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저렇게 맛있어 보이는데,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왜 저럴까. 〈음식남녀〉의 주사부(랑웅)는 일요일이면 세 딸을 위해 온갖 요리를 만든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 차…
음식이 저렇게 맛있어 보이는데,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왜 저럴까. 〈음식남녀〉의 주사부(랑웅)는 일요일이면 세 딸을 위해 온갖 요리를 만든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 차례로 상에 오른다. 밖에서는 이름난 요리사의 솜씨에 감탄할 법한데, 정작 그 음식을 먹는 가족의 대화는 영 신통치 않다. 요리를 준비할 때의 활기와 식사 시간의 어색함이 한집 안에 있다.
둘째 딸 가천(오천련)은 이 자리에서 아파트를 샀다고 알린다. 가족과 따로 살겠다는 뜻이다. 일요일마다 함께 밥을 먹는다고 서로의 계획까지 알고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줄 알았던 사람이 식탁에서 갑자기 다른 미래를 꺼낸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속 편히 식사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안 감독은 가족의 식탁을, 서로 얼마나 가까운지와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자리로 만든다.
주사부의 요리는 가족을 향한 정성이다. 하지만 그 정성이 대화를 쉽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는 요리사로서 무엇을 얼마나 익히고 어떤 순서로 내놓을지 안다. 딸들에게는 그런 솜씨가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각자 밖에서 보낸 시간과 마음속의 계획까지 아버지가 준비해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안은 아버지가 딸들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딸들을 아끼는 마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말로 풀기 어려운 마음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에 담는 것이다. 감독 자신도 한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요리를 했다. 영화를 찍느라 가족과 자주 떨어져 지내게 된 뒤에도 요리는 가족에게 애정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이 영화의 부엌에는 가족을 먹이는 사람이 느끼는 보람과 답답함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딸들의 무덤덤한 반응을 서운하게만 보기도 어렵다. 잘 차린 식사를 대접받는다고 해서 아버지가 바라는 생활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가천에게는 자기 집과 일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버지의 수고를 알아주는 것과 독립을 미루는 일은 별개다. 한 사람에게는 가족을 모으는 일요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제 따로 살겠다고 말할 기회가 된다.
그런데 이 능숙한 요리사에게 문제가 생겼다. 주사부는 미각을 잃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몸에 익힌 솜씨로 요리를 하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의 맛을 예전처럼 알 수 없다. 가까운 동료에게는 털어놓은 사정이지만 딸들과의 식탁에서는 이 어려움도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 설정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마음을 바꾼다. 처음에는 딸들의 생활을 자기 방식으로 붙들어두는 완고함이 보였다면, 이제는 그가 잘하던 일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손이 서툴러지는 모습으로만 보여주지 않는 점도 좋다. 손은 여전히 능숙하다. 그 손으로 만든 결과를 스스로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가족은 오랫동안 보아온 모습을 기준으로 서로를 대하기 쉽다. 요리를 잘하는 아버지는 앞으로도 계속 맛있는 음식을 해줄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주사부에게도 남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딸들이 독립을 준비하는 동안 아버지도 예전과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다. 모두가 변하고 있는데, 식탁의 자리만 익숙한 모양으로 놓여 있는 셈이다.
영화는 세 딸의 생활을 집 밖으로 따라간다. 첫째 가진(양귀매)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가천은 항공사에서 일하며, 막내 가령(왕유문)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집에서는 아버지 앞에 나란히 앉는 딸들이지만, 밖에서는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자기 일을 한다. 연애를 대하는 태도도, 가족에게 말할 수 있는 범위도 다르다.
이들의 소식은 종종 식사 도중에 발표된다. 듣는 사람은 함께 결정한 적도 없는데 이미 일이 상당히 진행돼 있다. 그제야 놀라거나 걱정하고, 때로는 자기 생각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영화의 웃음은 이런 뒤늦은 반응에서 나온다. 한집에 사는 사이이니 먼저 알았을 것이라는 기대가 번번이 어긋난다. 가족이라도 상대의 모든 일을 제때 전해 들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사부도 딸들의 소식을 듣고 반응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에게도 가족이 미처 짐작하지 못한 바람과 관계가 있다. 아버지라는 호칭을 잠깐 내려놓으면, 이 남자 역시 누군가를 만나고 남은 날을 새롭게 꾸려가고 싶은 사람이다. 딸들에게 독립을 허락할 수 있느냐고 묻던 영화가 어느 순간 딸들에게도 아버지의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묻게 된다.
이 변화 덕분에 주사부는 자식을 보내고 혼자 남을 노인이라는 예상에서 벗어난다. 자녀가 독립하는 것은 부모가 할 일을 마쳤다는 뜻일 수 있지만, 부모의 삶까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뜻밖의 선택을 마주할 때 느끼는 당혹감에는, 아버지는 늘 아버지답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었던 마음도 섞여 있다.
이 가족은 식탁에 앉아 서로의 소식을 듣는다. 입맛이 없고 마음이 불편한 날에도, 다른 식구의 생활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다음 식사 때는 또 누가 무슨 말을 꺼낼까. 주사부가 공들여 준비하는 요리만큼이나 식구들이 미처 꺼내지 않은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음식에 눈이 갔지만, 이제는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입을 보게 된다.
◆ 요리할 때와 식사할 때의 분위기 — 음식을 준비하는 주사부의 능숙함과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어색함을 나란히 보자. 같은 정성이 상대에게 같은 기쁨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부엌에서 생긴 기대가 대화 중에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피면 음식과 가족 이야기가 긴밀하게 연결된다.
◆ 가천의 독립 선언 — 아파트를 샀다는 말을 다른 식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자. 말하는 사람에게는 준비해온 계획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갑작스러운 변화다. 이후 식사 자리에서 새로운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이 가족이 서로에 관해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도 달라진다.
◆ 능숙한 손과 둔해진 미각 — 주사부의 요리 솜씨와 맛을 느끼는 능력이 어긋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눈에 보이는 능숙함만으로는 그가 겪는 어려움을 알 수 없다. 가족에게 늘 같은 일을 해주던 사람도 돌봄과 도움이 필요해지는 때가 있음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 집 밖의 가족들 — 세 딸이 일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모습, 주사부가 가족 밖에서 맺는 관계를 함께 보자. 집에서 맡은 역할만으로는 각자의 하루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 생활들을 알고 식탁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뜻밖이었던 선택에도 그 사람 나름의 사정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허진호) —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사는 집에서 보살핌이 오가는 방식을 만날 수 있다. 큰마음을 말로 꺼내기보다 생활에 필요한 일을 알려주고 챙기는 관계다. 익숙한 일과 직업에 담긴 애정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 〈타이페이 스토리〉 (1985, 에드워드 양) — 연인이 새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싶은지에 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 출발한다. 함께하는 미래를 당연하게 여길수록 상대가 달라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는 점이 두 영화에 닿아 있다. 독립을 위한 집 한 채가 관계에도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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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