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전우의 부탁은 아들을 잘 싸우는 군인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아들을 돌봐주되 군인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알라트리스테〉의 디에고 알라트리스테(비고 모텐슨…
죽어가는 전우의 부탁은 아들을 잘 싸우는 군인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아들을 돌봐주되 군인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알라트리스테〉의 디에고 알라트리스테(비고 모텐슨)는 그 부탁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의 생계도, 오랫동안 곁을 지킨 사람들도 모두 검과 전장에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아는 삶밖에 보여줄 수 없는 사람이 소년에게는 다른 삶을 마련해줄 수 있을까.
17세기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결투와 음모, 큰 전투가 있다. 그 사이를 오가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검술이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점점 늘어난다. 칼을 잘 쓰면 당장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능력으로 계속 먹고살아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소년 이니고(우낙스 우갈데)를 맡는 순간, 알라트리스테는 자기 삶을 다음 세대에게 권해도 되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마드리드로 돌아온 알라트리스테는 돈을 받고 칼을 쓰는 일을 한다. 어느 날 그는 다른 청부업자와 함께 신분을 감추고 여행하는 두 외국인을 죽이라는 의뢰를 받는다. 하지만 수상한 사정을 감지한 뒤 두 사람을 살려주기로 한다. 의뢰를 끝내려는 동업자와 맞서면서, 그에게는 오래갈 적이 생긴다.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의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은 흔히 상대를 쓰러뜨릴 때 온다. 여기서는 죽일 수 있는 자리에서 그 일을 멈추는 결정이 인물을 드러낸다.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자신을 어디까지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 선을 긋는다. 위험이 줄어드는 선택도 아니다. 살려준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되면, 검으로 겨룰 수 있는 상대보다 훨씬 큰 권력의 일에 끼어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알라트리스테의 양심을 깨끗한 직업이나 신분에서 찾기는 어렵다. 그는 살인을 의뢰받아 먹고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거절은 선량한 사람이 악당과 싸우는 간단한 구도로 정리되지 않는다. 받아들여온 일 가운데 이번에는 하지 않을 일을 고른 것이다. 영화의 긴장은 그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와 함께 어디서 멈추는지를 지켜보는 데서 나온다.
이 선택은 이니고를 돌보겠다는 약속과도 연결된다. 알라트리스테가 소년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범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온 이력이 아니다. 불리해지더라도 자기 판단을 버리지 않는 행동이다. 모텐슨은 이 역할의 부성에 관해, 아이에게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소년에게 다른 삶을 바라면서도 칼을 놓지 못하는 남자의 모순은 그런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알라트리스테는 전장에 있는 사람과 권력을 가진 사람 사이의 거리를 안다. 올리바레스 백작공작(하비에르 카마라)에게 전쟁을 말할 때, 그는 낯선 땅에서 미움을 받으며 버텨야 하는 처지를 설명한다. 제국의 영광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과 그 영광을 위해 현장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같은 전쟁을 다르게 이해한다.
이런 말을 하는 그가 계속 싸운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실상을 몰라서 용감한 사람이라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뒤 행동을 바꾸면 된다. 알라트리스테는 이미 알고 있다. 전쟁이 무엇을 소모하는지 알면서도 동료들과 같은 자리에 선다. 그의 다음 싸움을 이해하려면 왕과 나라의 이름뿐 아니라, 누구와 함께 여기까지 왔는지 보아야 한다.
모텐슨은 알라트리스테가 지키려는 것을 왕에 대한 충성보다 친구와 약속이라고 해석했다. 이 설명을 떠올리면 전우의 아들을 맡겠다는 말의 무게도 달라진다. 전장에서의 연대가 싸움이 끝난 뒤의 생활까지 따라온다.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끝난 관계가 아니라, 죽은 동료가 남긴 사람까지 돌보아야 하는 관계다. 알라트리스테에게 명예는 남에게 칭찬받을 업적보다 스스로 쉽게 취소할 수 없는 약속에 가깝다.
문제는 그 약속들이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동료 곁을 지키려면 전장으로 가야 하지만 소년을 보호하려면 그 전장과 멀어져야 한다. 오래 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의리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험한 본보기가 된다. 알라트리스테가 단단해 보이는 순간에도 그의 삶 전체가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구스틴 디아스 야네스 감독은 여러 권의 소설을 각각 하나의 모험으로 옮기기보다, 알라트리스테의 삼십 대에서 오십 대까지 이어지는 삶으로 엮었다. 한 사건을 해결하면 다음 사건이 시작되는 구조 안에서도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돌보던 소년이 자라며, 맺어온 관계의 의미가 달라진다. 대단한 모험을 몇 번 했는가보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어떤 사람을 남겼는지가 중요해진다.
모텐슨이 인물의 말투를 준비한 과정도 흥미롭다. 그는 스페인 북부의 마을을 여러 차례 찾아가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들의 짧고 건조한 말투에서 인물의 바탕을 찾았다. 처음 방문했을 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던 술집에서 거듭 찾아가며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경험이었다. 영화 속 사건이 아니라 배우의 준비 과정이지만, 이 인물이 친밀함을 긴 설명으로만 드러내지 않는 연기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배우 마리아(아리아드나 길)와의 관계에도 마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조건이 있다. 길은 두 사람의 감정이 진실하고 성숙하지만 함께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전장에서 살아남는 재주가 일상의 자리를 마련하는 능력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도 삶이 원하는 모양으로 정착하지 않는다.
마지막 로크루아 전투까지 가면, 한 사람의 솜씨를 겨루던 결투와 큰 대형 속 병사들의 싸움이 다르게 보인다. 아무리 노련한 검객이라도 전쟁 전체의 조건을 바꿀 수는 없다. 감독은 이 큰 전투를 촬영하는 일이 특히 두려웠다고 회고했지만, 화면을 보는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제작 규모만이 아니다. 여러 싸움에서 보아온 사람이 이제 혼자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알라트리스테가 소년에게 다른 길을 바라던 마음은 이 긴 시간 끝에서 더 무겁게 돌아온다. 자기 삶을 부끄러워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안의 용기와 우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를 똑같이 치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멋진 검객을 따라온 관객이 마지막에 떠올리는 질문은 결국 이니고의 앞날이다. 이 사람에게 배운 것을 간직하면서도 이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1. 살려주기로 결정하는 순간 두 외국인을 죽이라는 의뢰에서 알라트리스테가 어디서 멈추는지 보자. 검술의 능력과 그 능력을 쓰는 기준이 구별된다. 그의 선택은 위험을 없애기보다 새로운 적을 만든다.
2. 소년 앞의 어른 이니고에게 하는 말과 이니고가 보게 되는 생활을 함께 살펴보자. 군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삶은 전장과 붙어 있다. 보호하려는 마음과 실제 본보기가 어긋나는 대목이 남는다.
3. 전쟁을 설명하는 위치 권력자와 병사의 대화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말하는지 들어보자. 국력을 말하는 자리에서 현장의 두려움과 소모를 말할 때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를 아는 사람이 다시 싸우는 이유도 생각하게 된다.
4. 결투에서 대형으로 개인의 솜씨가 드러나는 싸움과 마지막 전투를 비교해보자. 한 사람의 검이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 주인공을 오래 따라왔기 때문에 군사들 가운데 있는 그의 처지가 더 가까이 느껴진다.
〈결투자들〉(1977), 리들리 스콧 나폴레옹 전쟁기를 거치며 두 장교의 결투가 오랜 세월 이어진다. 명예라는 말이 사람을 지탱하는 순간과 놓아주지 않는 순간을 비교할 수 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사적인 약속과 집착이 계속 몸을 위험에 놓는 이야기다.
〈레오파드〉(1963), 루키노 비스콘티 이탈리아 통일기의 귀족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변화를 지켜본다. 거대한 역사적 변동을 한 사람이 나이 드는 시간과 함께 보여준다. 알라트리스테의 전장을 이 영화의 저택과 견주면 시대의 쇠퇴를 경험하는 신분의 차이도 보인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