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망해도 씨앗은 독점한다 | MovieLAB LAB

먹을 것이 부족한 세상에서도 씨앗을 가진 사람들은 나눠줄 생각이 없다. 〈베스퍼〉의 부유한 사람들은 성채 안에 살며 생명공학 기술을 독점한다. 성채 밖에서는 그들이 내주는 종자에…

세상이 망해도 씨앗은 독점한다 | MovieLAB LAB

먹을 것이 부족한 세상에서도 씨앗을 가진 사람들은 나눠줄 생각이 없다. 〈베스퍼〉의 부유한 사람들은 성채 안에 살며 생명공학 기술을 독점한다. 성채 밖에서는 그들이 내주는 종자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 그 종자는 한 번 수확하면 다시 번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농사를 지어도 다음번 씨앗을 스스로 얻을 수 없다. 재앙이 모두를 덮쳤다고 모두가 같은 처지가 된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서 굶주림은 황폐한 땅의 문제인 동시에, 다음 수확을 누가 허락하느냐의 문제다.

소녀 베스퍼(라파엘라 채프먼)는 그 허락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 집에서 식물을 기르고 생명체를 다루는 법을 실험한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고 먹을 것을 구하는 아이에게 연구실다운 연구실은 없다. 손에 넣은 재료를 만지고 고쳐보는 작은 작업이 있다. 영화의 미래는 멀리 있는 성채보다 그 손끝에서 더 궁금해진다.

가까이 보고 싶은데, 손대기는 무섭다

〈베스퍼〉의 숲은 죽은 풍경처럼 보이다가도 꿈틀거린다. 축축한 땅과 나무 사이에 낯선 생물이 붙어 있다. 식물이라고 생각한 것이 살갗처럼 보이고, 가만히 있던 표면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면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징그럽다고 해야 할지 잠깐 망설이게 된다.

이 망설임이 영화의 재미다. 재앙 이후의 세계를 설명하는 말을 듣기 전에, 이곳에서는 익숙한 감각을 믿기 어렵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초록빛이 보인다고 먹을 것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무성하게 자라는 것들이 인간을 살려주리라는 보장도 없다. 생명이 넘치는 화면에서 사람이 굶주린다는 사정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다가온다.

베스퍼는 그 낯섦을 구경만 하지 않는다. 무엇을 이용할 수 있고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살핀다. 관객이 움찔하며 보는 대상도 이 아이에게는 알아내야 할 재료다. 숲을 무서운 배경으로 지나치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베스퍼가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침대에 있고, 목소리는 곁에 있다

베스퍼의 아버지 다리우스(리처드 브레이크)는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 딸을 따라다니는 둥근 드론을 통해 말하고 주변을 살핀다. 침대에 누운 몸과 숲을 떠다니는 기계가 한 사람의 두 모습이 된다. 첨단 기술이 남아 있는 세상인데도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넉넉함과 거리가 멀다.

드론이 베스퍼 곁에서 말을 걸면, 기계가 함께 이동한다는 사실보다 아버지가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아이가 혼자 일을 처리하는 장면에도 걱정하거나 만류하는 목소리가 있다. 물리적으로 곁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든 아이 곁에 머무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목소리가 모든 것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베스퍼는 아버지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하고, 위험한 일을 직접 감당해야 한다. 도움을 구하고 싶은 아버지가 동시에 자신이 돌봐야 할 사람이다. 이 관계 덕분에 소녀의 능숙함을 마냥 대견하게만 보기 어려워진다.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혼자 해왔다는 사정이기도 하다.

낡은 집 밖으로 나오는 소녀의 팔을 큰 체구의 남성이 붙잡고 있다

낯선 사람에게 걸어보는 기대

추락 사고 뒤 베스퍼가 만나는 카멜리아(로지 맥이웬)는 성채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온다. 베스퍼는 그를 도우면 자신도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누구라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거창한 결심보다, 자기 삶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먼저 있다. 그 마음이 이 아이를 가까운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성채를 상상할 때 베스퍼가 바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자기 재능을 쓸 수 있는 곳, 날마다 생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곳일 것이다. 하지만 카멜리아를 만나 함께 지내는 동안 이 사람은 단순한 통행증으로 남을 수 없다. 서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고, 상대가 위험해지면 자기 계획만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요나스(에디 마산)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대한다. 필요한 것을 쥔 채 거래하고, 타인의 절박함을 자신의 이익으로 바꾼다. 그가 카멜리아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와 베스퍼가 카멜리아를 돌보는 이유를 함께 보면 같은 만남에서도 전혀 다른 관계가 생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세계의 잔혹함은 낯선 생물보다 사람이 사람에게 매기는 값에서 더 또렷해진다.

검게 변한 구조물과 황량한 땅 사이에서 소녀가 뒤를 돌아본다

탈출하고 싶은 아이가 남기는 것

베스퍼에게는 떠나고 싶은 이유가 충분하다. 그래서 영화가 그 마음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지켜보게 된다. 안전한 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지금 알게 된 사람들과 발견한 것을 모두 뒤로해도 될까. 이는 처음부터 남을 구해야 하는 영웅에게 주어진 시험과는 다르다. 자기 미래를 찾던 아이가 다른 사람의 미래까지 보게 되는 과정이다.

크리스티나 부오지테와 브루노 샘페르는 협력을 이 이야기의 중요한 바탕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는 그 생각이 연설보다 돌보고 관찰하고 나누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를 살피느라 잠시 자기 계획을 멈추는 일도 있다. 살아남으려면 자기 것부터 챙겨야 한다는 요나스의 방식이 그때마다 유일한 답은 아니게 된다.

이 영화의 풍경을 보고 나면, 이렇게 망가진 곳에 무엇을 더 해볼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베스퍼는 자꾸 손을 뻗어 무언가를 살핀다. 우리가 기괴하다고 지나칠 생물에서도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선언보다, 아직 알아낼 것이 남아 있다는 태도가 오래 남는다. 그 아이가 내일 무엇을 만들어낼지 보고 싶어진다.

감상 포인트

◆ 숲의 작은 움직임 — 풍경 전체보다 표면과 움직임에 눈을 주어보자. 식물과 동물, 기계의 구분이 흐릿한 세계다. 무엇을 만져도 될지 판단하기 어려운 감각이 베스퍼가 날마다 감당하는 위험을 전해준다.

◆ 드론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 둥근 기계를 볼 때와 침대에 누운 다리우스를 볼 때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같은 사람이지만 딸을 따라갈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부녀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을 가진 관계임을 느낄 수 있다.

◆ 카멜리아를 바라보는 두 사람 — 베스퍼와 요나스가 각각 그에게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보자. 처음의 기대가 끝까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는지도 중요하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이 반드시 같은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베스퍼가 돌보는 식물 — 주변의 황폐한 풍경과 소녀가 기르고 만지는 것들의 색을 함께 보자. 영화는 이 아이의 재능을 설명만 하지 않고 결과를 보여준다. 낯선 세계 안에도 손을 대어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발견이 된다.

관련 작품

◆ 〈괴물〉 (2006, 봉준호) — 인간이 만들어낸 재난 속에서 가족이 서로를 구하려 한다. 거대한 문제를 설명하는 말과 눈앞의 사람을 돌보는 행동 사이의 차이를 함께 볼 수 있다. 환경이 무너진 자리에 어떤 가족의 생활이 남는지 두 영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 〈파편들의 집〉 (2022, 시몬 레렝 빌몽) —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시간을 따라간다. 다큐멘터리와 SF라는 차이는 크지만,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가 남긴 어려움을 감당한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능숙하게 버티는 아이를 보며 안심해도 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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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