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러 간 집에서 위로를 받았다 | MovieLAB LAB

〈영주〉의 주인공 영주(김향기)는 부모를 죽게 한 교통사고의 가해자를 찾아간다. 그가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보고 싶고, 지금의 막막한 생활을 원망하고도 싶다. 그런데 그곳에서 …

미워하러 간 집에서 위로를 받았다 | MovieLAB LAB

〈영주〉의 주인공 영주(김향기)는 부모를 죽게 한 교통사고의 가해자를 찾아간다. 그가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보고 싶고, 지금의 막막한 생활을 원망하고도 싶다. 그런데 그곳에서 영주는 일자리를 얻고,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로. 영주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이들의 다정함이다. 미워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집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사고를 낸 상문(유재명)과 아내 향숙(김호정)이다. 영주는 이 부부가 자기 가족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은 영주가 누구의 딸인지 모른다. 부부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어린 아르바이트생이고, 영주에게는 원망하고 싶었던 사람들이다. 서로를 다르게 알고 시작한 관계 안에서, 영주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위안을 얻는다.

슬퍼할 틈보다 돈이 먼저 필요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영주는 남동생 영인(탕준상)을 돌보며 살아왔다. 학교를 다니며 자기 앞날을 준비할 나이에 두 사람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동생이 사고를 치면 돈을 마련해야 하고, 살고 있는 집도 계속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부모를 잃은 슬픔을 헤아리기도 전에, 부모가 하던 일들이 영주의 몫이 됐다.

이 생활을 알고 나면 영주가 가해자를 찾아가는 일이 복수의 시작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오래 쌓인 원망에는 당장 돈이 없다는 곤란과 자신을 도와줄 어른이 없다는 외로움이 뒤섞여 있다. 영주는 자기 마음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찾아간 사람이 아니다. 지금처럼 살게 된 이유를 누군가에게 묻고 싶지만, 그렇다고 그 답으로 생활이 나아질지도 알 수 없다.

김향기는 영주를 마냥 착하고 희생적인 누나로 연기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받고 싶었던 사랑을 동생에게 주는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동생을 챙기는 영주의 태도에도 다른 마음이 보인다. 잘 돌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부모가 없어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영인은 누나의 노력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다. 챙기는 일에 익숙해진 영주 자신도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실내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한 영주

저 사람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영주가 두부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원망의 대상에게 매일 얼굴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향숙과 상문은 눈앞의 아이를 돌봐주려 한다. 영주가 정체를 숨기고 있는 동안 그 친절은 사고에 대한 사과일 수 없다. 잘못을 용서받으려고 베푸는 일도 아니다. 영주는 자기 과거를 설명하지 않고도 잠깐 쉴 곳을 얻게 된 셈이다.

바로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기가 어렵다. 이 사람들이 잘해줄수록, 그 호의를 받아도 되는지 망설이게 된다. 관객도 비슷한 난처함에 놓인다. 영주가 조금이라도 편안했으면 좋겠는데 그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 집에서 받은 도움이 소중해질수록, 영주는 원망하는 마음만으로 부부를 대하기 어려워진다.

연출을 맡은 차성덕 감독은 상문과 향숙을 무조건 선한 사람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보듬을 줄 아는 어른으로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큰 잘못을 했다는 사실과 지금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한 인물 안에 두는 것이다. 영화는 영주가 받은 도움을 가짜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그 도움으로 사고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불편함을 남겨둔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만두를 함께 빚는 시간

두부가게에서 영주는 향숙과 만두를 만들고, 만든 음식을 함께 먹는다. 이때 두 사람에게는 말로 풀어야 할 사연 외에도 함께 할 일이 있다. 누군가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영주는 그것을 배운다. 낯선 집의 도움을 받는 아이로만 머물던 관계에 나란히 손을 움직이는 시간이 생긴다.

차성덕은 영주에게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일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영주가 가게에서 얻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장 필요한 돈과 음식도 있지만, 어제는 못하던 일을 배워서 해낼 수 있다는 경험도 있다. 생활이 자꾸만 나빠지는 동안에도 자기 손으로 끝마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 작고 구체적인 성취가 영주에게 왜 소중한지 짐작할 수 있다.

향숙과 만두를 빚는 모습이 애틋한 것은 그동안의 비극을 잠시 잊어서만은 아니다. 부모가 살아 있었다면 영주가 누렸을 법한 평범한 시간을, 가장 뜻밖의 사람 곁에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고, 일하고, 같이 먹는 일. 특별한 위로의 말 없이도 누군가와 하루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아이에게는 큰 변화다.

푸른빛 속에서 고개를 숙인 영주의 옆얼굴

김향기의 얼굴에서 기다리게 되는 것

영주는 자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김향기의 얼굴을 가까이 보는 장면들에서 관객은 말로 나오지 않은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화가 풀린 것인지, 경계를 잠깐 내려놓은 것인지, 그저 누가 잘해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표정 하나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마음을 용서라는 말로 정리할 수는 없다.

이 얼굴을 오래 보게 되는 것은, 관객이 영주에게 바라는 일들마저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기를 바라면서도, 그러고 나면 이 집에 지금처럼 찾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다. 진실을 털어놓는 것을 마냥 용기 있는 해결로 응원하기 어렵다. 영주가 잃을 수 있는 관계를 이미 함께 보았기 때문이다.

두부가게의 평범한 하루가 영주에게는 쉽게 누릴 수 없었던 시간이다. 동생을 챙기던 아이가 다른 어른에게 일을 배우고, 함께 만든 음식을 먹으며 잠깐 마음을 놓는다. 그 사이에도 부모를 잃은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영주의 편안한 얼굴이 반가우면서도 오래 바라보게 된다. 이 아이에게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관련 작품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형을 잃고 조카의 보호자가 된 남자가 자기 상처와 돌봄의 책임을 함께 감당한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그 사람과 살 준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실 뒤에도 계속되는 구체적인 생활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이어볼 만하다.

◆ 〈벌새〉 (2018, 김보라) — 집과 학교에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는 중학생 은희의 이야기다. 한 어른이 귀 기울여주는 시간이 아이에게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주에게 필요했던 보살핌을 떠올리며, 누군가를 진지하게 대한다는 평범한 일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