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한 사람을 찍으려던 영화가 길어진 이유 | MovieLAB LAB

유수연은 정의진 명창의 공연과 심사 과정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정의진이 감독에게 제안했다. 아직 할 일이 있으니 일 년 더 찍어달라고. 유수연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

명창 한 사람을 찍으려던 영화가 길어진 이유 | MovieLAB LAB

유수연은 정의진 명창의 공연과 심사 과정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정의진이 감독에게 제안했다. 아직 할 일이 있으니 일 년 더 찍어달라고. 유수연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고, 〈수궁〉은 완성까지 마흔 달이 걸린 영화가 됐다. 계획했던 장면을 다 찍는 것과 이 사람의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처음부터 판소리를 잘 알아서 시작한 작업도 아니었다. 유수연은 촬영하면서 책과 논문을 읽고 영상을 찾아 공부했다. 한 명창에게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궁금해 따라갔다가, 그 소리를 배우고 이어갈 사람들의 삶까지 만나게 됐다. 감독이 알고 싶었던 것이 촬영하는 동안 달라진 셈이다.

카메라를 들기까지의 공백

유수연은 이십 대부터 시나리오를 썼지만, 자신이 직접 연출하는 일은 멀게 느꼈다고 한다. 아이 둘을 낳고 육 년 동안 일을 쉬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뒤에야 국악을 하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단편 〈어릿광대〉를 연출했다. 영화를 하고 싶었던 시간과 실제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시간 사이에 간격이 있었다.

〈수궁〉에는 그 간격을 다른 형태로 겪는 소리꾼들이 나온다. 정의진에게 전해지는 양암제 수궁가를 배우려면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소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도 생계를 꾸리고 가족을 돌보며 시간을 내야 한다.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는 연습실 밖에서도 계속되는 생활이 있다.

유수연은 처음에 전승을 스승에게서 제자로 내려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스승에게 전해줄 소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음 세대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배울 수 있어야 하고, 배운 뒤에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감독 자신의 공백을 모든 소리꾼의 삶과 같은 경험으로 묶을 필요는 없다. 유수연의 이력에서 눈여겨볼 것은 뒤늦게 시작해 성공했다는 결말보다, 원하는 일을 계속하기까지 여러 조건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수궁〉도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만으로 인물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래 수련해온 사람에게 다시 생활의 사정이 끼어드는 모습을 함께 남긴다.

〈수궁〉 — 부채를 들고 노래하는 소리꾼

유명한 스승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명창의 공연을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가장 훌륭한 소리를 담는 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궁〉은 스승에게 배우는 사람들과 그 관계에 시간을 쓴다. 관객은 어떤 소리가 이어져야 하는지만큼, 누구에게 이어질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때 제자는 스승의 업적을 증명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잘 배우고 싶으면서도 자기 사정 때문에 망설일 수 있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도 같은 속도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 시간을 남겨야 전승이라는 말이 실제 사람이 하는 일로 보인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다음 사람에게 옮겨가는 데에는 공연장에서 듣기 어려운 대화와 기다림이 있다.

유수연은 여성 소리꾼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고 모두 같은 분량으로 소개하지는 않았다. 정의진과 그 주변 여성들의 삶을 따라갈 수 있도록 재료를 골랐다. 조사한 것을 전부 넣는 대신, 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만난 여성국극인 조영숙은 다음 영화로 이어졌다. 여성국극은 여성들이 남녀 배역을 맡아 노래하고 연기하는 공연이다. 조영숙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려던 구상은 후배인 박수빈과 황지영의 활동까지 넓어졌다. 유수연은 이것을 방향을 바꾼 일보다 범위를 넓힌 일로 설명했다. 지나온 역사를 들었으니, 그 일을 지금 하는 사람들도 만나야 했던 것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도 일이 있다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에서는 공연 준비와 자금을 구하는 과정에도 카메라가 동행한다. 관객 앞에서 박수를 받는 일과 누군가에게 지원을 부탁하는 일은 표정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 무대를 만들기 위해 감당하는 일이 함께 드러난다.

모든 순간이 찍히기 편했을 리 없다. 유수연은 공연 자금을 마련하러 다니는 과정을 촬영하고 영화에 넣도록 허락한 박수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출연자가 불편한 상황까지 보여주기로 결정했기에 남을 수 있었던 장면이다. 감독이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만큼, 상대가 어디까지 함께하기로 했는지도 이 작업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공연을 영화에 담을 때는 소리에도 공을 들였다. 유수연은 후속작의 공연 음악을 따로 녹음하고 극장용 다채널 음향으로 작업했다. 〈수궁〉에서 국악을 녹음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일을 왜 계속하는지 말로 설명하는 것과, 관객이 그 무대의 매력을 직접 듣게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몫이다. 영화에는 둘 다 필요했다.

〈수궁〉에서는 정의진이 촬영을 더 이어가자고 제안했고, 다음 영화에서는 박수빈이 공연 자금을 구하는 과정의 촬영과 수록을 허락했다. 출연자들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이 무엇인지도 그 과정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예술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다음 무대를 위해 지금도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수연은 그들과 함께 촬영 계획을 넓혔다. 처음 찍으려던 공연 너머에도 남겨야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상 포인트

◆ 배우는 사람의 시간 — 명창의 소리와 함께 제자들이 배우러 오는 과정에도 눈을 두자. 배움을 계속할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실력이나 열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정이 드러날 때, 소리를 잇는다는 말의 구체적인 무게를 느끼게 된다.

◆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말 — 가르침이 언제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만 흐르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기대하는 속도와 실제로 가능한 속도가 다를 수 있다. 감독이 촬영하면서 전승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공연 외의 대화도 놓치기 어렵다.

◆ 소리를 듣는 즐거움 — 인물들의 고단함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들이 왜 이 일을 좋아하는지 지나칠 수 있다. 설명을 잠시 내려놓고 소리가 이어지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어갈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 앞서, 그 소리를 더 듣고 싶어지는 경험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 다음 만남으로 이어지는 인물 — 〈수궁〉에서 조영숙을 만난 유수연은 이후 여성국극을 촬영했다. 후속작까지 이어본다면 먼저 만난 사람의 다른 모습과 새롭게 등장하는 후배들을 함께 볼 수 있다. 한 편의 촬영이 끝나도 궁금한 삶은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의 연속이다.

관련 작품

◆ 〈수궁〉 (2023, 유수연) — 정의진 명창과 양암제 수궁가를 잇는 사람들을 만난다. 훌륭한 소리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려면 어떤 생활과 관계가 필요한지 살피는 영화다. 감독의 오랜 동행이 공연 바깥의 시간을 어떻게 담았는지에 주목할 만하다.

◆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2024, 유수연) — 조영숙과 후배 여성국극인들의 현재를 따라간다. 무대의 매력과 무대를 마련하는 노동이 한 영화에 들어 있다. 〈수궁〉에서 시작된 관심이 새로운 사람과 공연으로 넓어지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