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새 삶을 시작했다. 그것도 주변의 칭찬을 받는 착한 사람으로. 〈지옥만세〉의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가 서울까지 찾아가 만난 채린(정이주)은 두 사람을…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새 삶을 시작했다. 그것도 주변의 칭찬을 받는 착한 사람으로. 〈지옥만세〉의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가 서울까지 찾아가 만난 채린(정이주)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는다. 종교에 귀의한 그는 예전과 달라졌다고 한다. 나미와 선우는 아직 그 애가 남긴 상처 안에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혼자 깨끗해진 것처럼 웃고 있다. 복수하러 간 쪽이 오히려 심술궂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이 얄미운 상황은 영화를 엉뚱한 방향으로 데려간다. 두 소녀는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삶을 끝내려 했고, 채린의 소식을 듣고는 복수부터 하자며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계획이 꼬인다. 상대를 무너뜨릴 방법보다, 저 웃음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복수극인 줄 알고 따라왔다가 종교 시설 안에서 길을 잃게 되는 모험이다.
채린이 있는 곳에서는 회개하고 봉사하면 낙원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착한 일을 얼마나 했는지가 점수로 쌓인다.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혔던 채린이 이곳에서는 믿음직한 신도로 인정받는다. 예전의 행동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는 새 평가표라도 얻은 듯하다.
이때 나미와 선우가 느끼는 당혹감은 단순히 상대가 잘사는 꼴을 못 보겠다는 심술이 아니다. 채린이 정말 달라졌다면, 자신이 괴롭힌 사람에게 무엇을 했는지가 먼저 궁금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지고 열심히 봉사하는 것만으로 두 소녀와의 관계까지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 그런데 채린의 새 생활에는 그런 순서가 생략되어 있다. 용서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바람이 용서할지 말지 결정할 사람보다 앞서간다.
채린을 연기한 정이주는 인물의 중심을 ‘죄를 용서받고 싶은 마음’에 두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착한 척 연기하는 악당이라고 정리하면 그의 간절함을 놓친다. 채린은 정말로 달라진 자신을 믿고 싶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스스로 진심이라고 느끼는 것과 상처 입힌 사람에게 책임을 다하는 일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진심을 보여주면서도 피해자의 자리를 빼앗지 않는다. 채린에게 사연이 있다는 이유로 나미와 선우가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화가 난 채로, 어리둥절한 채로 채린을 바라볼 시간을 남긴다. 가해자를 이해할 만한 설명보다 지금 피해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먼저 따라간다.
종교 시설은 학교와 전혀 다른 곳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가 인정받고 누가 밀려나는지 살피면 익숙한 질서가 나타난다. 점수를 잘 얻는 사람은 앞서가고, 집단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머물 자리가 좁아진다. 모두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곳에서도 남보다 먼저 자격을 얻으려는 경쟁이 생긴다.
이곳을 이끄는 어른 명호(박성훈)의 존재도 그 질서와 떼어놓기 어렵다. 아이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 두 소녀에게는 이미 학교에서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같은 말을 쓰지 않고 같은 옷을 입지 않아도, 집단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려면 누군가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은 닮아 있다.
임오정 감독은 학교와 종교 집단을 함께 다루며, 약속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아이들을 경쟁시키는 구조에 관심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두 장소를 똑같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곳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누가 규칙을 정하는지, 따르지 못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보게 한다. 나미와 선우의 눈이 삐딱해서 오히려 먼저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복수라는 목적만 바라보던 두 사람은 이제 채린이 속한 장소 자체를 살펴야 한다. 미운 상대가 처한 상황을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를 용서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 사람이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있다. 영화는 두 마음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 애매하고 복잡한 처지가 두 소녀의 모험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나미와 선우는 완벽하게 준비된 복수자가 아니다. 마음은 급한데 계획은 허술하고, 큰소리를 쳤다가도 겁을 먹는다. 같은 일을 겪었다고 모든 반응이 같지도 않다. 나미가 앞서 나가려 할 때와 선우가 자기 방식으로 버티는 때가 다르다. 두 배우의 기운이 달라서 한 팀이 됐다는 사실도 곧장 편안한 우정으로 굳어지지 않는다.
감독은 오우리의 오디션에서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눈여겨봤다. 나미의 부산함을 보면, 씩씩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방효린의 선우는 그 옆에서 다른 속도로 반응한다. 자주 건네는 짧은 대답 하나에도 힘이 실릴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있다. 영화의 유머는 아이들의 고통을 우스갯거리로 삼기보다, 그 와중에도 자꾸 어긋나는 말과 행동에서 나온다.
주인공들이 웃기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괴롭힘을 겪었다는 정보만으로 이들을 알아버렸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두려운 사람도 허세를 부리고, 지친 사람도 말싸움을 한다. 카메라는 두 소녀를 오래 불쌍히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고 서로 부딪히고 움직이게 한다. 피해자가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당한 일을 설명하는 몫만 맡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관심의 대상도 조금씩 달라진다. 출발할 때는 채린이 어떻게 사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위험을 겪고 서로의 반응을 보고 나면, 옆에 있는 아이가 무엇을 할지에도 신경이 쓰인다.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옆에 둘이 무사히 이 시간을 지나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생긴다.
〈지옥만세〉의 제목은 처음에는 성난 농담처럼 들린다. 그런데 두 소녀를 따라가다 보면 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에서 서로를 보고 움직이는 순간에 더 기대게 된다. 내 괴로움을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 사이에, 적어도 저 애가 왜 화났는지는 아는 사람이 생긴다. 사는 곳이 당장 천국으로 바뀌지는 않아도, 내일 그 사람과 무슨 말을 나눌지는 조금 궁금해질 수 있다.
◆ 채린의 반가운 얼굴 — 예전의 채린을 기억하는 두 소녀와 지금의 채린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미소가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살펴보자. 사과와 회개, 스스로 새사람이 됐다는 믿음이 서로 같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
◆ 낙원에 갈 자격을 정하는 규칙 — 종교 시설에서 어떤 행동이 칭찬받고 점수로 인정되는지 보자. 두 소녀가 학교에서 벗어나서도 익숙한 경쟁을 만나게 되는 이유가 보인다. 공간이 달라졌을 때 권력의 방식도 정말 달라졌는지 살필 수 있다.
◆ 나미의 큰소리와 선우의 짧은 대답 — 같은 목표를 향하면서도 둘의 반응 속도와 말투는 다르다. 강해 보이려고 애쓰는 순간과 실제로 용기를 내는 순간도 구별해보자. 두 사람의 어긋남이 웃음과 긴장을 함께 만드는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 복수 상대에서 옆 사람으로 옮겨가는 관심 — 나미와 선우가 다음 행동을 정할 때 누구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는지 따라가보자. 채린을 벌주는 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들이 나타난다. 복수의 결말 외에도 이 모험에서 얻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2018, 데지레 아카반) — 성소수자 청소년을 바꾸려는 종교 시설에서 아이들이 생활한다. 어른들이 정한 올바름과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 충돌한다. 비슷한 시설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보다, 아이들끼리 나누는 말과 우정이 어떤 힘을 갖는지 이어서 볼 만하다.
◆ 〈연소일기〉 (2023, 탁역겸) — 교사가 학생의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영화다. 아이의 고통을 발견하고도 어른들이 익숙한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순간들을 살핀다. 〈지옥만세〉의 두 소녀가 서로에게서 얻는 이해를, 어른들은 어떻게 놓치기 쉬운지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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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