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면 파올로 소렌티노는 그 곁의 외투를 본다고 한다. 남들이 보는 것과 다른 곳에 눈을 두는 일을 설명하며 감독이 든 예다. 춤추는 사람은 모두에게 보인다…
파티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면 파올로 소렌티노는 그 곁의 외투를 본다고 한다. 남들이 보는 것과 다른 곳에 눈을 두는 일을 설명하며 감독이 든 예다. 춤추는 사람은 모두에게 보인다. 그런데 잠시 벗어둔 외투에 관심을 가지면, 그 옷을 입고 온 사람이나 잊고 간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 있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무엇을 골라 보느냐에 따라 영화는 달라진다.
〈파르테노페〉는 소렌티노가 고향 나폴리를 그렇게 다시 보는 영화다. 아름다운 해변과 여주인공의 얼굴은 쉽게 눈길을 끈다. 그 매혹을 즐기면서도 감독이 누구를 만나게 하고 어떤 시간을 오래 남기는지 따라가볼 만하다. 익숙한 고향을 찍는다고 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파르테노페(첼레스테 달라 포르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먼저 기대와 욕망을 품는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보고 느끼는 감정만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는 없다. 파르테노페는 인류학을 공부하며 자신도 다른 사람을 알아가려 한다.
소렌티노는 영화의 앞부분에서는 파르테노페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만, 점차 그가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변화는 감독에게도 중요한 선택이다. 예쁜 사람을 오래 보여주는 것과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따라가는 것은 관객의 관심을 서로 다른 곳으로 이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한 인물을 얼마나 아름답게 찍었는지에 관한 감상만으로 끝내기 아쉽다. 파르테노페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배워가는지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특별했던 여성이 자기 눈으로 세계를 알아가는 동안, 나폴리도 단순한 배경에서 여러 삶이 겹친 도시로 넓어진다.
소렌티노와 촬영감독 다리아 단토니오는 나폴리와 카프리의 한여름을 찍었다. 단토니오 역시 나폴리 출신이며, 오래전부터 소렌티노의 현장에서 카메라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 이제는 짧은 대화만으로도 감독이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고향의 여름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큰 창이 있는 집을 촬영할 때 단토니오는 자연광을 주로 쓰되 반사판으로 빛을 조절했다. 창밖은 밝고 안쪽은 어두운 공간에서 무엇을 얼마나 보이게 할지 골라야 했다. 관객에게는 한낮의 방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화면도 이런 선택을 거친다.
소렌티노의 이미지가 아름답다는 말을 할 때 함께 기억할 만한 과정이다. 감독의 감각은 촬영감독이 읽고, 현장의 빛과 배우가 있는 자리에 맞추면서 화면이 된다. 익숙한 풍경이라고 대충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날의 어떤 빛이 그 장소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파르테노페〉의 집과 바다를 볼 때도 관광지의 인상만 모으기보다 사람이 그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살펴보자. 같은 여름의 풍경이라도 혼자 있는 사람과 누군가를 만난 사람에게는 다른 시간일 수 있다. 빛을 기억하는 두 영화인이 한 사람의 생애를 찍으러 고향에 돌아온 셈이다.
소렌티노의 인물들은 때로 오랫동안 생각해둔 말처럼 단정적인 문장을 건넨다. 감독은 이런 대사에 어린 시절 어머니와 보던 미국 코미디의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재치 있고 자신 있게 말하던 배우들의 모습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대사는 정보를 전할 뿐 아니라 사람의 매력을 만드는 수단이다.
〈파르테노페〉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에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는 일이 포함된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잠시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다만 인상적인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주인공의 삶까지 대신 알아줄 수는 없다. 파르테노페는 만남을 이어가며 들은 말과 자기 경험을 함께 가져간다.
이 점은 감독이 줄거리보다 인물에 더 큰 관심이 있다고 한 말과도 닿는다. 다음 사건으로 빨리 넘어가지 않아도, 한 사람의 말투와 태도가 영화의 시간을 채울 수 있다. 그 말이 멋진지뿐 아니라 누가 누구 앞에서 하는 말인지 살피면, 기억에 남는 대사를 인물의 생활 속에서 다시 듣게 된다.
소렌티노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성숙한 여성이 자기 삶을 돌아보는 구조로 설명했다. 기억 속의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소중한 순간은 오래 머물고, 떠올리기 불편한 시간은 급히 지나갈 수 있다. 감독은 파르테노페의 생애를 연도마다 같은 분량으로 나누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담는 영화가 모든 시기를 빠짐없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만남을 오래 보여주면 우리는 그 사람이 남긴 인상을 느낀다.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만남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나이 든 파르테노페를 연기하는 스테파니아 산드렐리의 얼굴도 그런 시간 속에서 만나게 된다.
〈그레이트 뷰티〉에서는 로마가, 〈파르테노페〉에서는 나폴리가 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기억에 남는다. 두 도시를 아름답다는 말로 묶을 수는 있어도 같은 풍경으로 볼 수는 없다. 그곳을 지나온 인물들이 서로 다른 시간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렌티노의 영화가 남기는 여행의 즐거움은 명소를 많이 보는 데만 있지 않다. 내 눈이 어디에 오래 머물렀는지, 영화를 본 뒤에야 알아차릴 때도 있다.
◆ 보이는 사람에서 보는 사람으로 — 파르테노페에게 관심을 보이는 주변 사람들과, 파르테노페 자신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구별해보자. 주인공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같은 얼굴에서도 새로운 생각과 욕구가 보인다.
◆ 창문 안과 바깥의 빛 — 집 안에 있는 인물과 창밖의 풍경이 한 화면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살펴보자. 고향의 햇빛도 촬영을 위한 선택을 거쳐 영화의 분위기가 된다. 아름다운 장소와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함께 볼 수 있다.
◆ 근사한 말을 하는 사람 — 인상적인 대사가 나올 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를 떠올려보자. 문장만 떼어놓았을 때의 뜻과 그 자리에서 느껴지는 뜻은 다를 수 있다. 대사를 인물의 매력과 태도로 듣는 재미가 있다.
◆ 길게 남은 만남 — 한 인물과의 만남에 영화가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지켜보자. 사건의 크기와 장면의 길이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기억하는 사람이 그 순간에 머물고 싶은 이유를 생각하면 긴 생애를 다룬 구성도 가까워진다.
◆ 〈파르테노페〉 (2024, 파올로 소렌티노) — 나폴리에서 태어난 여성의 생애를 따라가는 영화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과 주인공이 스스로 알아가려는 세계를 함께 살피면 감독이 고향에서 새로 찾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그레이트 뷰티〉 (2013, 파올로 소렌티노) — 로마의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한 작가의 삶을 돌아본다. 도시를 안내하는 정보보다 그곳에서 나눈 말과 보낸 시간이 앞에 온다. 나폴리를 담은 영화와 나란히 보면 장소를 인물의 기억으로 만드는 감독의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