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씻기는 손은 성실하다. 그러나 그 손의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화장〉의 오상무(안성기)는 뇌종양을 앓는 아내(김호정)를 돌보며 화장품 회사의 중역…
아내를 씻기는 손은 성실하다. 그러나 그 손의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화장〉의 오상무(안성기)는 뇌종양을 앓는 아내(김호정)를 돌보며 화장품 회사의 중역으로 일한다. 회사에서는 젊은 직원 추은주(김규리)가 눈에 들어온다. 아내의 병수발과 다른 여자를 향한 마음이 한 사람의 하루에 함께 있다.
간병하는 모습을 보고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은주를 바라보는 눈길 앞에서는 판단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은주에게 끌린다는 사실 하나로 그가 아내를 위해 해온 일을 전부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남자를 변호하거나 단죄하는 대신, 우리가 한 사람에 관해 알게 되는 것들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시간을 견디게 한다. 오상무 자신도 자기 마음을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아픈 사람 곁에 있겠다는 약속은 오래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화장〉은 그 약속을 실제로 수행하는 몸을 보여준다. 오상무는 아내를 씻기고, 병원을 오가고, 출근한다. 지쳤다고 그만둘 수 없는 일이 반복된다. 다정한 말 한마디로 간병을 대표하지 않고 이런 일상의 수고를 보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오상무에게 상당히 공평하다.
그렇다고 아내를 남편의 성실함을 증명해주는 인물로만 두지는 않는다. 욕실에서 아내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한다. 남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할 수는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서러운 순간이 있다. 김호정의 연기는 간병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에서, 간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무엇을 견디는지로 관심을 옮긴다.
김호정은 아내의 감정을 한 가지로 나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무기력함에 대한 두려움, 남편에게 느끼는 미안함,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을 향한 화가 함께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 아내가 짜증을 낸다고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많은 것을 놓친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자존심이 있고, 돌봐주는 사람에게 꼭 순한 얼굴만 보일 수는 없다.
이 장면에서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 있다. 그러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이 느끼는 것을 같게 만들지는 않는다. 한 사람은 씻겨야 하고 다른 사람은 씻김을 받아야 한다. 같은 욕실에서 겪는 서로 다른 곤란을 보고 나면, 오래 함께 살았으니 상대를 잘 알 것이라는 믿음도 조심스러워진다.
회사에서의 은주는 자기 일을 하는 직원이다. 하지만 오상무의 마음속에서는 지친 생활을 벗어나게 해줄 듯한 존재가 된다. 영화에는 실제로 만나는 은주와 오상무가 상상하는 은주가 함께 나타난다. 같은 배우의 얼굴이기에 관객도 그 둘을 곧바로 구분하기 어렵다.
김규리는 현실의 은주를 밝고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으로, 상상 속 은주를 오상무가 바라는 모습으로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이 구별은 영화의 관계를 읽는 데 중요하다. 은주가 환하게 보인다고 해서 그가 오상무를 구하러 온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누군가가 그 태도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오상무가 은주를 생각할 때마다 관객은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반면 은주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그만큼 잘 알 수 없다. 그의 시선에 가까워진 결과다.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는 중년 남성의 마음을 이해하는 동안, 그 여자에게도 상사의 기대와 별개인 사정이 있다는 사실은 뒤로 밀리기 쉽다.
이 영화의 욕망은 그래서 한눈팔았는지를 가리는 문제보다 복잡하다. 오상무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어도 어떤 이미지에 자꾸 붙들리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다. 상상은 현실의 의무를 잠시 잊게 해준다. 그러나 그가 다시 돌아와야 할 곳에는 아내가 있고 출근해야 할 회사가 있다. 은주를 향한 마음은 그 생활을 바꾸지 못한 채, 같은 생활을 더 견디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오상무는 아내를 간호하지만 자기 몸 역시 건강하지 않다. 전립선 문제로 소변을 보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회사에서는 여러 일을 판단하고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인데, 자기 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뜻대로 다루지 못한다. 아내의 병과 견줄 정도로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나누기 어렵게 한다.
젊은 은주를 바라보는 마음과 늙어가는 자기 몸의 차이도 이때 더 선명해진다. 머릿속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삶을 그릴 수 있다. 몸은 지금 그가 살고 있는 나이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추상적인 청춘에 대한 갈망이 소변 한 번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현실과 나란히 놓인다. 〈화장〉은 그런 곤란을 창피한 농담으로 얼른 넘기지 않는다.
안성기는 오상무를 연기하면서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보다 인물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격렬한 고백이 없기 때문에 관객은 표정이 조금 달라지거나 시선이 다른 데 머무는 순간을 보게 된다. 이 남자가 피곤한지 슬픈지, 욕망을 누르는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한 번에 정리하기 어렵다. 겉으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여러 마음이 지나갈 수 있다.
김훈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임권택 감독은 아내의 죽음과 그 이전의 시간, 오상무의 상상을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병이 시작되고 간병을 하고 장례를 치르는 순서대로만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다. 이미 떠난 사람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눈앞의 사람을 향한 마음에 다른 시간이 끼어든다. 관객도 오상무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더듬으며 그를 알아간다.
제목의 화장에는 얼굴을 꾸미는 일과 죽은 몸을 보내는 일이 함께 들어 있다. 화장품 회사의 일상을 보내는 남자에게 두 의미가 모두 가까이 있다. 그렇다고 은주는 생명, 아내는 죽음이라고 나누고 끝낼 수는 없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수치심과 애정을 느끼는 사람이고, 은주는 오상무의 활력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두 여자를 상징으로만 보면 이 남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다시 보게 된다.
〈화장〉을 보고 나면 성실한 간병과 흔들리는 마음 중 어느 쪽이 진짜였는지 고르기 어려워진다. 둘 다 그 사람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순을 이해한다고 해서 아내가 느꼈을 외로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간병하는 손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알기에, 그 가까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오래 함께 산다는 일에는 상대를 돌보는 시간과 끝내 다 알 수 없는 마음이 함께 남는다.
◆ 욕실에서 바뀌는 관심의 방향 — 남편의 수고만큼 아내가 도움을 받으며 느끼는 감정에도 주목해보자. 미안함과 짜증, 부끄러움은 서로 모순되는 감정이 아닐 수 있다. 김호정의 연기는 병든 몸을 바라보는 관객이 그 몸의 주인에게도 마음을 기울이게 한다.
◆ 현실의 은주와 상상 속 은주 — 은주가 등장할 때 그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과 오상무가 기대하는 모습을 구별해보자. 모든 장면을 사실 여부로 정리하기보다, 어떤 모습이 유난히 부각되는지 살펴도 좋다. 오상무의 욕망을 따라갈수록 은주 자신에 관해서는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아질 수 있다.
◆ 오상무 자신의 불편한 몸 — 병실을 지키는 남자 역시 자기 몸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회사에서의 지위와 일상에서의 무력함을 함께 보자. 은주를 향한 마음이 단순히 새로운 연애에 대한 기대를 넘어, 자기 생활과 나이를 잊고 싶은 욕망으로도 읽히게 된다.
◆ 죽음 이후에 다시 나타나는 시간 — 영화가 과거와 현재, 상상을 오갈 때 무엇이 이어지고 끊기는지 따라가보자. 사건의 순서보다 인물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순간이 중요해진다. 같은 얼굴도 언제 다시 마주하느냐에 따라 처음과 다른 감정을 남긴다.
◆ 〈커밍 홈 어게인〉 (2019, 웨인 왕) — 아픈 어머니를 돌보러 집에 돌아온 아들이 음식을 준비한다. 정성껏 해주고 싶은 일과 상대가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 돌봄을 사랑의 증명으로만 보지 않고, 서로 다른 몸의 조건 속에서 함께 지내는 일로 살필 수 있다.
◆ 〈어느 멋진 아침〉 (2022, 미아 한센러브) —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여자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과 자기 삶에서 느끼는 기쁨이 한 사람에게 공존한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별도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놓지 않으면서, 그 마음들이 충돌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다른 자리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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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