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파르테노페를 보면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도 알 수 없다. 〈파르테노페〉의 젊은 주인공(셀레스테 달라 포르타)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람들이 파르테노페를 보면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도 알 수 없다. 〈파르테노페〉의 젊은 주인공(셀레스테 달라 포르타)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라나 인류학을 공부한다. 자신을 구경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도 세상을 들여다볼 일을 찾은 셈이다. 나폴리의 햇빛과 바다에 마음을 빼앗겼다가 이 선택을 발견하면 영화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아름다움을 아껴 보여주는 감독이 아니다. 이번에도 카프리의 여름과 젊은 얼굴을 마음껏 펼쳐놓는다. 다만 영화는 주인공이 가장 빛나는 시절에 멈추지 않고 그 뒤의 삶까지 따라간다. 매혹적인 여자에게 누가 사랑을 고백하느냐보다, 그 여자가 살아가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알아가느냐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1950년 나폴리의 바다에서 태어난 파르테노페에게는 유난히 눈부신 청춘이 주어진다. 나폴리와 카프리는 그 젊음을 둘러싼 공간이다. 바다 가까이에서 보내는 시간에는 당장 어디론가 가거나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지금을 조금 더 누리고 싶은 기분이 있다. 영화의 느긋한 호흡에 몸을 맡기게 되는 이유다.
이 여름빛은 막연히 예쁜 풍경을 고른 결과만은 아니다. 촬영감독 다리아 단토니오는 한여름의 나폴리와 카프리에서 하루 동안 달라지는 빛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집 안을 찍을 때에도 큰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주로 쓰고 반사판으로 조절했다. 실내에 들어왔다고 바깥의 계절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문과 인물의 얼굴에 남은 빛을 보면 이 집이 어느 바다 곁에 있는지 계속 느낄 수 있다.
화면이 아름답다는 감탄은 이 영화를 즐기는 좋은 출발점이다. 그 감탄을 일부러 참을 필요는 없다. 대신 조금 오래 보자. 파르테노페의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처음에는 마냥 부러웠던 젊음에 상실과 후회가 더해진다. 햇빛이 찬란하다고 그 안의 사람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좋아했던 계절이 지나간 뒤에도 그 빛을 기억하는 마음이 영화에 서서히 스며든다.
파르테노페는 배우의 길에도 관심을 갖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명 여배우 그레타(루이사 라니에리)는 아름다움과 명성이 어떤 삶으로 이어질지 짐작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배우가 나폴리에 관해 하는 말은 자랑스럽게 고향을 소개하는 인사와 거리가 멀다. 그레타는 도시를 매섭게 비판한다. 관객이 앞서 즐겼던 풍경에, 그곳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소렌티노는 그레타의 말에 자신과 다른 나폴리 사람들이 품은 생각들을 담았다고 했다. 다만 그것이 도시를 향한 생각의 전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간격이 흥미롭다. 아름다운 곳이니 모두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도, 떠난 배우의 비판이 그 도시의 진실 전부일 것이라는 판단도 충분하지 않다. 파르테노페를 따라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나폴리를 알고 있다.
인류학을 가르치는 마로타 교수(실비오 올란도)와의 관계에는 공부해야 할 문제가 있다. 사람을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교수는 그 일을 쉬운 능력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과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일 사이에는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파르테노페가 공부를 계속하면서 영화도 구애와 유혹만으로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사정에 다가간다.
소렌티노는 영화의 앞부분에서 파르테노페가 많은 시선을 받다가 뒤로 갈수록 그녀가 도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이 변화에 주목하면 인류학은 주인공의 이력에 붙인 그럴듯한 전공명이 아니게 된다. 아름다운 주인공을 지켜보던 관객에게도 함께 볼 대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녀를 통해 나폴리의 사람들을 만나며, 이제 어떤 얼굴 앞에서 걸음을 멈출지 기다리게 된다.
그레타의 말과 마로타 교수의 가르침을 함께 들으면, 바라보는 일에도 여러 태도가 있음을 느낀다. 익숙한 고향을 향해 쌓인 감정을 쏟아낼 수도 있고, 눈앞의 사람을 아직 잘 모른다고 인정할 수도 있다. 파르테노페는 그 목소리들을 만나며 자기 삶을 이어간다. 그녀가 오래 기억할 만남이 관객에게도 조금씩 생긴다.
〈파르테노페〉는 긴 세월을 고르게 나누어 보여주는 전기가 아니다. 어떤 만남에는 오래 머물고, 어떤 시간은 건너뛴다. 소렌티노는 이 구성을 한 여성이 지나온 삶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소중한 기억은 길어지고, 떠올리기 불편한 때는 서둘러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생각하면 이야기의 느슨한 연결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달라진다. 모든 에피소드가 다음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이라도 생애 전체에서 만난 시간은 아주 짧을 수 있다. 반대로 오래 함께했다고 해서 또렷한 기억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영화는 그런 기억의 불균형을 남겨둔다.
젊은 시절의 셀레스테 달라 포르타에서 나이 든 시절의 스테파니아 산드렐리로 이어지는 얼굴도 그 긴 시간을 전한다. 앞에서 오래 보아온 젊은 얼굴이 있기 때문에, 다른 배우가 맡은 같은 사람을 만날 때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게 된다. 청춘을 아름답게 찍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청춘을 기억하는 사람까지 보여주는 선택이다.
영화 속 나폴리 역시 한 장의 여행 사진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파르테노페의 생애와 함께 오래 바라본 도시는 즐겁게 머문 곳이면서 떠나고 싶었던 곳, 떠난 뒤에도 잊기 어려운 곳이 된다. 풍경을 좋아하는 마음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겹쳐진다. 처음에는 가보고 싶은 도시였는데, 끝에 가까워지면 한 사람이 오래 살아온 고향으로 느껴진다.
〈파르테노페〉에서 아름다움은 분명 큰 즐거움이다. 그러나 가장 젊고 매혹적인 얼굴만을 남겨놓고 영화가 끝났다면 이 생애는 훨씬 작아졌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더 살아볼 시간이 있고, 더 만나볼 사람이 있다. 오래 바라본 얼굴을 한 사람의 삶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 눈부신 여름을 지난 뒤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거기에 있다.
◆ 집 안까지 이어지는 여름빛 — 바다와 실내를 함께 보자. 창으로 들어온 빛이 사람과 방을 어떻게 감싸는지 살피면, 나폴리의 여름이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같은 공간도 그 안에서 겪은 일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가 — 파르테노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녀가 관심을 갖는 사람도 따라가보자. 감독이 설명한 시선의 변화는 주인공의 공부와 만남 속에서 진행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관한 영화가 사람을 알아가는 영화로 넓어지는 대목이다.
◆ 마로타 교수와의 대화 — 두 사람이 보는 일과 사람에 관해 나누는 말을 들어보자. 구애의 말이 가득한 다른 관계와는 대화의 목적이 다르다. 파르테노페가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것을 계속 배우려 하는지 드러난다.
◆ 두 배우가 잇는 한 생애 — 젊은 시절을 오래 본 뒤 나이 든 파르테노페를 만나는 감각에 집중해보자.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달라졌다고 느끼는지 생각할 수 있다. 이야기에서 건너뛴 세월을 관객의 기억이 채우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 〈유스〉 (2015, 파올로 소렌티노) — 젊음을 지나온 예술가들이 휴양지에서 자기 삶을 돌아본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여유롭게 지낸다고 마음의 문제가 모두 풀리지는 않는다. 소렌티노가 풍경의 즐거움과 나이 드는 쓸쓸함을 어떻게 함께 담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아녜스 바르다) —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던 가수가 파리 거리를 걸으며 타인과 만난다. 한 여성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서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로 관심을 옮긴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긴 생애와 짧은 오후라는 서로 다른 시간 안에서 그 변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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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