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참지 않기로 하자 주변이 불편해졌다 | MovieLAB LAB

오복(정애화)이 바라는 것은 사과다. 자신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는 일. 그런데 〈갈매기〉에서 이 요구를 전하자 분주해지는 쪽은 가해자보다 주변 사람들이다. 시…

엄마가 참지 않기로 하자 주변이 불편해졌다 | MovieLAB LAB

오복(정애화)이 바라는 것은 사과다. 자신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는 일. 그런데 〈갈매기〉에서 이 요구를 전하자 분주해지는 쪽은 가해자보다 주변 사람들이다. 시장 동료들은 일이 커질 것을 걱정하고, 오복은 결혼을 앞둔 딸에게 해가 될까 망설인다.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면 될 일을 두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정을 헤아려야 하는가. 영화의 답답함은 여기서 시작된다.

오복은 특별히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라서 망설이는 게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계속 생계를 이어가야 하고, 집에서는 가족을 챙겨야 한다. 어제까지 자신이 버티는 이유였던 관계들이 오늘은 입을 다물라는 이유가 된다. 김미조의 영화는 오복이 그 관계들을 단번에 끊고 떠나는 대신, 그 안에서 자기 말을 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따른다. 그래서 이 사람의 한마디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다.

엄마가 누워 있어도 밥 먹을 시간은 온다

오복은 심란한 마음으로 누워 있다가도 딸이 배고프다고 하면 밥상을 차린다. 이 작은 생활 장면이 그의 처지를 설명한다. 당장 자기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할 사람에게도 가족의 식사 시간은 돌아온다. 가족은 오복이 해오던 일을 계속 기대하고, 오복 자신도 그 일을 먼저 한다.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로 정리하기 전에 몸에 밴 역할이 움직이는 셈이다.

이때 밥상은 모성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표식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누군가를 돌보는 능력과 자신을 돌볼 여유가 서로 다른 것임을 보여준다. 남의 배고픔에는 바로 반응하는 사람이 자기의 아픔을 말할 때는 오래 주저한다.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은 모두가 알아보는데, 엄마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복의 생활을 따라가면 이 불균형이 사건 이후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가족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큰딸 인애(고서희)는 어머니의 피해를 알게 된 뒤 고소를 돕는다. 오복이 딸의 앞날을 걱정하느라 하지 못했던 말을 딸은 듣고, 어머니와 함께 할 일을 찾는다. 엄마가 자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익숙한 관계에, 자식이 엄마를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오복에게는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을 함께 할 사람이 생긴다.

둥근 식탁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식사하고 있다

같은 시장을 지키는데 누구의 말은 작아지는가

오복이 일하는 시장에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싸움이 있다. 가해자 기택(김병춘)은 그 싸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상인들이 생업을 지키려는 사정은 절박하다. 문제는 그 절박함이 오복의 피해를 뒤로 미루는 근거로 쓰일 때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오복의 안전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이 설정은 오복에게 일어난 일을 낯선 악인의 범행으로 멀리 밀어놓지 못하게 한다. 그는 가해자가 있는 일터로 다시 가야 한다. 생활을 지속하려면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해야 한다. 신고할지 말지 결정하는 일이 용기 하나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피해를 말한 다음 날에도 장사를 하고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하루가 남는다.

상인들의 만류를 들으면 사건을 작게 만들려는 말과 오복을 작게 만드는 말이 구분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아무 일 아닌 것으로 넘기자는 제안은 오복이 받은 상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라는 요구가 된다. 동료를 아낀다고 하면서 그 동료의 말을 듣지 않는 모순이다. 영화는 거창한 선언보다 오복이 실제로 마주치는 반응을 통해 이 모순을 드러낸다. 같은 편이라는 말이 누구에게까지 유효한지, 오복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확인하게 된다.

시장 안에서 붉은 조끼를 입은 남성과 두 사람이 가까이 서 있다

보여주지 않은 폭력 뒤에 남은 몸

〈갈매기〉는 성폭력의 순간을 상세히 재현하지 않는다. 화면이 어두워진 뒤, 관객은 그 일을 겪은 오복을 만난다. 사건을 얼마나 끔찍하게 보여줄 것인가보다 사건 이후 이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심을 둔 선택이다. 피해를 이해하려고 폭력의 전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복이 인애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때도 카메라는 두 사람에게 바짝 다가가지 않는다. 관객에게는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고백의 문장 하나하나를 듣는 대신, 이제 딸도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는 변화가 남는다. 이 거리 때문에 놓치는 정보가 있는 반면, 지킬 수 있는 것도 있다. 오복이 자신의 경험을 딸에게 말하는 시간은 관객에게 설명을 제공하기 위한 시간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대목이 있다고 해서 영화가 피해를 흐리는 것은 아니다. 오복이 이후 무엇을 요구하는지, 주변에서 그 요구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분명하다.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적나라한 증거가 아니라 그 말을 들을 준비일 수 있다. 카메라가 거리를 두는 장면에서 오히려 오복의 편에 설 여지가 생긴다. 고통을 가까이 구경하는 것과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같은 일은 아니라는 점을 영화의 화면이 생각하게 한다.

사과를 기다리던 사람이 자기 말을 하기까지

처음 오복은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는 뜻을 동료를 통해 전달한다. 혼자 망설이던 사람이 동료에게 의사를 전하고, 딸과 함께 대응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원래 약했던 사람이 갑자기 강해지는 과정이라기보다, 오래 참아온 사람이 더는 자신의 사정을 뒤로 미루지 않는 과정에 가깝다. 일하고 가족을 챙기며 살아온 끈기가 이번에는 자신을 위해 쓰인다.

그래서 오복의 항의가 커질수록 통쾌함만 생기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그의 말을 제대로 들었다면 이토록 힘들게 말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함께 남는다. 관객은 오복이 굽히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모든 피해자가 오복처럼 끝까지 버텨야만 하는 상황은 바라지 않게 된다. 인물의 용기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 용기를 요구하는 환경에 대한 불편함이 나란히 간다.

〈갈매기〉를 보며 기다리게 되는 것은 오복이 남들의 기준에 맞는 훌륭한 엄마로 인정받는 순간이 아니다. 그 기준은 이미 오복의 말을 너무 오래 늦췄다. 그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자기 일로 말하고, 그 말을 누군가가 끝까지 듣는 시간이 더 절실하다. 딸과 동료를 헤아려온 사람에게도 헤아림을 받을 차례가 있다. 오복이 참지 않기로 한 뒤 주변이 불편해졌다면, 이제는 그 불편함을 오복 혼자 떠안을 이유가 없다.

감상 포인트

◆ 누워 있던 오복과 밥상 — 딸의 배고프다는 말에 오복이 다시 집안일을 하는 대목을 보자. 가족을 돌보는 습관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몸에 남아 있는지 드러난다. 이어 자기 피해를 말할 때의 망설임과 비교하면, 남을 위해 움직이는 일과 자신을 위해 말하는 일 사이의 차이가 느껴진다.

◆ 만류하는 사람의 이유 — 시장 사람들이 오복에게 무엇을 걱정하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사과를 요구한 사람의 상처보다 다른 사정이 먼저 등장하는 순간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친숙한 동료일수록 그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처지도 함께 보인다.

◆ 멀리서 보는 모녀의 대화 — 피해를 알리는 대화의 내용이 들리지 않는 장면에 주목하자.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내려고 애쓰기보다 두 사람이 이제 무엇을 함께 알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말의 자세한 내용을 생략해도 관계의 변화는 전해진다.

◆ 오복의 요구가 향하는 곳 — 처음 동료에게 사과 요구를 대신 전해달라고 할 때와 이후 직접 대응할 때를 비교해보자. 같은 피해를 둘러싼 요구라도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전하는지는 달라진다. 결과를 먼저 기다리기보다, 오복이 자기 말을 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갈 만하다.

관련 작품

◆ 〈69세〉 (2020, 임선애) — 병원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자기 말을 믿지 않는 주변과 맞서는 영화다. 피해자의 나이와 처지를 이유로 그의 말을 의심한다는 점에서 〈갈매기〉와 이어진다. 두 인물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말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다.

◆ 〈당신의 부탁〉 (2017, 이동은) — 남편을 잃은 여성이 남편의 아들을 맡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가족이 된다는 일이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 끝나는지 생각하게 한다. 엄마라는 자리와 한 개인의 필요가 어긋나는 〈갈매기〉의 모녀 관계를 다른 각도에서 이어볼 만하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