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에서 사람이 감염되면 그를 피하거나 없애야 할 때가 온다. 티보 에맹은 그 전환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던 존재를, 몸이 달라…
공포영화에서 사람이 감염되면 그를 피하거나 없애야 할 때가 온다. 티보 에맹은 그 전환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던 존재를, 몸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곧바로 적으로 대할 수 있을까. 첫 장편 〈엘스〉에는 이 질문이 연인의 이야기로 들어왔다.
막 만난 앙스(마티유 상푀르)와 카스(에디트 프루스트)는 이상한 전염병 때문에 아파트에 머물게 된다. 감염된 사람의 몸이 주위 사물과 합쳐지는 병이다. 이제 막 상대를 알아가려던 두 사람에게, 몸의 형태마저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 닥친다. 에맹은 변화를 막을 방법만 찾는 대신, 달라지는 상대와 함께 있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따라간다.
〈엘스〉의 출발은 에맹이 영화학교에서 만든 2007년 단편이었다. 코로나19가 세계의 일상을 바꾸기 훨씬 전부터, 그는 낯선 병과 좁은 공간 안의 연인을 상상하고 있었다. 장편을 준비하는 동안 실제 팬데믹이 닥쳤고, 사람들은 영화 속 격리를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에맹은 공동각본가 알리스 뷔토와 함께 초반의 일부를 다시 쓰고 덜어냈다고 말했다. 전에는 설명해야 했을 상황을 이제는 많은 관객이 이미 겪었다. 작품의 구상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처음 계획을 그대로 지킬 필요는 없었다. 세상이 달라진 만큼 관객이 어떤 장면을 낯설게 느낄지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엘스〉를 격리 생활의 재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앙스와 카스가 마주하는 변화는 현실의 질병과 다르다. 몸과 사물이 합쳐진다는 설정 때문에 익숙한 집 안도 새롭게 보아야 한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불편함에 머물지 않고, 안에 있는 것들마저 이전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감각으로 나아간다.
감독에게 이 영화는 가까운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과도 연결돼 있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병에 걸린 당사자보다 그 변화를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엘스〉의 질문에는 두려움만 들어 있지 않다. 좋아하던 사람이 달라질 때도 여전히 그를 알아보고 곁에 있을 수 있는지, 그 마음까지 묻는다.
에맹은 사물의 작은 부분을 가까이 찍어 하나의 풍경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넓은 아파트 전체를 보여줄 때와 피부나 표면을 아주 가까이 볼 때, 관객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작은 무늬를 크게 바라보면 익숙한 물건도 무엇인지 바로 알기 어려워진다.
〈엘스〉의 변화는 배우의 분장에만 생기지 않는다. 화면의 색과 질감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화려하던 공간이 점차 색을 잃고, 입자와 명암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인물이 겪는 일을 대사로 전달한 뒤 화면은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니다. 관객이 보는 영화 자체도 낯설어진다.
소리 역시 그런 변화를 만든다. 에맹은 음향과 음악이 또렷하게 나뉘지 않는 감각에 관심을 두었다. 무엇이 내는 소리인지 정확히 구별하는 일보다, 그 공간 안에 있다는 느낌을 중요하게 여겼다. 화면에서 작은 표면이 커지듯, 소리도 평소에는 지나쳤을 것을 가까이 느끼게 한다.
이때 연인의 몸은 사랑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남지 않는다. 실제 배우가 연기하고, 분장을 견디고, 상대에게 반응하는 몸이다. 에맹은 두 주연의 조합을 오랫동안 시험하고 다른 제작 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의 친밀함이 먼저 성립해야, 이후의 낯선 이미지 속에서도 누구의 변화인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에맹은 크로넨버그의 〈플라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몸의 변화가 인물의 삶 전체를 바꾼다는 점에 끌렸지만, 자신은 그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자리에 더 가까웠다. 좋아하는 영화와 다른 질문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다. 익숙한 장르의 효과를 빌리면서도 어디에 관객을 세울지는 다시 정했다.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는 특히 소리의 참고가 되었다. 에맹이 좋아한 것은 어느 괴상한 이미지 하나만이 아니라 영화 안에 둘러싸이는 감각이었다. 그 경험을 자신의 좁은 아파트에 옮기려 했다. 영향을 준 작품의 장면을 알아맞히기보다, 평범한 방이 소리와 빛 때문에 얼마나 낯설어지는지 살피면 그 선택이 더 잘 보인다.
제작은 처음 생각한 대로만 되지 않았다. 에맹은 실제 분장과 재료를 카메라 앞에 두고 발견하는 과정을 좋아했지만, 제한된 조건에서 원하는 결과를 모두 얻지는 못했다. 이후 시각효과 작업이 많은 장면을 보완했다. 손으로 만든 효과와 디지털 작업 중 어느 한쪽만 고집하기보다, 필요한 감각을 완성하기 위해 방법을 섞었다.
이 과정은 〈엘스〉를 혼자 품었던 상상의 구현으로만 소개하기 어렵게 한다. 배우의 인내, 분장팀의 실험, 뒤이은 시각효과와 음향이 있어야 그 상상이 화면에 남는다. 감독이 붙잡은 질문은 분명했지만 답의 모양은 여러 사람의 작업을 거쳐 생겼다.
앙스와 카스가 처음 만났을 때의 아파트를 기억해두면, 나중의 같은 공간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느낄 수 있다. 에맹은 괴물이 나타났으니 이야기를 끝내자고 하지 않는다. 아직 그곳에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선을 얼마나 더 따라갈 수 있을지가 이 감독의 공포영화를 궁금하게 한다.
◆ 처음 만난 두 사람의 거리 — 병의 위협만 기다리지 말고 앙스와 카스가 서로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대와 같은 방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중요하다. 이후의 변화도 이 관계를 바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작은 표면이 차지하는 화면 — 카메라가 가까워질 때 무엇인지 금세 알아볼 수 있는지 살펴보자. 재료의 무늬와 질감이 크게 보이면 사물의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워진다. 익숙한 방을 새로운 풍경으로 만드는 감독의 선택이다.
◆ 색과 소리의 변화 — 처음의 공간과 이후의 화면을 비교해보자. 인물의 몸뿐 아니라 색과 질감, 소리도 달라진다. 변화에 관한 설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객의 감각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 달라진 몸을 보는 사람 — 변형의 모습만큼 그것을 지켜보는 반응에도 머물러보자. 에맹에게는 아픈 사람 곁에 있는 경험이 중요한 출발이었다. 공포의 대상이 생겼다는 판단만으로 관계를 끝낼 수 없는 이유를 살필 수 있다.
◆ 〈엘스〉 (2024, 티보 에맹) — 몸과 사물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을 연인의 시간으로 다룬 첫 장편이다. 아파트의 표면과 소리, 두 배우의 반응을 함께 따라가면 감독의 개인적인 질문이 어떻게 장르영화가 되었는지 볼 수 있다.
◆ 〈플라이〉 (1986,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 신체의 변화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까지 바꾸는 영화다. 에맹이 직접 언급한 중요한 참고작으로, 변화를 겪는 당사자와 그 곁의 사람 중 어디에 더 가까이 머무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