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된 배우에게, 다시 주희를 맡겼다 | MovieLAB LAB

장건재 감독은 배우 김주령과 나란히 나이 들며 다음 영화를 생각했다. 〈잠 못 드는 밤〉에서 30대 주희를 연기했던 배우에게, 이번에는 40대 주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같은 이…

친구가 된 배우에게, 다시 주희를 맡겼다 | MovieLAB LAB

장건재 감독은 배우 김주령과 나란히 나이 들며 다음 영화를 생각했다. 〈잠 못 드는 밤〉에서 30대 주희를 연기했던 배우에게, 이번에는 40대 주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같은 이름이지만 전편 인물의 십 년 뒤를 이어 쓰는 속편은 아니었다. 감독은 그동안 알고 지낸 배우와 새 인물을 만나려 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의 시작에는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있다.

이번 주희(김주령)는 연극과 교수다. 병원에서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연구실로 돌아오지만, 문밖에는 저마다의 용건을 가진 사람들이 기다린다. 자기 몸을 걱정하기에도 벅찬 날, 남의 말을 듣는 얼굴을 어떻게 찍을까. 장건재는 누군가의 말을 받아주는 사람을 영화 가운데 놓았다. 그녀의 사정을 알면서도 다른 이들의 말을 함께 들어야 하는 오후다.

친하다고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김주령은 〈잠 못 드는 밤〉을 찍을 때 꼭 필요한 장면과 대사 외에는 배우들이 말을 만들어갔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찍어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감독을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장건재와의 친분은 편하게 지내는 사이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었다. 촬영 중에는 미처 알 수 없던 영화의 모양을 나중에 확인한 경험이 다음 작업의 바탕이 됐다.

필요한 장면이 정해져 있어도, 그 장면에서 오가는 말에는 배우가 알고 있는 생활이 들어갈 수 있다. 장건재는 이야기를 준비하는 일과 눈앞의 사람이 말을 만드는 일을 함께 두었다. 김주령이 촬영 때의 불안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그 말들이 완성된 영화 안에서 제자리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만난 주희는 배우 일을 그만두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렇다고 김주령의 실제 삶을 옮긴 사람은 아니다. 배우 자신도 힘든 날에 찾아오는 학생을 늘 반겨주는 주희를 보며 놀랐다고 했다. 오래 알고 지낸 배우에게 익숙한 모습만 부탁하는 대신, 그 배우도 궁금해할 사람을 맡기는 것. 두 주희 사이에는 흐른 세월뿐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울음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듣는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 김주령이 붙들었던 연기의 방향은 찾아오는 사람을 잘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자신의 위기를 계속 드러내기보다 상대에게 반응하려 했다. 장건재가 김주령에게서 보았다는 고요함도 이 선택과 어울린다. 고요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얼굴은 아니다. 다음 사람이 무엇을 말하느냐에 따라 주희가 해야 할 대답도 달라진다.

이때 관객에게 필요한 관심도 조금 달라진다. 주희가 언제 감정을 터뜨릴지만 기다리면 학생과 동료의 방문은 주인공의 시간을 빼앗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희가 그들의 말을 어떻게 받는지 보면, 이 교수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알아가게 된다. 몸의 상태를 설명하는 정보와 평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한 오후에 겹친다. 불안한 사정을 아는 관객은 일상적인 응대에도 마음을 쓰게 된다.

이 영화는 김주령과 주말마다 촬영하며 만들어졌다. 장건재는 연출뿐 아니라 촬영도 맡았고, 제작사 동료들은 녹음과 데이터 관리, 현장 진행과 조명 등을 나누어 담당했다.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는 동안에도 그 옆에는 다른 사람의 일이 있다. 장건재는 동료들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먼저 생각한다고 밝혔다.

흑백 화면 속 코트를 입은 여성이 건물 앞 성상 곁에 서 있다

배우가 일터를 먼저 알아가도록

〈달이 지는 밤〉에서는 촬영 전에 배우가 다른 사람의 일상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김종관 감독과 장건재가 각각 한 부분을 맡은 이 영화에서, 장건재는 무주의 여름을 찍었다. 군청에서 일하는 민재(강진아)를 위해 배우는 실제 복지과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며 업무를 살폈다. 영화의 회의 장면에는 강진아를 제외하고 실제 직원들이 출연했다.

장건재는 주민들과 촬영하기에 앞서 회의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 복지사가 집을 방문하면 무엇을 확인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을 하는 사람을 카메라 앞에 세우기만 하면 장면이 저절로 완성되리라 여기지는 않았던 것이다.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준비가 필요했고, 배우에게는 그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을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민재의 직장은 연애 이야기가 잠시 멈추는 배경 이상으로 보인다. 이 사람이 누군가의 연인이기 전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장건재가 실제 주민과 일터를 영화 안에 들인 선택은 인물의 생활을 넓혀준다.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날에도 그곳에서는 일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기대하게 한다.

감독이 배우에게서 발견한 것은 직업을 익히는 성실함만이 아니었다. 장건재는 강진아의 힘 있는 걸음이 좋아 걷는 모습을 많이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말과 사연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하러 움직이는 몸, 다른 사람과 나란히 가는 속도도 그 사람의 인상을 만든다. 장건재는 이야기에 필요한 행동을 주문하면서, 배우가 이미 가지고 온 모습도 살폈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그 관심이 자신과 다른 세대의 삶으로 향한다. 장강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장건재는 한국에 사는 기혼 중년 남성이 해외로 떠나는 20대 여성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계나(고아성)를 이해한다는 확신부터 내세우지 않고, 젊은 배우와 스태프의 의견을 듣고 반영했다.

그렇다고 주변의 의견을 모아 계나의 선택에 정답을 붙이려 하지는 않았다. 감독은 자신도 계나가 도착할 최종 목적지를 결론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는 곳이 바뀔 때 마음도 어떻게 달라지는가였다. 이민을 성공과 실패로 가르는 이야기보다, 장소를 옮기며 사람을 만나고 자기 상태를 알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둔 것이다.

이를 알고 보면 계나를 응원하는 방식에도 여유가 생긴다. 떠나는 선택을 옳다고 증명해야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 모르면서도 지금의 생활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감독이 결론을 서두르지 않은 만큼, 관객도 계나가 다음에 만날 사람과 새로 꾸릴 하루를 더 지켜볼 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로 돌아오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도 달라진다. 주희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지 않는 동안에도 영화는 그녀를 알아갈 길을 열어둔다. 상대의 말을 듣고 답하는 김주령을 바라보는 일이다. 오래전 함께했던 배우에게 다시 주희를 제안한 감독은, 이번에는 그 얼굴에서 어떤 사람을 발견했을까. 관객도 그 만남에 천천히 참여하게 된다.

감상 포인트

◆ 주희가 대답하기까지 — 찾아온 사람의 용건과 주희의 반응을 함께 보자. 자신의 불안만 드러내는 주인공이 아니어서, 상대를 대하는 방식으로 성격을 알아가게 된다. 큰 감정 표현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관람의 즐거움이 있다.

◆ 연구실에 들어오는 각자의 사정 — 학생과 동료가 주희에게 바라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여러 방문이 단순한 반복으로 끝나는지, 주희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지 따라가면 짧은 시간을 구성한 감독의 선택이 보인다.

◆ 민재의 일터와 걸음 — 〈달이 지는 밤〉에서 민재가 일하는 모습과 밖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함께 보자. 실제 업무를 배운 배우의 준비와 감독이 좋아한 배우의 몸짓이 한 인물 안에 들어 있다. 직업 설명만으로는 알 수 없는 활기를 느껴볼 수 있다.

◆ 계나에게 결론을 재촉하지 않기 — 〈한국이 싫어서〉에서 계나의 선택을 평가하기에 앞서 새 장소에서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 따라가보자. 감독이 목적지보다 이동 중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이 인물의 생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필 만하다.

관련 작품

◆ 〈달이 지는 밤〉 (2022, 김종관·장건재) — 두 감독이 서로 다른 계절의 무주를 담았다. 장건재가 맡은 여름의 일터와 사람들을 보면, 배우와 주민의 만남으로 허구의 생활을 만드는 방식을 살필 수 있다. 두 감독이 같은 장소에서 어떤 다른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비교해볼 만하다.

◆ 〈한국이 싫어서〉 (2024, 장건재) —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계나를 따라간다. 오랜 동료와 작은 공간을 꾸린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 시선을 넓혀, 감독이 자신과 다른 처지의 인물을 어떻게 알아가려 했는지 이어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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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