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오종은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찍으면서 주인공의 성별과 직업부터 바꿨다. 〈피터 본 칸트〉 이야기다. 출발점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이…
프랑수아 오종은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찍으면서 주인공의 성별과 직업부터 바꿨다. 〈피터 본 칸트〉 이야기다. 출발점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이다. 젊은 여성에게 빠지는 여성 의상 디자이너가, 청년을 사랑하는 남자 영화감독으로 바뀌었다. 오종은 존경하는 감독의 명작을 그대로 재현할 생각이 없었다.
영화 속 감독 피터(드니 메노셰)는 청년 아미르(칼릴 벤 가르비아)에게 반한다. 피터는 아미르가 배우가 되도록 돕겠다며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제안한다. 문제는 이 능력이 상대의 마음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원작에서도 디자이너는 젊은 연인의 패션계 진출을 도우려 했다. 오종은 이 관계를 영화감독과 배우 지망생에게 옮겼다. 배우를 고르고 연기를 주문하던 사람이 사적인 관계에서도 상대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한다. 오종은 선배 감독의 영화에 자기 직업의 불편한 면을 들여놓았다.
오종에게도 원작의 명성은 부담이었다. 이미 파스빈더의 희곡을 영화로 옮긴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직접 만든 유명한 영화까지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찍어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오종은 이를 고전 희곡을 새로운 연출자가 무대에 올리는 일에 비유했다. 텍스트를 존중하면서도 인물과 분위기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원작 속 여성 디자이너에게서 파스빈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파스빈더와 함께 일했던 편집자 율리아네 로렌츠와 이야기를 나누며, 감독의 연애 경험이 작품에 들어 있다는 생각도 확인했다. 오종은 그 가능성을 영화계로 배경을 옮기는 출발점으로 삼았다. 다만 〈피터 본 칸트〉는 파스빈더의 실제 삶을 순서대로 재현하는 전기영화가 아니다. 한 예술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낸 영화다.
직업을 바꿔도 사랑과 지원이 뒤섞이는 관계는 남는다. 피터는 청년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의 경력을 만들어줄 사람이다. 도움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나뉘는 순간, 두 사람은 연인으로만 만날 수 없게 된다. 오종은 원작에 있던 불균형을 자기가 잘 아는 영화계 안에서 다시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역할을 줄 수 있는 감독의 권한이 연애에도 끼어드는 것이다.
피터가 집 안의 관심을 독차지할 때도 조수 카를(스테판 크레퐁)은 곁에 있다. 피터는 명령하고 자기 감정을 쏟아내지만 카를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 조합만으로도 피터의 연애 소동은 달리 보인다. 당사자에게는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지만, 누군가는 그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
카를의 침묵은 배우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문이 아니었다. 오종은 크레퐁이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현장의 상황에 반응했다고 설명했다. 카를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도 찍었지만, 편집에서는 울지 않는 쪽을 골랐다. 피터의 감정이 격해질 때 조수까지 함께 울면 방 전체가 같은 감정에 휩싸인다. 카를이 무표정하게 남아 있으면 관객은 피터의 고통뿐 아니라 그 소동을 보는 다른 사람의 존재도 의식하게 된다.
누가 말을 많이 하는지와 누구에게 눈이 가는지는 다를 수 있다. 오종은 대사를 거의 독점하는 주인공 옆에, 침묵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인물을 둔다. 사랑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연민하면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피곤한 존재인지 웃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장면에서 느껴야 할 감정을 하나로 정해주지 않는다.
드니 메노셰에게 피터는 편하게 맡을 역할이 아니었다. 많은 대사를 기억해야 했고, 춤을 추거나 몸을 드러내는 장면도 부담스러웠다. 오종과 이미 〈인 더 하우스〉, 〈신의 은총으로〉를 함께 만든 배우였지만 친분만으로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역할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촬영 전에 충분히 연습했다.
메노셰는 리허설과 조명 등 촬영의 준비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화면에서 거침없이 구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 실제 배우에게는 안심할 조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피터가 배우를 자기 뜻대로 지배하려는 감독이라면, 그를 찍는 오종은 배우마다 필요한 방식이 다르다고 말한다. 영화 속 인물을 감독 본인과 그대로 겹쳐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캐스팅에는 과거의 영화를 다시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원작에서 젊은 연인을 연기했던 한나 쉬굴라는 이번에 피터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같은 배우를 같은 자리에 돌려놓는 대신 시간이 흐른 얼굴에 다른 역할을 맡겼다. 원작을 아는 관객에게는 반가운 만남이고,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아들에게 찾아온 어머니의 얼굴이다. 어느 쪽으로 보아도 장면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오종은 〈스위밍 풀〉에서도 창작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추리소설가 사라(샬롯 램플링)가 머무는 집에 젊은 여성 줄리(뤼디빈 사니에)가 찾아오고, 작가의 일상과 상상이 흔들린다. 오종은 자신이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직접 설명하는 대신 사라에게 자신을 투영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가의 이야기를 찍으며 감독인 자기 일도 생각한 것이다.
사라에게 다른 사람은 함께 지내야 할 상대이면서 이야기의 재료가 된다. 피터에게 청년은 사랑의 대상이면서 자기 영화에 출연시킬 배우다. 오종은 이처럼 작업과 사적인 감정이 섞이는 사람에게 자꾸 돌아온다. 창작을 고상한 영감의 순간으로만 보여주지 않고, 누군가를 유심히 보고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욕심까지 들여다본다.
〈피터 본 칸트〉를 보고 나면 피터의 요란한 얼굴과 함께 말없는 카를이 떠오를 수 있다. 그것은 이 영화의 감독을 알아가는 좋은 출발점이다. 오종은 주인공에게 무대를 내주면서도 다른 배우에게 그 무대를 지켜볼 자리를 남긴다. 한 사람의 비극에 몰입하다가 옆 사람의 표정을 보고 웃게 된다면, 원작을 자기 영화로 바꾼 오종의 손길을 이미 만나고 있는 셈이다.
◆ 감독이 해줄 수 있는 일 — 피터가 청년에게 내미는 도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배우로 데뷔하도록 돕고 함께 살자는 제안이 연애에서 어떤 기대를 낳는지 보인다. 주인공의 직업을 영화감독으로 바꾼 각색이 관계를 어떻게 달리 만드는지 느낄 수 있다.
◆ 말 없는 조수에게 가는 눈길 — 피터가 말을 쏟아낼 때 카를도 함께 보자. 같은 공간에 있어도 두 사람이 같은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카를의 침묵 덕분에 피터의 말이 더 우스워지거나 불편해지는 순간을 찾아볼 만하다.
◆ 거침없는 인물의 불안한 몸 — 메노셰가 피터의 자신감과 취약함을 어떻게 함께 드러내는지 살펴보자. 큰 목소리만으로는 이 인물의 고독이 다 전해지지 않는다. 배우가 부담스러워했던 움직임까지 준비해낸 과정을 떠올리면, 권위 있는 감독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도 다른 감정이 생긴다.
◆ 창작자의 관심을 받는 사람 — 〈스위밍 풀〉의 사라와 〈피터 본 칸트〉의 피터를 비교해보자. 둘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 작업에 필요한 모습도 찾는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를 자기 작품 안에 두려는 욕심이 만나는 지점이다.
◆ 〈피터 본 칸트〉 (2022, 프랑수아 오종) — 오종이 존경하는 파스빈더의 작품을 영화감독의 사랑 이야기로 다시 만들었다. 원작 지식 없이도 배우들의 크고 작은 반응을 따라가며 각색과 연출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 〈스위밍 풀〉 (2003, 프랑수아 오종) — 소설가와 젊은 여성이 한집에 머물며 실재와 상상의 경계가 흔들린다. 좁은 공간에 창작자를 놓은 오종이 상대를 관찰하는 마음을 얼마나 의심스럽고 흥미롭게 만드는지 이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