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남기고 싶은 것은 웃긴 영화 한 편이었다 | MovieLAB LAB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아들을 부른다. 심각한 부탁을 할 것 같은데, 내미는 것은 직접 쓴 영화 시나리오다. 자신이 주인공을 맡고 아들이 찍어주면 된다. 제목은 〈사제폭탄을 삼…

아버지가 남기고 싶은 것은 웃긴 영화 한 편이었다 | MovieLAB LAB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아들을 부른다. 심각한 부탁을 할 것 같은데, 내미는 것은 직접 쓴 영화 시나리오다. 자신이 주인공을 맡고 아들이 찍어주면 된다. 제목은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이발사 모금산(기주봉)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엉뚱한 희극을 만들기로 한다. 마지막 모습을 근엄하게 남기는 것보다 누군가를 웃기는 일이 중요해진 사람이다.

영화를 하겠다고 서울에 가 있는 아들 스데반(정환)은 당황한다. 여자친구 예원(고원희)까지 함께 세 사람이 만드는 이 영화는 대단한 제작 규모를 갖춘 작품이 아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시나리오를 쓰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누군가가 그것을 편집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임대형은 이 소박한 과정을 통해 함께 있을 때는 말하지 못했던 것이 화면 속에서 뒤늦게 전해지는 순간을 만든다.

같은 하루를 사는 사람의 몸

모금산의 일상은 반복된다. 이발소에 가고 수영을 하고 늘 가던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익숙한 순서가 하루를 채운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는 여럿이지만 그곳을 오가는 인물의 생활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혼자 사는 이 남자가 자기 나름의 질서를 세워두었다는 것을 말보다 행동으로 알게 된다.

영화의 고정된 화면도 그 질서와 닮았다. 인물이 움직일 때마다 카메라가 부산하게 따라가기보다, 먼저 정해진 자리 안에서 움직임을 바라본다. 모금산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복도를 지나는 장면에서도 움직이는 몸과 고정된 공간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작은 행동을 오래 볼 여유가 생기면 말수 적은 사람의 모습도 덜 무심해진다. 어떻게 서고 무엇을 들고 어디로 가는지가 대사만큼 중요해진다.

감독은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모금산에게 엄격한 구도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설명을 알고 보면 정적인 화면은 그저 보기 좋은 흑백사진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한 사람이 생활을 유지하는 방식을 영화 자체가 따라가는 것이다. 이발소와 술집을 반복해 만나는 동안 관객도 그의 순서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그가 영화를 찍겠다고 나서는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진다.

여기서 기주봉의 얼굴과 움직임이 영화의 속도를 정한다. 과장된 표정으로 속마음을 알려주지 않아도 잠시 멈추거나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눈길이 간다. 이후 영화 속 영화에서 보게 될 희극적인 몸을 생각하면, 이 초반의 절제는 더욱 의미가 있다. 같은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볼 준비를 하게 된다.

실내 앞쪽의 중년 남성 뒤로 젊은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 있다

아들에게 들어온 뜻밖의 제작 의뢰

스데반에게 영화는 자신이 하려던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시나리오를 들고 와 함께 만들자고 한다. 자기가 꿈꾸던 일의 자리에 아버지가 불쑥 들어오는 셈이다. 모금산을 평소와 다른 사람으로 볼 기회이지만, 가까운 가족일수록 그 변화가 반갑기만 하지는 않을 수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계획에 곧바로 감탄하지 않는다.

이 어색함 덕분에 영화 만들기가 효도의 모범 사례처럼 곧장 흘러가지 않는다. 부자는 원래 다정하게 마음을 주고받던 사이가 아니다. 함께 작업한다고 서로를 금세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전에 없던 역할이 생긴다. 아버지는 연기하고 아들은 촬영과 완성에 관여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감정적인 요구로만 듣던 사이가, 어떤 장면을 만들지 의논해야 하는 사이로 옮겨간다.

예원도 이 제작의 한 사람이다. 두 남자 사이에 있으니 화해를 도와주는 인물로만 보기 쉽지만, 그는 카메라와 영화에 자기 방식으로 관여한다. 모금산을 아버지로만 알던 스데반과 달리, 예원은 함께 작업하고 지켜본 시간을 통해 그를 알게 된다. 같은 여행과 촬영을 해도 세 사람이 얻는 경험은 같지 않다. 그 차이는 완성작을 보는 순간에 다시 드러난다.

아버지가 남긴 말을 아들이 받아들이는 영화라면 긴 고백 한 번으로 관계를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화 외에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 있다. 시나리오가 실제 화면이 되려면 찍고 이어붙여야 한다. 그 사이에 있는 수고가 서로와 보낸 시간이 된다. 결과물이 남는다는 사실과 그것을 만드는 동안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겹쳐지면서, 영화 한 편이 부자에게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일이 된다.

나무가 늘어선 보도에서 모자를 쓴 남성이 한쪽 다리를 굽힌 채 서 있다

웃기는 몸으로 다시 나타나다

완성된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에서 모금산은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일상에서 말과 동작을 아끼던 사람이 이제는 관객을 웃겨야 한다. 흑백 무성영화의 형식에서는 몸짓의 리듬과 상황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말을 길게 설명할 수 없으니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곧 표현이 된다.

이 선택에는 나이 든 아버지를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도 있다. 관객은 모금산을 병을 얻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주연한 영화 안에서는 아픈 몸을 염려하는 눈길만으로 볼 수 없다. 그는 우스운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이고, 웃음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가진 사람이다. 남들이 자기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기만 기다리는 자리에 있지 않다.

본편의 흑백 화면과 이 무성영화는 닮았지만 같은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앞에서는 모금산의 반복적인 일상과 적은 움직임을 보았다. 이제 그 익숙한 얼굴이 익살스러운 인물로 움직인다. 색이 없는 화면이라고 모두 오래된 추억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몸이 어떤 리듬으로 등장하는지에 따라 관객의 반응은 달라진다. 웃음이 나오는 순간에는 병보다 연기가 먼저 보일 수 있다.

그 점이 이 영화의 다정함을 만든다. 모금산에게 웃음은 슬픈 현실을 잠시 가리는 장식만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타인 앞에 서보는 방법이다. 영화가 그를 기억하는 방식에도 그의 취향이 들어간다. 무뚝뚝한 이발사나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모습에, 이런 우스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는 면이 하나 더 생긴다.

같은 장면 앞에서 웃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극중 상영회에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웃는 것은 아니다. 모금산이 계단에서 구역질하는 장면을 보고 예원은 웃지 못한다. 다른 관객이 희극적인 동작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그에게는 그 사람을 지켜보며 알게 된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영화 속 영화와 그 영화를 보는 얼굴을 번갈아 생각하면 웃음이 단순해지지 않는다.

감독은 같은 영화를 보아도 모금산과 함께한 시간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감상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원의 반응은 다른 관객의 웃음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우스운 장면은 여전히 우스울 수 있다. 다만 그 몸이 어떤 사람의 몸인지 아는 순간, 웃음 외에 다른 감정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관객인 우리도 본편을 통해 모금산을 알아왔기에 그 사이에 놓인다.

누군가를 담은 영상의 힘은 이렇게 화면 바깥의 기억과 만날 때 생긴다. 카메라에 찍힌 것은 한 동작이어도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는 함께 걸었던 길이나 나눈 말이 더해질 수 있다. 예원에게는 웃지 못하는 이유가 있고, 모금산의 영화를 처음 보는 이에게는 즐겁게 웃을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이 만든 영화가 서로 다른 경험으로 남는 장면이다.

아버지가 영화를 찍어달라고 했을 때 스데반은 무엇을 남기게 될지 다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관객도 처음에는 엉뚱한 마지막 소원처럼 받아들였을 수 있다. 상영회에 이르면 그 소원은 더 구체적이다.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보게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하는 것. 모금산은 그 작은 희극 안에서 계속 움직인다.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주고, 그를 아는 누군가에게는 웃음 뒤의 얼굴까지 떠올리게 하면서.

감상 포인트

◆ 반복되는 하루의 위치 — 이발소와 수영장, 술집을 오가는 초반에 모금산이 화면 어디에 놓이는지 보자. 고정된 구도에 익숙해질수록 작은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촬영이 시작된 뒤의 몸과 비교할 준비가 된다.

◆ 부자에게 새로 생긴 역할 — 아버지와 아들이 배우와 제작자로 함께하는 순간을 살펴보자. 마음을 설명하는 말뿐 아니라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일이 관계에 끼어든다. 작업을 위한 대화와 가족의 대화가 어떻게 겹치는지 볼 만하다.

◆ 희극 속의 익숙한 얼굴 — 영화 속 영화가 상영되면 초반의 모금산과 움직임을 비교해보자. 같은 얼굴과 몸이 다른 리듬으로 웃음을 만든다. 병든 인물을 바라보던 눈길이 배우를 보는 눈길로 바뀌는지 느껴볼 수 있다.

◆ 예원과 다른 관객의 반응 — 구역질하는 장면을 본 뒤 웃지 못하는 예원의 얼굴을 기억하자. 같은 장면에도 아는 사람과 처음 보는 사람의 반응이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를 어느 쪽이 옳은지 가르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 작품

◆ 〈윤희에게〉 (2019, 임대형) — 딸과 여행을 떠난 어머니가 오래 간직한 감정을 마주한다. 자녀가 부모를 자기 가족의 역할 밖에서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어볼 만하다. 말하지 않았던 시간을 여행이 어떻게 드러내는지 비교할 수 있다.

◆ 〈모던 타임즈〉 (1936, 찰리 채플린) — 고단한 현실을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통과하는 희극이다. 감독이 언급한 참고작이기도 하지만, 작품명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려움과 웃음이 같은 장면에 머무는 방식을 직접 비교해보면 좋다. 모금산이 무성 희극을 택한 마음에도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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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