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곤을 데려와, 지친 검객을 찍었다 | MovieLAB LAB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홍보하러 베를린에 온 비고 모텐슨을 스페인 감독이 찾아갔다. 아구스틴 디아스 야네스는 그에게 17세기 검객 역을 맡기고 싶었다. 막 거대한 판타지 …

아라곤을 데려와, 지친 검객을 찍었다 | MovieLAB LAB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홍보하러 베를린에 온 비고 모텐슨을 스페인 감독이 찾아갔다. 아구스틴 디아스 야네스는 그에게 17세기 검객 역을 맡기고 싶었다. 막 거대한 판타지 영화의 아라곤으로 세계적인 얼굴이 된 배우였다. 감독은 그가 스페인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해놓고도 미국에 돌아가면 주위에서 말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모텐슨은 결국 〈알라트리스테〉를 택했다.

검을 든 모텐슨은 익숙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디에고 알라트리스테에게는 왕의 귀환 같은 약속이 없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와도 생계를 위해 또 칼을 써야 하는 사람이다. 야네스는 큰 영화를 이끌 스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액션을 하면서도 인물의 깊이를 보여줄 배우를 원했다. 영웅으로 사랑받은 얼굴에 다른 세월을 얹는 선택이었다.

다섯 번의 모험을 한 번의 인생으로

원작은 아르투로 페레스레베르테의 소설 시리즈다. 야네스가 각색할 당시 다섯 권에 걸쳐 각각의 모험이 펼쳐져 있었다. 사건이 시작되고 끝나는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놓으면, 영화가 매번 다시 출발해야 했다. 감독은 주인공의 삼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를 따라가는 길을 택했다. 모험들은 한 사람의 삶에서 겪는 일들이 됐다.

이 변화가 영화의 감촉을 바꾼다. 새 사건이 생겨도 주인공은 처음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돌보던 소년 이니고(우낙스 우갈데)가 자라고, 오래 지킨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검객의 솜씨는 다음 싸움에서 다시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시간을 취소할 수는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이 늙어간다는 사실이 모험의 성패만큼 중요해진다.

야네스는 원작의 모든 내용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무엇을 덜어내도 같은 사람을 따라가고 있다고 느낄지가 과제였다. 원작자와도 그 중심을 두고 뜻이 맞았다. 책을 읽은 사람이 기억하는 사건을 하나씩 확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 사람이 오래 살아온 삶을 영화의 시간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 선택을 생각하면 영화가 사랑과 우정에 시간을 쓰는 이유도 이해된다. 칼을 잘 쓰는 사람의 일대기에서 사적인 관계는 다음 결투까지 기다리는 구간이 되기 쉽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어 하거나, 맡게 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들어오면 주인공에게 다른 능력이 필요해진다. 전장에서 노련하다는 것과 생활을 잘 꾸린다는 것은 같지 않다. 야네스는 알라트리스테에게 그 둘을 함께 감당하게 한다.

큰 배우가 작아 보이는 순간

야네스가 모텐슨을 원한 이유에는 스페인어로 연기할 수 있다는 조건도 있었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스페인어로, 큰 배우를 중심에 두고 만들고 싶었다. 익숙한 할리우드 스타를 데려와도 영화가 그 배우에게 맞춰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곤란했다. 모텐슨에게는 인물의 말과 몸을 새로 찾는 준비가 필요했다.

그는 프라도 미술관을 여러 차례 찾아 그림 속 사람들의 머리와 수염, 무기를 든 자세를 살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확인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몸을 어떻게 쓰는지까지 보았다. 화면에 시대를 믿게 하는 것은 배경 건물과 의상만이 아니다. 그 안에 있는 배우가 오늘날 사람처럼 서 있고 움직인다면 보는 동안 자꾸 거리가 생긴다.

야네스는 알라트리스테를 화려한 재주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검객과 구별했다. 모험을 벌이는 인물에게도 피로와 궁핍이 따라다닌다. 이 역할에 모텐슨의 스타성이 들어오면 흥미로운 차이가 생긴다. 우리는 이미 그가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는 형편은 그 능력만으로 벗어날 수 없는 종류다. 잘 싸우는 남자가 왜 마음먹은 대로 살지는 못하는지 궁금해진다.

모텐슨 역시 이 역할을 전형적인 영웅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그가 중요하게 본 것은 인물이 친구와 한 말을 지키려 한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계속 싸우기도 한다. 야네스가 선택한 배우는 큰 전투를 이끄는 모습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미 해버린 약속에 붙들린 모습도 보여줘야 했다. 영화가 길어질수록 첫인상의 강인함 안에 다른 사정이 쌓인다.

사람들이 오가는 물가에서 검을 찬 두 남성이 대화한다

권력은 말투부터 달라야 했다

주인공만 시대에 맞는 몸을 얻는다고 충분하지는 않았다. 과달메디나 백작을 연기한 에두아르도 노리에가에게 야네스는 다른 인물들과 말하는 방식, 움직임, 행동을 다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권력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배우의 몸에서도 구별하고 싶었던 것이다. 노리에가는 표정과 몸짓을 준비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이런 주문은 관객에게 긴 역사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백작이 어떤 사람인지 외워두지 않았어도,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누가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부탁하는 사람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다르다.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끼치는 영향도 같지 않다. 야네스는 그 차이를 호칭과 계급표 바깥에서도 읽게 하려 했다.

시대극의 의상이 아름답게만 보일 때는 모든 인물이 같은 옛날에 속한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누가 그 차림으로 편하게 움직이고 누가 상대 앞에서 조심해야 하는지까지 보게 되면, 그 시대 안의 차이가 드러난다. 알라트리스테의 검술은 몸에 밴 능력이지만, 그 능력이 귀족의 권한과 맞바뀌지는 않는다. 몸으로 해야 하는 일과 말을 통해 남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이 구별된다.

야네스는 외국 관객이 스페인 역사 속 이름들을 미리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가 잘 이야기하면, 유명한 시인을 모르는 사람도 그가 중요한 시인이라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필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명단을 완주하는 공부보다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읽는 일이다. 누가 명령을 내리고 누가 그 명령 뒤에 남는 위험을 떠안는지 보면 이야기에 들어갈 수 있다.

창과 무기가 오가는 가운데 가죽옷의 남성이 검을 쥐고 몸을 낮춘다

가난도 시대극의 풍경이어야 했다

〈알라트리스테〉를 준비하며 야네스는 큰 전투 장면이 있는 영화들을 찾아봤다. 동시에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도 다시 보았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빈곤을 화면에 담을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작 규모가 큰 시대극을 만들면서, 돈이 없는 사람들의 삶을 찍은 영화가 참고가 됐다.

그가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보도록 했다는 〈레오파드〉(1963)도 흥미롭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는 한 귀족이 자기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따라간다. 화려한 공간과 인물의 나이 듦을 같은 영화 안에 담는다. 야네스에게도 시대의 크기와 개인의 시간을 함께 보이는 일이 중요했던 셈이다. 다만 알라트리스테는 저택의 주인이 아니라 전장과 생계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다. 역사적 변화가 찾아오는 자리가 다르다.

그래서 〈알라트리스테〉의 규모를 즐기는 방법도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동원된 전투에 눈이 갈 때, 그 안에 있는 주인공이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왔는지 함께 떠올려보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미 여러 번 칼을 들었고, 그 사이에 누군가를 돌보고 사랑해왔다. 다음 싸움을 벌일 수 있는 몸이 있다고 다음 삶도 저절로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아라곤의 얼굴을 기억하며 영화를 시작한 관객에게 야네스는 다른 기다림을 건넨다. 이번에도 얼마나 멋지게 싸울까 하는 기대 옆에, 이 사람은 언제 칼을 놓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모험을 인생의 길이로 바꾼 각색과 그 시간을 감당할 배우의 선택은 결국 한곳에서 만난다. 검객이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사건 사이의 빈칸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감상 포인트

◆ 사건 사이에 흐른 세월 — 새로운 모험이 시작될 때 인물의 관계도 그대로인지 살펴보자. 이니고가 자라고, 알라트리스테가 돌보거나 의지하던 사람들과의 거리도 달라진다. 각각의 승패보다 긴 삶을 엮으려 했다는 감독의 각색을 따라갈 수 있다.

◆ 검을 들지 않을 때의 모텐슨 — 결투만큼 사람을 만나고 말을 주고받는 장면의 몸과 목소리를 보자. 액션을 잘하는 배우에게 맡긴 역할이지만, 주인공의 생활은 싸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을 부탁하고 어떤 말을 아끼는지에 그의 형편이 묻어난다.

◆ 귀족과 병사의 몸짓 — 과달메디나 백작이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보자. 감독이 노리에가에게 요구한 차이는 말투와 움직임까지 포함했다. 누구에게 행동할 여유가 있고 누구에게 조심할 이유가 있는지 보면 계급의 거리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 큰 전투 안의 익숙한 얼굴 — 병사들이 모여 있는 화면에서 알라트리스테를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 살펴보자. 혼자 솜씨를 발휘하는 결투와는 다른 조건에 놓인다. 앞서 보아온 일상과 관계 때문에, 군사들의 수를 보여주는 화면에서도 한 사람의 앞날이 걱정될 수 있다.

관련 작품

◆ 〈알라트리스테〉 (2006, 아구스틴 디아스 야네스) — 여러 모험을 한 검객의 세월로 묶은 영화다.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과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만드는 능력이 다르게 나타난다. 주인공이 나이 들며 누구와의 관계를 남겨가는지 따라보면 감독이 각색의 중심에 둔 시간을 느낄 수 있다.

◆ 〈레오파드〉 (1963, 루키노 비스콘티) — 야네스가 제작을 준비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권했던 시대극이다. 늙어가는 귀족과 바뀌는 사회를 함께 보여준다. 저택과 전장이라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인물이 자신보다 큰 역사적 변화를 어떻게 맞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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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