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이라는 말을 듣는데 바다가 보인다 | MovieLAB LAB

달콤한 것을 말하는 시구가 들리는데 화면에는 파도가 밀려온다. 꿀과 짠 바닷물이 한순간에 만난다. 〈너는 나를 불태워〉에서 말은 종종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귀로…

꿀이라는 말을 듣는데 바다가 보인다 | MovieLAB LAB

달콤한 것을 말하는 시구가 들리는데 화면에는 파도가 밀려온다. 꿀과 짠 바닷물이 한순간에 만난다. 〈너는 나를 불태워〉에서 말은 종종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귀로 들은 말과 눈으로 본 것이 어긋나면서, 익숙한 바다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가 고대의 시를 오늘의 화면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시구에 어울리는 풍경 하나를 골라 정답처럼 붙여놓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바다에 온 이유가 서로 다르다

영화의 출발점은 체사레 파베세의 『레우코와의 대화』에 실린 「바다 거품」이다. 그 안에서 고대 그리스 시인 사포(가브리엘라 사이돈)와 님프 브리토마르티스(마리아 비야르)가 만난다. 한 사람은 실연 때문에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지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을 쫓는 남자에게서 달아나다 물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역사적 인물과 신화 속 존재가 나누는, 파베세가 상상한 대화다.

두 사람은 같은 바다에 도착했지만 사랑과 욕망을 똑같이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는 고통과 누군가의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함은 방향부터 다르다. 둘을 한데 묶어 사랑 때문에 죽은 여인들이라고 정리하면, 서로 다른 말을 주고받을 이유가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는 그 차이 때문에 대화가 계속된다.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은 두 인물이 상대를 꺾으려고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 듣고 물으며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한쪽이 내놓는 생각에 다른 쪽의 질문이 붙는다. 처음부터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위로와는 다르다. 상대의 말을 받아들일 때도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지울 수 없으므로, 대화는 한 가지 결론으로 쉽게 모이지 않는다.

감독은 파베세를 읽으며 죽음에 관한 말만큼 삶을 받아들이려는 말도 함께 있다는 점에 이끌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의 마지막을 알고 읽더라도, 작품의 모든 문장을 그 죽음의 예고로 볼 필요는 없다. 사포의 말과 브리토마르티스의 말을 모두 쓴 사람이 파베세다. 작품 속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함께 듣는 일이 작가를 한 가지 이미지로 굳히지 않는 방법이 된다.

긴 의자에 앉아 노트에 무언가를 쓰는 여성

책장을 넘기는 손 옆에서

피녜이로는 원작의 대화뿐 아니라 각주도 영화로 옮기고 싶었다. 낯선 신화의 이름을 만나면 책 아래의 설명을 읽고, 그 설명을 따라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게 된다. 본문 밖으로 나갔다 돌아오는 독서의 움직임이 영화의 구성에도 들어간다. 파베세의 글과 사포의 시, 책의 페이지와 오늘의 풍경이 이어지는 것은 한 줄의 이야기를 놓쳤기 때문이 아니다. 읽다가 옆으로 뻗어가는 생각까지 영화에 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독이 읽어온 책의 내용을 전부 강의해주는 형식은 아니다. 펼쳐진 페이지가 화면에 나오고, 관객에게도 글을 읽을 시간이 주어진다. 누군가의 설명만 듣는 대신 같은 페이지를 직접 바라보게 한다. 피녜이로는 관객이 카메라를 든 사람 곁에서 함께 읽는 친밀함을 원했다고 밝혔다. 책을 다 읽은 사람의 결론을 받기보다, 이제 어느 구절에 머물지 같이 고르는 쪽에 가깝다.

이때 원작을 미리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반드시 불리하지는 않다. 화면에 글자가 등장하고 목소리가 문장을 읽으면,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는 말이 생긴다. 모르는 인물의 이름을 모두 외워야 다음 장면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이 귀에 남았는지, 그 말 뒤에 어떤 이미지가 왔는지부터 붙잡을 수 있다. 영화는 문학 지식을 확인하는 문제지보다 책을 새로 펼쳐보는 계기를 건넨다.

붉은 수영복의 여성이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에서 팔을 뻗는다

한곳에 있지 않았던 바다

영화 속 해변은 실제 한 장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파도는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에서, 이어지는 절벽은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에서, 절벽의 그림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찍었다. 떨어진 곳의 이미지가 편집을 통해 한 흐름을 만든다. 배우들이 말하는 바다와 카메라가 찾아간 바다 사이에는 여러 나라와 시간이 놓여 있다.

이 연결은 장소를 알아맞히는 재미보다 더 작은 감각을 남긴다. 바로 앞에서 본 파도를 기억한 채 절벽을 보게 되고, 그 절벽 때문에 다음 그림자가 놓일 자리를 상상하게 된다. 실제로 붙어 있지 않은 장소들이 관객의 기억 안에서 가까워진다. 꿀이라는 말 옆에 짠 파도가 놓였던 것처럼, 이미지도 다른 이미지와 만날 때 새 관계를 얻는다.

촬영에 사용한 볼렉스 카메라는 길게 이어 찍는 데 제한이 있었다. 피녜이로는 이 짧은 촬영 단위가 조각난 사포의 시와 연결되었다고 설명했다. 긴 장면 안에서 움직임을 모두 해결할 수 없으니, 다음에 무엇을 놓을지 계속 생각해야 했다. 영화의 끊어짐은 단지 오래된 필름의 질감을 즐기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따로 찍은 것들을 어떻게 함께 보게 할지가 제작 과정부터 중요했다.

다만 떨어진 조각을 연결한다는 말이 아무 이미지나 가져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관객이 하나를 기억할 시간과 다른 하나가 등장할 때의 간격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모두 같은 뜻을 가리켰다면 꿀과 파도의 만남도 금세 지나갔을 것이다. 쉽게 포개지지 않는 두 감각이 남아 있어, 둘 사이를 생각하게 된다.

다음 시구를 기다리게 될 때

이 영화에는 사포의 짧은 시를 기억하게 하는 놀이가 들어 있다. 피녜이로는 관객이 시 한 편을 외워서 가져가기를 바랐고, 제목도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골랐다. 원작 장의 제목인 「바다 거품」을 그대로 쓰는 대신 사포의 시구를 제목으로 삼았다. 영화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시인의 문장도 다시 불리게 된다.

같은 말이 반복되면 처음에는 뜻을 알아듣는 데 쓰던 주의가 조금 남는다. 이번에는 어떤 풍경이 함께 나오는지, 앞서 들었을 때와 느낌이 같은지 살필 수 있다. 반복은 이해하지 못한 관객에게 다시 설명하는 일만은 아니다. 이미 아는 말을 기다리게 하고, 그것이 돌아왔을 때 달라진 주변을 듣고 보게 한다.

사포를 연기한 사이돈은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 감독은 사포 시대의 음악을 복원하려 하지 않았고, 음악 역시 짧게 나뉜 음들이 서로 응답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시를 완벽한 과거의 형태로 되돌려놓기보다 지금 가진 목소리와 소리로 다시 만나는 셈이다. 남은 구절을 읽고, 입에 붙여보고, 다른 풍경 옆에 놓아보는 일. 영화가 끝난 뒤 떠오르는 짧은 문장 하나도 그 만남이 계속되는 방식일 수 있다.

감상 포인트

◆ 말과 풍경의 어긋남 — 들리는 단어를 화면이 그대로 보여주는지 살펴보자. 꿀과 바다처럼 쉽게 겹치지 않는 조합에서는 두 감각을 모두 남겨두는 편이 흥미롭다.

◆ 서로 다른 바다의 사연 —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가 욕망을 말하는 방향을 구분해보자. 같은 장소에 왔다는 사실보다 그곳에 이른 이유의 차이가 대화를 움직인다.

◆ 화면에 펼쳐진 책 — 페이지가 나올 때는 해설을 기다리기보다 눈에 들어오는 구절부터 읽어보자. 영화가 보여주는 독서에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시간이 된다.

◆ 되돌아오는 시구와 짧은 음악 — 이미 들은 말이 다시 나올 때 함께 놓인 이미지와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귀 기울여보자. 반복되는 말을 기억하는 동안 새로운 연결도 생긴다.

관련 작품

◆ 시 (2010, 이창동) — 시를 쓰려는 사람이 주변의 사물과 타인의 고통을 다시 보는 이야기다. 문학을 이미 완성된 지식으로 제시하기보다 보고 읽고 쓰는 과정에서 달라지는 감각을 따라간다.

◆ 디셉션 (2021, 아르노 데플레솅) — 작가와 주변 인물의 대화를 통해 문학과 삶의 관계를 다룬다. 말로 쓰인 작품을 영화로 옮길 때 목소리와 배우, 공간이 하는 일을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