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으로 옮긴 강준희(장성범)는 동료들의 해고를 준비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의 준희는 조선소 입사 4년 차 대리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 지시가 내려온다. 인사…
인사팀으로 옮긴 강준희(장성범)는 동료들의 해고를 준비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의 준희는 조선소 입사 4년 차 대리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 지시가 내려온다. 인사팀은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내보낼지 정해야 한다.
준희가 받은 것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비밀 지령이 아니다. 회사가 정식 업무로 내려보낸 과제다. 회의를 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절차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더 난감하다. 직장인으로서 일을 잘한다는 평가와, 동료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이 영화의 불편함은 누가 악한 사람인지 찾는 동안보다 평범한 업무가 능숙하게 진행되는 동안 커진다.
해고 대상자를 정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회사는 근로자 쪽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도 관여하고, 자기 입장에 유리하게 일을 진행하려 한다. 서류와 회의가 많을수록 충분히 검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절차가 있다는 사실과 그 절차에서 직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준희는 이 과정을 바깥에서 조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움직여야 하는 실무자다. 상사의 말을 듣고 다음 작업을 이어간다. 한 가지 일을 마칠 때마다 구조조정은 조금씩 현실이 된다. 일을 미룬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당장 맡은 부분을 끝내는 데 집중하기 쉽다. 관객도 처음에는 그가 업무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다가, 그 업무가 누구의 생활을 바꾸는지 뒤늦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화가 인사팀 안에 오래 머무는 덕분에 해고는 통보 한 장으로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순서를 정했고, 다른 누군가 자료를 만들었으며, 또 누군가 결정을 전달해야 한다. 각각의 일은 작게 나눠져 있지만,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모두 물러서면 결정은 실행될 수 없다. 준희가 자기 몫을 어디까지 회사의 지시라고 여길 수 있을지, 매번 조금씩 어려워진다.
정규훈(김도영)은 회사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지금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인물을 오직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으로만 만들면 그의 확신은 설명되지 않는다. 오래 일한 회사가 무너지면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논리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에게 꽤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손경연(장리우)에게는 다른 문제도 있다. 조직 안에서 학력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현실을 알고 있고, 그 차이를 바꾸고 싶어 한다. 인사팀에서 일한다고 해서 회사의 모든 방식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에게 부당했던 기준을 고치려는 사람도 다른 직원을 내보내는 업무에는 참여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어느 자리에서는 항의하고 다른 자리에서는 지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 둘과 준희를 함께 보면 회사 편과 직원 편을 깔끔하게 나누기 어렵다. 인사팀 역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들이다. 다만 지금은 내보낼 사람을 정하는 쪽에 있다. 박홍준 감독은 이들 역시 노동자이면서 당장의 구조조정에서는 자기 자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태도에 관심을 두었다. 그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 있을까. 영화는 관객에게도 자기 자리라면 어떤 판단을 할지 생각하게 한다.
회의실에서 결정이 오가는 동안에도 조선소에는 배와 크레인이 서 있다. 영화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사이에 이 바깥 풍경을 놓는다. 사무실 안의 대화에 집중하다가 실제로 사람들이 일하는 현장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다. 회의에서 숫자와 기준으로 다루던 회사가 얼마나 큰 장소인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떠올리게 된다.
박홍준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조선소의 차가움을 화면에 담으려 했다. 실제 촬영도 추운 계절에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평범한 직장 풍경으로 보이던 금속과 기계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날카롭고 위태롭게 느껴지도록 장면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매일 출근하던 익숙한 곳이 어느 날 자신을 밀어내는 장소가 되는 사정과 어울리는 선택이다.
감독 자신도 조선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다른 회사의 구조조정 사례와 판례도 살폈다. 자기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일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관객에게는 그 조사의 양보다 인물들이 나누는 말의 익숙함이 먼저 닿는다. 회사가 어려우니 참아야 한다는 말,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할 일이라는 생각은 이 조선소 밖에서도 쉽게 떠오를 수 있다.
준희는 회사를 떠나는 직원의 딸에게 전화를 받는다. 이 장면에는 감독의 실제 경험이 반영됐다. 박홍준은 인사팀에서 직원의 근무지를 묻는 전화를 받고 흔한 재직 확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화를 건 자녀는 아버지의 마지막 출근 날에 꽃을 보내고 싶어 했다. 희망퇴직을 결정한 아버지를 위해 가족이 준비하던 일이었다.
인사팀에서는 절차대로 처리하는 퇴직이 가족에게는 함께 기념하고 위로해야 할 하루다. 딸은 어느 부서에 꽃을 보내면 되는지 묻고 있을 뿐인데, 그 물음이 직원의 정보를 관리하던 사람에게 전혀 다르게 들린다. 준희가 회사의 업무로 받아들이던 일 너머에 한 집의 생활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이 수화기를 통해 들어온다.
〈해야 할 일〉은 이 전화 때문에 앞선 결정들이 없던 일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화를 마친 뒤에도 일이 계속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됐는데도 그대로 일할 수 있을까. 준희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하고 무엇을 할지 지켜보게 된다. 처음에는 해고 대상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면, 이제는 해고를 맡은 이 사람이 자기 업무를 어떻게 감당할지가 궁금해진다.
◆ 해고 기준을 정하는 회의 — 누가 기준을 제안하고 어떤 의견이 실제 결정에 반영되는지 살펴보자. 말을 할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절차의 모양과 그 절차를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다른지 볼 수 있다.
◆ 규훈과 경연이 회사를 보는 방식 — 회사에 대한 애정과 조직 안의 차별에 대한 불만을 나란히 들어보자. 같은 인사팀에 앉아 있어도 일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다르다. 인물을 선악으로 먼저 나누지 않을 때, 각자가 동의하거나 물러서는 순간이 더 잘 드러난다.
◆ 준희에게 돌아오는 작은 업무 — 큰 결정만 기다리지 말고 그 결정을 실행하기 위한 일들을 따라가보자. 한 번의 명령으로 모두 끝나지 않는다. 자료를 준비하고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 준희에게 책임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살필 수 있다.
◆ 마지막 출근에 꽃을 보내려는 딸 — 직원의 근무지를 묻는 전화가 어떤 사정에서 걸려왔는지 들어보자. 인사팀이 처리하는 퇴직과 가족이 맞는 마지막 출근은 같은 날의 서로 다른 모습이다. 짧은 통화가 준희에게 해고 대상자의 생활을 어떻게 떠올리게 하는지 지켜볼 만하다.
◆ 〈미들 오브 노웨어〉 (2012, 에바 두버네이) — 수감된 남편을 기다리는 루비가 일과 생활, 자신의 바람 사이에서 선택을 이어간다. 처음 받아들인 책임이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 따라가는 영화다. 맡은 역할을 다한다는 말 뒤에 개인이 감당하는 시간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형의 죽음 뒤 조카의 보호자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남자의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임을 안다고 곧바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설명하는 말과 그 책임을 실제 생활로 옮기는 일 사이의 어려움을 다른 관계에서 보여준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