 지워서 모범적인 주인공을 만들지 않는다. 못마땅한 일을 벌이는 순간에도 왜 저 무리에 그토록 끼고 싶어 하는지는 이해하게 한다. 줄리아의 거친 성격과 외로움이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롤라 키보론 감독은 2015년부터 실제 라이더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활동을 기록했다. 주인공 역의 줄리 레드루도 바이크를 타던 사람이다. 감독은 SNS에서 그를 발견하고 만난 뒤, 이미 쓰고 있던 줄리아를 이 배우에게 맞춰 다시 만들었다. 줄리아의 삶이 배우의 실제 인생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바이크에 익숙한 몸과 타인에게 쉽게 물러서지 않는 기운이 인물을 만드는 출발점이 됐다.
그렇다고 카메라만 들이대면 영화 속 줄리아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레드루는 걷는 자세부터 목소리를 쓰는 방식까지 준비하며, 자신과는 다른 성격의 인물을 만들었다. 이 과정을 알고 보면 줄리아의 거친 행동을 전부 즉흥적인 반항으로 넘기기 어렵다. 상대를 얕잡아보는 태도, 밀리지 않으려고 몸을 세우는 자세에도 연기가 있다. 어딜 가든 먼저 공격할 준비가 된 것 같은 사람이 어떤 때에 경계를 푸는지도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는 줄리아의 성격을 설명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움직임을 따라가다가 장면을 툭 잘라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고, 인물의 선택을 정리할 새도 없이 다른 일이 벌어진다. 이런 편집은 때로 숨이 가쁘다. 그러나 줄리아가 왜 서두르는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멈추면 자기 몫을 빼앗길 것 같은 초조함에 먼저 가까워지게 한다.
시각적인 쾌감도 크다. 넓은 화면과 강한 색은 이들의 질주를 큰 모험처럼 보이게 한다. 차고의 조명과 얼굴 가까이 붙는 카메라는 곧바로 땀과 거친 말이 오가는 현실로 데려온다. 감독은 장르영화의 화려한 화면과 실제 사람들의 몸을 함께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바이크는 자유를 뜻하는 상징으로만 남지 않는다. 힘을 주어 버텨야 하고, 균형을 놓치면 다칠 수 있는 무거운 기계이기도 하다.
차고 밖에는 보스의 아내 오펠리(안토니아 부레시)와 어린 아들이 사는 집이 있다. 줄리아는 물건을 전해주러 그 집을 드나들다가 두 사람과 가까워진다. 보스는 감옥에 있지만, 오펠리의 생활은 여전히 남편에게 묶여 있다. 줄리아가 열심히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는 무리의 권한이 집 안의 여자에게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 만남에서 드러난다.
두 여자의 처지는 쉽게 하나로 묶이지 않는다. 줄리아는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고, 오펠리는 집에 머문다. 줄리아가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일은 오펠리에게 도움이 되지만, 그가 계속 집 안에서만 지낼 수 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뜻으로 하는 심부름조차 누군가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생활의 일부가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줄리아에게도 그 집을 다녀오는 이유가 조금씩 달라진다.
오펠리 역시 줄리아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옷과 꾸밈을 나누는 동안 줄리아는 차고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사람을 대한다. 여기서는 바이크를 얼마나 잘 훔치는지 매번 증명할 필요가 없다. 긴장을 풀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이 생긴다.
〈로데오〉의 줄리아를 따라가는 동안에는 마음이 자주 바뀐다. 무모한 짓을 그만두었으면 하다가도, 남들이 안 된다고 여긴 일을 해내면 통쾌하다. 훔친 바이크로 달아나는 데 성공한 뒤에도 그녀에게는 함께 있을 사람이 필요하다. 질주가 멋있게 보일수록 달리기를 멈춘 다음의 삶도 궁금해진다. 줄리아에게도 매번 대담함을 증명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
◆ 〈방랑자〉 (1985, 아녜스 바르다) — 정착하지 않고 길 위를 떠도는 여자를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기억한다. 관객이 쉽게 좋아할 만한 사람으로 주인공을 다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줄리아와 가까이 움직이는 〈로데오〉와 비교하면,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카메라의 거리와 이야기의 순서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느낄 수 있다.
◆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4, 로즈 글래스) — 보디빌딩을 하는 여자와 체육관에서 일하는 여자가 사랑에 빠진다. 강한 몸이 주는 쾌감과 그 몸이 처한 위험이 함께 나온다. 〈로데오〉의 바이크처럼, 이 영화의 근육도 인물의 욕망을 설명하는 말보다 먼저 눈을 붙잡는다.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이 기존의 폭력적인 관계와 부딪히는 방식도 다르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