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넣을지 정하기 전에, 배우는 그 음악으로 춤췄다 | MovieLAB LAB

〈지옥만세〉의 임오정 감독은 영화에 넣을지 확정하지 않은 음악을 촬영장에서 계속 들었다. 인디 밴드 오핑의 곡이었다. 배우에게 춤을 연습할 때도 그 음악을 기준으로 삼아달라고 했…

영화에 넣을지 정하기 전에, 배우는 그 음악으로 춤췄다 | MovieLAB LAB

〈지옥만세〉의 임오정 감독은 영화에 넣을지 확정하지 않은 음악을 촬영장에서 계속 들었다. 인디 밴드 오핑의 곡이었다. 배우에게 춤을 연습할 때도 그 음악을 기준으로 삼아달라고 했다. 편집된 장면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는 단계보다 먼저, 음악이 배우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 안에서 들릴지 결정되기 전부터 이미 장면을 만드는 데 참여한 셈이다.

임오정이 꿈꾼 것은 소녀들의 로드무비였다. 〈지옥만세〉의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는 자신들을 괴롭힌 채린(정이주)을 찾아 서울로 향한다. 그런데 종교에 귀의했다는 채린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두 사람을 맞는다. 복수하러 온 소녀들에게 또 다른 난관이 생긴다. 임오정은 이 여행을 쓰면서 인물들이 어떤 속도로 말하고 움직일지, 어둡게 보이는 세계에서 어떤 색과 소리가 나올지 함께 생각했다.

독백에서 들린 여러 감정

오우리가 보낸 오디션 영상에는 채린을 만나러 가자고 제안하는 긴 독백이 담겨 있었다. 감독은 그 안에서 겁먹은 마음을 감추려는 허세와, 자기 비극에 빠져드는 태도가 오가는 것을 봤다. 하나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연기보다 그 감정이 바뀌는 동안에 주목한 것이다. 완성된 영화에서는 짧아졌지만, 각본상 독백은 2분 30초 정도였다. 감독에게는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발견이었다.

나미가 큰소리를 낼 때 겉으로 보이는 자신감과 실제로 믿는 마음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 겁을 들키지 않으려고 말이 더 세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거친 대사를 단지 거친 성격의 증거로만 듣기 어렵다. 상대를 설득하는 말이 스스로를 부추기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우리의 독백에서 감독이 발견한 감정의 움직임은, 이 인물이 당당하게 앞장서면서도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를 살펴보게 한다.

임오정은 고등학생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실제로 쓰는 말을 배우기도 했다. 그 말을 순화하면 자신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나미의 허세 섞인 표현을 쓰는 데에는 감독 자신이 과장된 장난으로 용기를 북돋던 경험도 보탰다. 말투를 고른 뒤 그 말이 인물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까지 생각한 것이다. 나미의 대사가 마음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과장될 때, 그 과장 자체가 마음의 일부가 된다.

책과 컴퓨터가 놓인 좁은 방에서 몸을 낮춘 두 소녀

같은 두 마디가 다르게 들리도록

방효린은 선우와 채린, 두 배역을 모두 잘 연기해 감독을 고민하게 했다. 선우를 맡기는 데 결정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는 짧은 ‘오키오키’였다. 임오정은 초반의 무덤덤하고 의문스러운 말이 뒤에서는 진심으로 들리는 차이를 방효린이 잘 이해했다고 밝혔다. 긴 독백이 한 배우를 알아보게 했다면, 반복되는 짧은 말은 다른 배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같은 말을 다시 듣는 장면에서는 문장 자체가 알려주는 정보가 많지 않다. 대신 누가 어떤 일을 겪고 그 말을 하는지, 상대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내어주는지가 달라진다. 선우의 짧은 답을 들을 때 목소리의 힘과 말하기 전의 시간을 함께 보면, 익숙한 표현 안에서 변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대사를 새로 쓰지 않고도 인물이 달라졌다는 감각을 줄 수 있는 자리다.

이처럼 말의 길이와 에너지가 다른 두 사람을 함께 놓으면, 여행의 대화에도 간격이 생긴다. 한쪽이 말을 밀어붙일 때 다른 쪽은 짧게 받을 수 있다. 두 사람이 같은 목적지를 향한다고 해서 모든 순간에 같은 기세일 필요는 없다. 나미와 선우가 주고받는 말을 따라가며 누가 먼저 움직이려 하고 누가 반응하는지 살피면, 복수를 위한 동행 안에서도 두 인물의 차이가 보인다.

꽃이 보이는 어두운 곳에서 위쪽을 바라보는 두 소녀

어두운 바탕을 긁으면

임오정은 영화의 시대를 또렷하게 특정하지 않으려 했다. 빈티지 렌즈와 색감, 과거에 있었을 법하면서 멈춰 있는 듯한 공간을 사용한 이유다. 지금의 현실과 닮아 있으면서도 정확히 어느 시절인지 잘 모르겠는 인상을 원했다. 아이들의 생생한 말과 시간의 흔적이 쌓인 공간이 한 화면에 놓인다. 인물이 쓰는 말은 가까운데 그들을 둘러싼 장소는 조금 낯설게 느낄 수 있다.

타이틀에 사용한 스크래치 아트에는 다른 방식으로 색을 다루는 생각이 있다. 여러 색을 칠하고 검은색으로 덮은 다음, 표면을 긁어 안쪽의 색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임오정은 인물들의 삶과 환경이 어두워 보여도 그 아래에 여러 색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목의 글자를 볼 때 색을 새로 얹는 것과 이미 있던 색을 드러내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색의 선택은 영화의 록 음악과 함께 볼 만하다. 어두운 상황을 따라가다가도 소리와 움직임이 강하게 솟는 순간이 있다. 춤추는 몸을 보고 있으면 인물의 처지를 설명하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촬영 전에 음악을 몸에 익히게 한 선택도 여기서 떠올릴 수 있다. 춤을 볼 때 박자에 맞춰 시작하는 동작과 그 뒤에 이어지는 움직임을 나누어 살펴보면, 배우가 소리에 반응하는 순간도 보인다.

감상 포인트

1. 나미가 채린을 찾아가자고 말할 때 말의 세기와 표정을 함께 보자. 자신만만한 태도 사이에 망설임이나 다른 감정이 끼어드는지 살펴볼 수 있다. 2. 선우의 ‘오키오키’를 처음 들었을 때와 다시 들었을 때를 비교해보자. 같은 말이 어떤 상황에서 나오며 목소리와 상대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만하다. 3. 춤 장면에서는 음악의 박자와 배우의 움직임을 함께 따라가보자. 말로 설명하던 인물에게서 몸이 드러내는 기세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4. 타이틀의 검은 바탕과 그 사이에 드러나는 색을 보자. 글자의 모양뿐 아니라 표면을 긁은 흔적이 화면의 거친 인상에 무엇을 보태는지 눈여겨볼 만하다.

관련 작품

◆ 〈지옥만세〉(2023, 임오정) — 긴 독백과 짧은 응답, 춤의 리듬을 비교하며 두 소녀에게 서로 다른 표현을 주는 연출을 살펴볼 수 있다.

◆ 〈연소일기〉(2023, 탁역겸) — 아이가 말하는 내용과 어른이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를 따라가며, 고립된 인물의 표현을 듣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했으며, 별도의 검수 과정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