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여자를 업고 가는 남자도 몸이 성치 않다. 〈봄밤〉의 영경(한예리)은 알코올 의존으로, 수환(김설진)은 오래 앓은 류머티즘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수환의 등에 영경이 기대는…
취한 여자를 업고 가는 남자도 몸이 성치 않다. 〈봄밤〉의 영경(한예리)은 알코올 의존으로, 수환(김설진)은 오래 앓은 류머티즘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수환의 등에 영경이 기대는 모습을 보면 다정하다는 생각과 저 몸으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함께 든다.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에도 체력이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게를 실제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만남을 안쓰럽게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영경은 수환과 같이 살고 싶어 하고, 수환은 영경에게 끌린다. 한예리는 이 시간을 영경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먼저 들으면 그 뒤의 행동도 모두 고통으로 읽기 쉽다. 〈봄밤〉을 보는 동안에는 그 설명으로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다정함과 적극적인 구애를 만나게 된다.
영경과 수환은 친구의 결혼식 뒤풀이에서 만난다. 주변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잠들어 있다. 떠들썩해야 할 자리가 이상할 만큼 가라앉아 있고, 그 가운데 두 사람이 서로의 이름을 묻는다. 다른 이들이 함께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둘만 깨어 있는 듯한 첫 만남이다.
연출을 맡은 강미자 감독은 이 장면에서 이름을 묻고 불러주는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관객에게도 그 이름은 필요하다. 술을 끊지 못하는 여자와 몸이 아픈 남자라는 사정에 앞서, 한 사람은 영경이고 다른 사람은 수환이다. 서로에게 관심이 생기는 데는 상대의 문제를 전부 파악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선 말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영경은 수환에게 자기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형편을 차근차근 따져보면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경이 누군가의 도움만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먼저 함께 지낼 자리를 내어주는 쪽도 영경이다. 그 적극성 때문에 두 사람을 보호하는 사람과 보호받는 사람으로 간단히 나누기 어려워진다.
사랑이 시작되면 하루의 사정도 좋아지는 영화들이 있다. 〈봄밤〉에서는 누군가를 만난 뒤에도 병과 술의 문제가 남는다. 그 조건을 알고 보면 함께 살자는 제안이 더욱 조심스럽게 들린다.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서로에게 주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 이 사람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또렷하다.
한예리와 김설진은 오랫동안 춤을 춰온 배우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몸은 멋진 동작을 보여주려고 움직이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기대거나 다른 사람을 업는다. 혼자 서 있는 몸과 상대의 무게가 더해진 몸이 얼마나 다른지, 사랑이 두 사람의 자세를 통해 드러난다.
한예리는 수환 역에 김설진을 추천하면서 이 촬영을 버틸 체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몸이 약해진 인물을 연기하면서 상대를 지탱하는 동작까지 해내야 했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업는 장면의 다정함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 실제 무게를 견디는 배우가 있고, 그 위에서 몸을 맡기는 배우가 있다. 사랑한다는 대사 없이도 두 사람이 지금 서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해진다.
수환이 영경을 업는다고 해서 그가 늘 강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자기 몸도 버거운 사람의 돌봄에는 힘이 부친다. 그 사실을 지우면 헌신적인 남자의 모습만 남겠지만, 몸의 어려움까지 함께 보면 같은 행동에 걱정이 스민다. 더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면서도 그에게 계속 버티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영경 역시 술에 취해 기대는 모습만으로 다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함께 살자고 했던 목소리와 누군가에게 몸을 맡긴 모습은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기운이 있는 때와 없는 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때와 부축이 필요한 때가 있다. 배우들의 몸을 따라가면 인물에게 붙었던 한 가지 설명이 조금씩 부족해진다.
울고 있는 얼굴을 크게 보여주면 관객은 그 감정에 빠르게 다가갈 수 있다. 〈봄밤〉은 그런 방법을 서두르지 않는다. 카메라가 거리를 둔 채 두 사람의 몸과 그들이 있는 자리를 함께 보여준다. 한예리도 영경의 눈물을 가까이에서 계속 찍는 방식은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울음을 보는 것이 인물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 되지는 않기를 바란 선택이다.
얼굴에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상대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몸을 어느 쪽으로 기울이는지, 혼자 서 있을 때와 곁에 사람이 있을 때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감정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대신 그 몸이 놓인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화면이 오래 머물면 인물에게 다가가는 속도도 조금 느려진다.
영화의 시간도 곧게 흐르지 않는다. 술자리와 걸음이 반복되고, 화면이 어두워지며 장면을 끊는다. 원작인 권여선의 단편소설에 있던 긴 세월과 주변 사연을 차례로 옮기는 구성은 아니다.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를 몇 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같은 일을 왜 다시 보여줄까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지내는 하루는 늘 새 사건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다시 만나고, 다시 기대고, 어제도 했던 행동을 오늘도 한다. 반복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만큼 이번에도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눈이 간다. 잠깐의 암전이 지나고 돌아온 몸이 그래서 반갑고, 여전히 힘들어 보여서 걱정스럽다.
영경과 수환을 두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영화는 그 질문에 삶의 모범답안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이미 만난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여준다. 이 시간을 병이 나았는지, 삶이 안정됐는지만으로 평가한다면 서로를 만나서 좋았던 순간은 어디에 놓을 수 있을까.
아프기 때문에 사랑이 더 훌륭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에게도 고통 없이 곁에 있을 시간이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만 고통이 있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주고받는 애정까지 초라하게 보고 싶지 않다. 한예리가 영경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말은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데 도움이 된다. 걱정하면서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다.
수환이 영경을 업는 모습을 다시 떠올리면 한 번에 한 감정만 고르기 어렵다. 무겁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등을 내어줄 사람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아픈 몸을 바라보는 걱정과 서로에게 다가가는 두 사람을 향한 마음이 함께 남는다. 〈봄밤〉의 사랑은 그 걱정이 사라진 다음에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이름을 불렀고, 함께 있고 싶어 한다.
◆ 잠든 사람들 사이의 첫 만남 — 결혼식 뒤풀이에서 영경과 수환이 서로의 이름을 묻는 장면을 보자.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두 사람의 대화를 함께 살피면 낯선 분위기 속에서도 관심이 시작되는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 만남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사보다 먼저 상대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다.
◆ 업는 사람과 업힌 사람의 몸 — 다정한 행동이라는 감상에서 조금 더 머물러보자. 상대에게 기대는 자세와 무게를 받아내는 자세를 두 배우가 함께 만든다. 수환 역시 몸이 아프다는 사정을 기억하면 이 행동에 고마움과 걱정이 동시에 생기는 이유가 보인다.
◆ 카메라와 울음 사이의 거리 — 인물이 울 때 화면에 얼굴 말고 무엇이 함께 담겨 있는지 살펴보자. 몸의 자세와 주변 공간, 다른 사람과의 거리도 감정을 전한다. 표정을 가까이에서 확인하는 데 익숙한 눈으로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 반복 뒤에 돌아오는 두 사람 — 비슷한 장면이 이어질 때 무엇이 새로 일어났는지만 찾지 않아도 좋다. 같은 행동을 다시 함께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지켜보자. 장면 사이의 어두운 화면까지 포함해 두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영화다.
◆ 〈만추〉 (2010, 김태용) — 서로의 사정을 다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낯선 도시에서 가까워진다. 언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순간에 배우의 표정과 몸짓이 어떻게 관계를 전하는지 이어 볼 만하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조건도 만남에 다른 무게를 더한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상처를 지닌 사람이 가족의 곁에 머물 방법을 찾는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도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는 사정을 세심하게 다룬다. 사랑하는 마음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인물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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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