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자가 〈봄밤〉에서 덜어낸 것들 | MovieLAB LAB

〈봄밤〉에는 영경(한예리)이 수환(김설진)에게 소설 『부활』을 읽어주는 장면이 들어갈 뻔했다. 강미자 감독은 대본을 쓸 때부터 넣을지 고민했고, 촬영까지 마쳤다. 배우들의 연기도…

강미자가 〈봄밤〉에서 덜어낸 것들 | MovieLAB LAB

〈봄밤〉에는 영경(한예리)이 수환(김설진)에게 소설 『부활』을 읽어주는 장면이 들어갈 뻔했다. 강미자 감독은 대본을 쓸 때부터 넣을지 고민했고, 촬영까지 마쳤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그런데 편집하면서 결국 뺐다. 두 사람이 함께 몸을 부대끼는 앞선 장면에서 이미 전한 사랑을, 말로 다시 설명하게 됐기 때문이다.

자기가 찍은 좋은 연기를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강미자는 한 장면이 아깝다는 이유로 영화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가 〈봄밤〉에서 붙잡으려던 것은 영경과 수환,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감정이었다. 장면이 그 감정을 더하지 못하면 덜어낼 수 있었다. 오랫동안 편집 일을 해온 감독의 판단을 이 삭제에서 엿볼 수 있다.

사연을 다 듣기 전에 가까워지는 두 사람

영경은 술에 기대고, 수환은 오래 앓은 류머티즘으로 몸이 상해 있다. 서로를 만났다고 병이 없어지거나 생활이 곧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둘은 지친 몸을 가진 채 가까워진다. 함께 있으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데에는 두 사람의 과거를 빠짐없이 설명하는 것과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강미자가 권여선의 단편소설을 읽고 붙잡힌 것도 영경과 수환의 슬픔이었다. 그는 특별히 큰일이 없어도 나이가 들며 불쑥 찾아오는 아픔을 이야기했다. 쉽게 울지는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소설 속 울음이 닿았다는 것이다. 원작의 사건을 얼마나 많이 옮길지보다, 읽으며 느낀 그 감정을 어떻게 전할지가 먼저였다.

영화에서는 소설에 있는 주변 가족의 이야기를 줄이고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함께한 열두 해도 차례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사건 다음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맞추는 일만으로는 이 영화에 가까워지기 어렵다. 두 사람이 이름을 묻고, 술을 마시고, 상대에게 몸을 기대는 순간을 먼저 만나게 된다.

이때 관객이 모르는 사정은 인물을 밀어내는 벽만은 아니다. 우리는 영경의 지난 일을 전부 몰라도 지금 누구에게 기대는지는 볼 수 있다. 수환이 왜 그토록 지쳤는지 다 듣지 못해도 몸을 일으켜 상대를 받치는 수고는 느낄 수 있다. 강미자는 사연을 설명하는 말을 덜어내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는 일을 남긴다.

〈봄밤〉 — 수환의 등에 기댄 영경

다시 한예리를 떠올린 이유

강미자는 첫 장편 〈푸른 강은 흘러라〉에서 한예리와 함께했다. 당시 한예리가 맡은 숙이는 연변의 중학생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봄밤〉을 준비하면서 감독은 다시 이 배우를 떠올렸다. 소설 속 영경은 쉰다섯 살이었지만, 영화에서는 한예리의 나이에 가까운 인물로 바꾸었다. 기존 인물의 겉모습에 배우를 맞추기보다 이 배우가 표현할 영경을 선택한 셈이다.

감독이 기억한 한예리의 장점은 정해진 표현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예리는 옛 영화를 다시 상영하고 싶어 감독에게 연락했다가 새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오래된 인연이 다음 영화로 이어졌지만, 어려운 역할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배우는 힘든 작업이 될 것을 알면서도 함께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결심했다.

수환 역의 김설진을 제안한 사람도 한예리였다. 강미자는 영경을 맡을 배우가 생각한 상대를 믿어보기로 했다. 감독 혼자 두 사람의 모습을 완성해놓고 배우들을 부른 과정과는 다르다. 한 사람을 찾은 뒤, 그 사람과 함께 설 수 있는 상대를 찾아갔다.

김설진은 시나리오에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인쇄가 잘못됐는지 생각했다고 했다. 이 일화는 〈봄밤〉의 낯선 형식을 설명하면서도 반갑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배우 역시 읽고, 다시 생각하고, 그 반복 안에 있는 관계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편집실에서 보인 배우의 시선

강미자는 촬영할 때 놓쳤던 김설진의 모습을 편집하며 발견했다. 자신의 연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한예리를 보고, 상대의 호흡에 맞춰주고 있었다. 감독에게 두 배우의 관계는 미리 정한 동작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 이상으로 보였다. 한 사람이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이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봄밤〉에서 누가 누구를 업거나 부축하는 일은 사랑을 상징하는 예쁜 자세로만 볼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몸이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무게를 받아내려면 자기 몸도 움직여야 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기울어진 몸과 그것을 받치는 몸 사이에 관계가 생긴다. 강미자가 낭독 장면을 빼도 된다고 판단한 이유를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다.

화면 사이의 암전도 이 몸짓과 함께 받아들일 만하다. 검은 화면이 나타날 때마다 다음 사건을 빨리 보여달라고 기다리기보다, 방금 본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느껴보자. 같은 행동이 다시 나와도 앞선 장면을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처음과 똑같지만은 않다. 강미자는 두 사람이 함께한 세월을 순서대로 설명하기보다 이런 반복과 끊김으로 이들을 다시 만나게 한다.

그는 드라마를 편집할 때에는 더 재미있고 멋지게 만드는 데 힘을 쓴다고 말했다. 〈봄밤〉에는 다른 판단이 필요했다. 장면을 보태 관객의 관심을 붙잡기보다, 보태려는 설명이 이미 보인 것을 가리는지 물어야 했다. 오랜 경험을 같은 방식의 반복에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작은 영화는 한 편집자의 새로운 연출이기도 하다.

강미자는 장편 사이의 긴 시간에도 편집을 하고 학생들과 영화를 이야기했다. 〈봄밤〉을 만들며 초기 실험 단편 〈현빈〉과 닮은 점을 뒤늦게 느끼기도 했다. 경력표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가 비어 보인다고 영화에 대한 관심까지 끊겨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시 영화를 만들 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뺄지 고르는 손에는, 그동안 다른 영화들을 만져온 시간이 함께 있다.

감상 포인트

◆ 이름을 묻는 두 사람 — 첫 만남에서 상대의 사정을 모두 알기 전에 이름부터 주고받는 모습을 보자. 감독은 주변 사람들의 설명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앞에 둔다. 이들이 어떤 관계가 될지 관객도 그 자리에서 알아가기 시작한다.

◆ 몸을 받아주는 몸 — 업거나 부축하는 장면에서 한 사람만 보지 말고 둘의 움직임을 함께 살펴보자. 돌보는 사람도 자기 몸을 써야 한다. 두 배우가 상대의 호흡을 따라갔다는 감독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 검은 화면 뒤의 반복 — 암전을 사건 사이의 공백으로만 넘기지 말자. 앞서 본 몸짓이나 말이 다시 나올 때 무엇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살펴보면 좋다. 영화는 지나간 연수를 알려주기보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감각을 반복해서 남긴다.

◆ 말 없이 전해진 사랑 — 영경과 수환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본 뒤, 그 관계를 설명하는 대사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감독이 삭제한 낭독 장면을 상상해서 채울 필요는 없다. 완성된 영화에서 이미 전달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감상이다.

관련 작품

◆ 〈봄밤〉 (2024, 강미자) — 병과 슬픔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는 시간을 그린다. 지나온 사정을 모두 정리하려 하기보다 지금 함께 있는 몸과 목소리에 집중하면, 강미자가 설명을 덜어내며 남긴 관계를 만날 수 있다.

◆ 〈푸른 강은 흘러라〉 (2008, 강미자) — 강미자와 한예리가 처음 장편에서 만난 작품이다. 연변에서 자라는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젊은 배우의 얼굴과 몸짓을 바라보던 감독의 시선을 돌아볼 수 있다. 〈봄밤〉의 재회가 품은 시간도 달리 느껴진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