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피해를 입은 아이가 학교를 떠나야 할까 | MovieLAB LAB

새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묵의 숲〉의 창청(리우쥬촨)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 온 소년이다. 자신과 수어로 대화하는 또래들 사이에서 베이…

왜 피해를 입은 아이가 학교를 떠나야 할까 | MovieLAB LAB

새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묵의 숲〉의 창청(리우쥬촨)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 온 소년이다. 자신과 수어로 대화하는 또래들 사이에서 베이베이(진연비)와 가까워진다. 그러다 통학 버스 뒷자리에서 베이베이가 성폭력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학교에 다니는 즐거움을 알아가던 소년에게, 이제 그곳은 친구가 다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만 다니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쉽게 나오지만, 두 아이에게는 학교를 잃는 일이다. 위험을 피하려면 왜 좋아하는 친구와 배우던 교실까지 포기해야 할까. 영화는 사건을 밝히려는 창청과 그 학교에 남고 싶은 베이베이를 함께 따라간다. 이 두 마음이 서로 부딪힐 때, 잘못을 알리는 용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드러난다.

친구가 생겼다는 기쁨까지 빼앗지 않으려면

창청은 이 학교에 오기 전부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새 학교에서는 통하는 언어가 있고, 같은 처지의 친구가 있다. 전학을 기대했던 마음을 알아야 이후의 망설임도 이해할 수 있다. 창청이 들어온 곳을 처음부터 끔찍한 사건 현장으로만 보면, 이 아이가 왜 여기에 머물고 싶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베이베이는 자신이 겪는 일을 장난처럼 이야기한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저 거짓말이라고 밀어내기에도 망설여진다. 친구들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운 아이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베이베이는 학교 안의 관계를 지키고 싶어 한다.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주변의 폭력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베이베이는 다른 학교가 안전할지, 거기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있는 관계를 끊는 일이 언제나 새 관계를 얻는 기회가 되지는 않는다. 이 영화가 답답한 것은 아이들이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어른이 해답이라고 내놓는 선택에도 아이가 감당할 손실이 남아 있어서다.

연출을 맡은 커첸넨 감독도 조사 과정에서 그 점을 새로 배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가해자를 향한 분노가 컸지만, 아이들에게는 친구들과 학교에 계속 다니는 일이 중요했다. 대신 화를 내주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생활을 지켜줄 수 없었다. 영화가 사건의 충격만큼 아이들 사이의 친밀함에 시간을 쓰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손은 말하고 있는데 어른들은 듣지 않는다

〈침묵의 숲〉에서 수어는 폭력을 전하기 위해서만 쓰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손으로 말을 걸고, 감정을 드러내고,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 대화가 친숙해질수록 제목의 ‘침묵’을 아이들의 청각장애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아이들에게는 언어가 있다. 그 말이 도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정이 문제다.

배우들은 촬영에 앞서 수개월 동안 수어를 익혔고 현장에도 수어와 농문화에 관한 자문이 있었다. 베이베이를 연기한 진연비는 손의 움직임을 외우는 일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함께 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낯선 언어를 정확히 전달하면서, 그 언어로 살아온 아이처럼 연기해야 했다. 자막의 뜻만 따라갈 때 놓치기 쉬운 몸의 긴장이 그 작업에 들어 있다.

특히 베이베이의 웃는 얼굴을 보게 된다. 밝게 웃는다고 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상대와 계속 잘 지내고 싶어서, 관계가 깨지는 순간을 피하려고 웃을 수도 있다. 배우가 남겨두는 웃음 때문에 관객은 표정 하나로 이 아이의 상태를 단정하기 어려워진다. 괜찮다는 말과 괜찮은 생활은 다르다.

학교 안의 소식을 듣는 어른에게는 그 차이를 알아차릴 책임이 있다. 아이가 말하는 방식이 익숙한 피해자의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로, 도움을 청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영화 속 대화를 지켜보는 일은 누가 명확하게 증언했는지 가려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어른이 알아듣기 좋은 방식으로 정리하지 못한 말에도 무슨 일이 들어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푸른 조명의 욕실에서 소녀가 휴대전화를 쥐고 앉아 있다

좋은 선생님 한 사람으로 충분할까

학생들을 도우려는 왕 선생(유관정)이 있다. 창청에게는 자기 말을 들어줄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왕 선생은 사건을 알아보려 하지만, 그 마음만으로 학교 전체가 움직이지는 않는다. 학교의 평판과 보호자의 걱정, 계속 이곳에 다녀야 하는 학생의 처지가 한꺼번에 걸려 있다.

왕 선생이 사실을 밝혀내더라도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알리는 과정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되거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잃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이 주저하는 것은 어른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왕 선생에게 필요한 일도 누군가를 한 번 설득하고 끝나지 않는다.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어른과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흔들리는 아이를 다시 만나야 한다. 감독은 실제로 만난 교사들 가운데 도우려는 의지가 있어도 제도의 벽에 가로막힌 사람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학생을 돕겠다는 결심을 실행하려면 학교 안에서 부딪힐 일이 이렇게 많다.

사건이 끝난 다음 날에도 학교는 필요하다

이 영화는 2011년 대만의 한 특수학교에서 드러난 성폭력 사건에서 출발했다. 감독은 당시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도록 취재한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인물과 사건을 바꾸었다. 실제 사건을 다룬다는 이유로 영화 속 학생 한 명을 실제 피해자 한 명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처음 새 학교에 왔던 창청의 기대는 거창하지 않았다. 말을 주고받을 친구를 만나고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 마음을 끝까지 기억하면, 아이를 보호한다는 말도 더 구체적이 된다. 위험한 곳에서 데려오는 일에 더해, 안전하게 배우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내일을 마련해주는 일. 이 영화의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은 처음부터 바라던 그 평범한 학교생활이다.

감상 포인트

◆ 전학생의 기대 — 창청이 새 학교에서 무엇을 반가워하는지 살펴보자. 이후 폭력을 알게 된 아이의 반응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곳에서 얻고 싶었던 관계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떠나는 선택이 왜 간단하지 않은지도 이 기대에서부터 드러난다.

◆ 베이베이의 웃는 얼굴 — 말의 내용과 표정이 맞아 보이는지, 그 표정으로 누구와의 관계를 유지하려 하는지 함께 보자. 웃음 하나로 아이가 괜찮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피해를 말하는 방식이 익숙한 예상과 다르더라도 그 사정을 듣게 한다.

◆ 수어가 오가는 시간 — 자막과 함께 손의 움직임, 상대를 향하는 시선을 살펴보자. 아이들의 대화에는 사건 설명 외에도 친밀함과 주저함이 담겨 있다. ‘말이 없는 아이들’이라는 막연한 이미지 대신,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 도움을 받은 뒤의 생활 — 왕 선생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에도 학생들에게 어떤 걱정이 남는지 따라가보자. 어른이 사실을 확인하는 것과 아이가 안심하고 학교에 오는 일 사이에는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영화는 그 이후를 생략하지 않으려 한다.

관련 작품

◆ 〈도가니〉 (2011, 황동혁) — 청각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학교 밖에 알리려는 과정을 다룬다. 두 영화에서 누가 아이의 말을 전달하고 어떤 어른들이 가로막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사건을 알리는 과정과 그곳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학생의 시간을 나란히 생각하게 한다.

◆ 〈파편들의 집〉 (2022, 시몬 레렝 빌몽) — 가정에서 떨어져 쉼터에 머무는 아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는 다큐멘터리다. 보호받는 곳에 왔다고 해서 애정과 불안이 곧바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관계와 생활을 돌보는 일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른 장소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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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