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교수의 연구실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학생은 학점이 걱정이고, 동료는 학교 일에 불만이 있다. 주희(김주령)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암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교수의 연구실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학생은 학점이 걱정이고, 동료는 학교 일에 불만이 있다. 주희(김주령)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지금 누구의 걱정이 더 큰지 순서를 정하지 않는다. 자기 삶을 정리하려는 사람 앞에 다른 사람의 삶이 계속 들어온다.
주희는 한때 배우였고 지금은 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친다. 남편과의 이혼 문제도 있다. 병원에서 들은 한마디가 이전의 고민들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해오던 일, 이어온 관계, 앞으로 할 생각이던 일들이 한꺼번에 다르게 느껴질 만한 순간이다. 그런데 주희는 자신의 위기를 크게 알리는 대신 찾아오는 사람을 만난다. 그 차분한 응대를 보면서 관객이 먼저 조급해진다. 이 사람에게도 누군가 말을 걸어주었으면 싶어서다.
의사는 악성 종양일 가능성을 설명하고 추가 검사를 권한다. 확진을 내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주희는 이미 죽음을 가까이 의식한다. 아직 알 수 없다는 의학적 판단과,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마음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영화는 그 거리를 병원 밖의 두 시간으로 펼친다.
관객 역시 병의 결론을 알지 못한 채 주희를 따라간다. 그래서 주희가 차분해 보일 때도 그 차분함을 편안함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방금 병원에서 들었던 말을 함께 기억하게 된다. 한 사람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이전 대화가 남아 있다.
주희가 사학연금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행동도 이 불안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막연히 삶을 돌아보는 대신 생활의 절차를 확인한다. 오래 일한 시간은 돈과 서류의 문제로 돌아온다. 아직 병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주희는 이후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서두름에 관객은 그녀가 얼마나 나쁜 쪽을 생각하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이때 주희의 판단이 성급하다고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장면에서 멀어진다. 알 수 없어서 더 미리 생각하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답이 없는 동안에도 돈은 계산해야 하고 사람은 만나야 한다. 영화가 살피는 것은 병의 결과 하나보다 그 불확실함을 안고 보내야 하는 시간이다.
학생에게 주희는 선생이다. 동료에게는 학교 사정을 나눌 상대이고, 딸과 어머니에게는 가족이다. 같은 연구실에 앉아 있어도 누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주희가 놓이는 관계가 바뀐다. 영화는 이 만남들을 통해 주희를 소개한다. 그가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길게 설명하기보다, 사람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그를 찾는지 보여준다.
학점이나 학교 행정에 관한 이야기는 주희의 건강 문제 옆에서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찾아온 사람은 자기 문제 때문에 이 방까지 온 것이다. 주희가 이야기를 듣는 동안 관객도 그 사람의 입장을 조금은 생각해야 한다. 주인공의 사정이 절박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걱정을 모두 하찮게 만들 수 없다.
김주령은 촬영할 때 찾아오는 사람들을 잘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이 인물을 연기하는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려준다. 불안을 얼마나 크게 표현할지뿐 아니라, 불안한 채로도 상대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를 생각한 것이다. 주희의 감정은 혼자 있는 모습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화 장면에서 주희가 말을 하지 않는 시간도 볼 이유가 생긴다. 누군가 주희에게 자기 일을 설명하는 동안, 주희는 그 말을 듣는 사람으로 남는다. 관객은 말하는 사람의 고민과 듣는 사람의 사정을 함께 안다. 한쪽의 대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대신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지 보게 된다.
주희를 오로지 좋은 선생이라고 칭찬하면 조금 아쉽다. 그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아름답지만, 그 방식이 지금 자신에게 얼마나 힘든지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부탁과 관심이 어떤 때는 부담이 되고 어떤 때는 혼자 두지 않는 일이 된다. 이 만남들을 한 가지 의미로 정리하지 않고 따라갈 여지가 영화의 연구실에 남아 있다.
주희는 지금 무대 위에서 연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극과 멀리 떨어진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 속에 이전부터 해온 일이 이어져 있다. 직업의 이름이 달라졌다고 좋아하던 일과의 관계까지 단번에 끊을 수 없다는 사정이 이 인물에게 붙어 있다.
영화는 주희만 따라가지 않고 남편 호진(문호진)의 시간도 보여준다. 연극 연출가인 호진은 공연을 준비하고, 아내와의 일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 영화 안에 들어온다. 관객은 연구실에서 만난 주희와 무대에 옮겨진 이야기를 나란히 보게 된다. 한 사람의 생활을 다른 사람이 작품으로 만들었을 때 생기는 거리를 의식하게 하는 구조다.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아내의 현재를 다 안다는 것은 다르다. 작품은 선택한 장면들로 이루어지지만, 그 이야기에 살았던 사람은 선택되지 않은 시간까지 가지고 있다. 주희가 학생을 만나고 자기 일을 정리하는 모습을 본 관객에게는 연극 밖의 생활도 계속 남아 있다. 무대의 이야기가 전부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이 대목에서 영화의 두 시간을 사건이 일어난 순서로만 붙이려 하면 쉽게 정리되지 않을 수 있다. 연극과 생활이 서로를 비추면서 주희에 대한 이해를 바꾸기 때문이다. 어느 장면이 무슨 일을 알려주는지와 함께, 누구의 시선으로 주희를 만나고 있는지 살펴볼 만하다. 연구실에 있는 주희와 누군가가 이야기로 만든 주희 사이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장건재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떠올리며 이 영화를 구상했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에서 젊은 가수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파리를 돌아다닌다. 이쪽에는 이미 한동안 일을 하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온 중년의 교수가 있다. 같은 두 시간이라는 제목 아래 서로 다른 생활이 놓인다.
주희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실감하게 한다. 그동안 가르쳐온 학생이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고, 가족이 있다. 삶을 정리하려 한다고 해도 서류나 물건만 정리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인물이 얼마나 많은 관계를 살아왔는지 짧은 만남들이 알려준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만났으니 불안이 사라졌다고 서둘러 말하고 싶지는 않다. 주희의 몸에 관한 답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준 보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병원에서 나온 뒤의 시간이 두려움 한 가지로 채워지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연극과 생활 사이에서 지나온 관계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보고 싶은 이유는 이 복잡한 오후에 있다. 혼자 생각할 틈을 주고 싶다가도 다음 방문객을 함께 만나고 싶어진다. 그 사람이 주희에게 무엇을 부탁할지뿐 아니라, 우리가 아직 모르는 주희의 어떤 면을 불러낼지 궁금해진다. 병의 가능성으로 시작한 영화가 한 사람의 건강 상태보다 넓은 삶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 주희가 먼저 알아보는 일 — 병원을 나온 뒤 연금 수령을 알아보는 행동에 주목하자. 확정되지 않은 진단이 생활의 준비로 이어진다. 말로 두려움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무엇부터 확인하는지가 주희의 불안을 알려준다.
◆ 듣는 사람의 시간 — 학생이나 동료가 이야기할 때 주희도 함께 보자. 말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고민이 중요하고 듣는 주희에게는 따로 말하지 않은 일이 있다. 대화의 내용뿐 아니라 두 사람이 다른 걱정을 지닌 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연구실로 들어오는 관계들 — 학생, 동료, 가족이 주희에게 각각 무엇을 기대하는지 살펴보자. 한 장소를 여러 사람이 방문하면서 주희의 생활이 넓어진다. 같은 응대라도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그 의미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 연극에 들어간 생활 — 호진이 준비하는 무대와 주희의 시간을 이어 보자. 누군가에 관한 작품을 만든다고 그 사람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극 밖에서 본 주희를 기억하면 무대 위 이야기에 남는 것과 빠지는 것을 궁금해하게 된다.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아녜스 바르다) —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가수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주희에게 사람들이 찾아오는 오후와 비교하면, 비슷한 불안을 가진 두 인물의 생활이 이동과 만남을 통해 얼마나 다르게 드러나는지 볼 수 있다.
◆ 〈한국이 싫어서〉 (2024, 장건재) — 익숙한 생활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려는 여성을 따라간다. 주희가 이미 쌓인 관계를 마주한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른 관계와 일상을 만들려 한다. 살던 방식을 바꾸고 싶어지는 순간을 같은 감독이 어떻게 다루는지 이어볼 만하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