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님, 연애까지 연출할 순 없죠 | MovieLAB LAB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영화에 출연할 기회라면 어떨까. 〈피터 본 칸트〉의 피터(드니 메노셰)는 성공한 영화감독이다. 배우 시도니(이자벨 아자니)가 소개한 청년 아…

거장님, 연애까지 연출할 순 없죠 | MovieLAB LAB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영화에 출연할 기회라면 어떨까. 〈피터 본 칸트〉의 피터(드니 메노셰)는 성공한 영화감독이다. 배우 시도니(이자벨 아자니)가 소개한 청년 아미르(칼릴 벤 가르비아)에게 반한 그는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함께 살자는 제안까지 이어진다. 구애와 캐스팅, 연애와 후원이 같은 집 안에서 시작된다.

피터는 사람을 빛나게 찍는 방법을 안다. 문제는 카메라 앞에 세운 사람을 자기 곁에 계속 머무르게 할 방법까지 아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연출을 맡은 프랑수아 오종은 이 거장의 사랑을 짧고 격렬한 소동으로 만든다. 피터가 감정을 크게 드러낼수록 웃기다가, 그 감정을 받아내야 하는 주변 사람이 보이면 조금씩 불편해진다. 연애의 비극에 자기 혼자 주연으로 출연하려는 남자 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다.

구애가 오디션이 되는 방

피터는 아미르를 카메라 앞에 앉히고 이야기를 듣는다. 좋아하는 남자를 더 알고 싶은 자리인 동시에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는 자리다. 아미르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따라 피터의 관심도 달라진다. 이 장면에서 감독의 직업은 인물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는 수단이 된다.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은 아미르의 말도 다르게 듣게 한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까, 좋은 배역을 얻기 위해 자신을 보여주는 배우일까. 어느 한쪽이라고 결정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면서 그가 열어줄 기회도 바랄 수 있다. 문제는 피터가 그 여러 마음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

오종은 두 사람의 만남을 촬영하는 오디션으로 바꾸어, 일하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감독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상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직업적 능력이 사적인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피터는 아미르를 누구보다 멋있게 찍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가 카메라 밖에서 원하는 것까지 대신 정할 수는 없다.

이 간격이 영화의 연애를 흥미롭게 만든다. 두 사람에게는 실제 매혹이 있다. 동시에 한 사람은 성공한 감독이고 다른 사람은 기회를 기다리는 배우다.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이 있다고 이 차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피터의 선물이 커질수록 받는 쪽에 어떤 기대를 하는지도 더 궁금해진다.

큰 초상과 침대가 놓인 방 안의 사람들

가장 조용한 사람이 가장 잘 보인다

피터의 집에는 조수 칼(스테판 크레퐁)이 있다. 피터는 그를 함부로 대하고, 칼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일을 한다. 말이 넘쳐나는 집에서 유일하게 말을 아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사가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피터가 자기 감정에 빠져 있을 때에도 시선이 자꾸 칼에게 간다.

오종은 칼이 우는 장면도 촬영했지만 편집에 넣지 않았다. 주변 인물들이 감정을 크게 터뜨릴 때 오히려 무표정하게 있는 모습을 원했다. 아미르가 잡지에 실린 자기 사진을 보여주는 순간 칼이 눈썹을 조금 움직이는 반응도 감독이 따로 언급한 대목이다.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성공인 일이 바로 곁의 사람에게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칼이 피터의 소동에 같은 크기의 감정으로 응답하지 않으니 관객에게는 다른 시점이 생긴다. 피터는 지금 겪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인 듯 굴지만, 누군가는 그 와중에도 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의 감정만으로 이 집의 하루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칼의 침묵을 곧 동의라고 생각하면 놓치는 것이 많다. 말하지 않는 사람도 보고 있고, 듣고 있고, 반응하고 있다. 영화가 그 반응을 관객에게 볼 수 있게 남겨둔다는 점이 좋다. 피터가 자기를 바라봐달라고 요란하게 요구할수록, 칼이 차지하는 작은 자리가 더 또렷해진다.

피터와 시도니가 나란히 있는 모습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큰 상처, 믿어주기에는 너무 큰 몸짓

드니 메노셰의 피터는 자기 감정을 줄여서 표현할 생각이 별로 없다. 사랑할 때도, 상처받을 때도 방 안을 자신의 감정으로 가득 채운다. 연출하는 사람이면서 누구보다 연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오종은 이 남자가 우스운 동시에 상처받은 사람으로도 보이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그 바람은 배우의 큰 몸짓과 취약함을 함께 보는 데서 작동한다. 피터가 과장되게 군다고 해서 괴로움까지 모두 연기는 아니다. 그러나 정말 괴롭다는 이유로 옆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안쓰러워지던 마음이 짜증으로 바뀌고, 짜증을 내다가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거두게 된다. 한 감정으로 오래 편들기 어려운 인물이다.

영화가 거의 피터의 집 안에서 진행되는 것도 그 효과를 더한다. 밖으로 나가 다른 사건을 만날 틈이 적다. 한 사람의 기분이 방의 분위기를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 방문한 사람과 곁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 기분을 어떻게 견디는지가 보인다. 잘 꾸민 집을 갖고 있다고 그 안의 관계까지 잘 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을 새로 각색했다. 원작의 여성 패션디자이너를 남성 영화감독으로 바꾸면서, 오종은 자신이 아는 일과 사랑의 관계를 가져왔다. 피터에게 파스빈더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어도 실제 생애를 그대로 옮긴 전기로 볼 필요는 없다. 타인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그 타인과 함께 지내는 데는 서툴 수 있다는, 훨씬 가까운 모순을 다룬다.

피터가 영화에서라면 더 근사한 연애를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말만 남기고, 보기 싫은 반응은 잘라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사귀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할 수는 없다. 〈피터 본 칸트〉는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남자를 우습고도 서글프게 바라본다. 사랑을 이토록 크게 말하는데 정작 남의 작은 반응은 잘 보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이 집에서는 피터의 고백만큼 칼의 말 없는 얼굴을 오래 보게 된다.

감상 포인트

◆ 카메라 앞의 아미르 — 피터가 아미르를 촬영하며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보자. 상대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과 배우를 발굴하려는 관심이 같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하나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 대사가 없는 칼 — 피터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칼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자. 말하지 않는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객에게는 보이는데 피터가 충분히 헤아리지 않는 반응들이 관계를 더 선명하게 한다.

◆ 감정의 크기가 다른 사람들 — 피터의 큰 반응 옆에서 다른 인물들이 같은 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비교해보자. 한 사람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익숙한 소동일 수 있다. 이 차이에서 영화의 웃음과 잔인함이 함께 생긴다.

◆ 집 안에서 섞이는 일과 연애 — 피터가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상대는 어떤 기대를 갖고 응하는지 보자. 감독과 배우, 고용주와 조수, 연인이 한 공간에 겹쳐 있다. 친밀한 말 속에도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가 숨어 있을 수 있다.

관련 작품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셀린 시아마) — 한 사람을 그리기 위해 바라보던 시선이 사랑으로 이어진다. 창작하는 사람과 작품의 대상이 된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알아가는지 비교할 수 있다. 누구의 시선과 의사가 작업에 반영되는지 살피면 두 영화의 차이가 더 뚜렷해진다.

◆ 〈500일의 썸머〉 (2009, 마크 웹) — 사랑했던 시간을 되짚으면서 자신이 기대한 관계와 상대가 원한 관계의 차이를 마주한다. 피터가 아미르를 보며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실제 관계 사이의 간격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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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