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티아스 피녜이로는 〈너는 나를 불태워〉를 만들며 카메라 사용법부터 배웠다. 처음 영화를 찍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16mm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촬영은 오랜 동…
감독 마티아스 피녜이로는 〈너는 나를 불태워〉를 만들며 카메라 사용법부터 배웠다. 처음 영화를 찍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16mm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촬영은 오랜 동료 페르난도 로켓이 맡았다. 이번에는 직접 볼렉스 카메라 뒤에 섰다. 측정하고, 혹시 몰라 다시 측정하고, 초점을 확인하는 동안 촬영은 느려졌다. 감독은 그 느려진 속도 덕분에 더 생각하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학에서 출발한 영화를 여러 편 만든 사람에게도 새 책은 새 촬영법을 요구했다. 피녜이로는 체사레 파베세가 쓴 두 여성의 대화에 끌렸지만 어떻게 찍을지는 알지 못했다. 익숙했던 긴 촬영과 옆으로 움직이는 카메라로는 이 글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꼈다. 좋아하는 문장을 찾은 뒤에는, 그것을 담던 자신의 습관을 바꿀 차례가 왔다.
이 영화에서 배우는 사람은 감독만이 아니다. 관객도 화면에 나타난 글을 읽고, 다시 나온 이미지와 앞서 들은 말을 이어보게 된다. 감독이 촬영할 때 잠시 멈춰 확인한 것처럼 우리도 시선을 서둘러 옮기지 않을 시간이 생긴다.
피녜이로가 직접 촬영을 택한 데에는 자신을 다른 위치에 두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카메라 옆에서 보는 사람으로 머물지 않고, 그 뒤에서 기계를 다루며 촬영에 몸으로 참여하고 싶었다. 그는 이 작업이 자신이 카메라를 배우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 같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발견과 실수를 모두 겪는 사람이 된 것이다.
볼렉스로 촬영할 때에는 한 번에 길게 담기 어렵다. 짧게 끊어 찍어야 하는 조건은 장면과 장면의 관계를 계속 생각하게 했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인물과 카메라가 움직이도록 만들던 감독에게 다른 일이 생겼다. 앞의 이미지 다음에 무엇을 붙일지, 떨어져 찍힌 것들이 만나면 어떻게 보일지 따져야 했다.
이 차이는 관객이 영화를 따라가는 방식에도 닿는다. 카메라가 움직이면 우리는 한 공간에서 시선이 옮겨가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 반면 잘린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만나면 그 둘의 관계를 스스로 이어보게 된다. 앞서 본 것을 잠시 기억해야 다음 것이 새롭게 들어온다. 〈너는 나를 불태워〉의 짧은 화면들은 그렇게 관객의 기억을 자주 불러낸다.
그러나 짧게 찍힌 재료가 곧 빠른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 장면을 얼마 동안 보여줄지, 다음 장면으로 언제 옮겨갈지는 또 다른 판단이었다. 촬영 장비를 배우며 늦어진 감독은 편집실에서 다시 속도에 관한 제안을 받았다.
피녜이로는 자신 혼자였다면 훨씬 서둘러 편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제라르 보라스가 반대 방향을 제안했다. 영화에 숨 쉴 여유를 더 주자는 것이었다. 감독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차분하게 그 순간에 머무는 감각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이 영화에는 책의 페이지가 화면을 채우는 시간이 있다. 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것과 그 글을 실제로 읽는 데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장면이 너무 빨리 지나가면 책은 이미지로만 남는다. 조금 더 머무를 수 있으면 관객은 단어를 읽고 앞선 말과 연결해볼 수 있다. 화면을 보다가 읽는 사람이 되는 작은 전환이다.
피녜이로는 관객에게 페이지를 읽을 시간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영화의 여유는 이미지 사이의 빈틈만을 뜻하지 않는다. 관객이 지금 화면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한 시간이다. 누군가는 문장을 먼저 읽고 그림을 다시 볼 것이고, 누군가는 앞서 들은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 같은 길이의 장면 안에서도 각자의 주의가 움직인다.
사포의 시도 동료를 통해 이 영화에 들어왔다. 피녜이로가 파베세의 글에 대한 관심을 나누었을 때 배우 아구스티나 무뇨스는 앤 카슨이 번역한 사포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파편으로 전해지는 시와 짧게 나뉘는 촬영 방식 사이에서 연결을 발견했다. 한 권의 책을 영화로 옮기려던 작업에 다른 책이 들어온 것이다.
배우가 감독이 가져온 글을 연기하는 데서 협업이 끝나지 않았다. 배우가 권한 읽기가 감독에게 촬영의 방향을 생각하게 했다. 이때 문학은 이미 해석이 끝난 재료로 건네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좋아한 것을 다른 사람이 읽고, 그 읽기가 작업의 모양을 바꾼다. 작품 바깥에서 오간 추천이 영화 안에서는 글과 이미지의 관계가 된다.
화면에 단어와 풍경이 나란히 놓이면 관객도 비슷한 일을 해볼 수 있다. 말이 가리킨 것을 이미지에서 찾다가 둘이 꼭 맞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거나, 같은 이미지가 다시 나왔는데 다른 말 때문에 새롭게 보일 수 있다. 한 번 만든 연결을 다음 순간에 고쳐보는 즐거움이다.
피녜이로는 이 영화에서 생겨나는 모든 연결을 자신이 통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관객이 각자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좋아했다. 카메라를 배우며 얻은 재료와 동료가 권한 책, 편집자와 조정한 시간이 이제는 보는 사람에게 건네진다. 읽던 페이지에서 어떤 단어가 눈에 남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 짧은 화면 사이에 남은 기억 — 화면이 바뀔 때 앞 장면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느껴보자. 색이나 단어, 인물의 모습 하나가 다음 이미지와 뜻밖에 이어질 수 있다. 각각의 화면만 볼 때와 두 화면을 나란히 떠올릴 때 생기는 차이가 영화의 움직임이 된다.
◆ 책을 보는 시간과 읽는 시간 — 책의 페이지가 나오면 글자의 모양을 바라보는 데서 실제 문장을 읽는 쪽으로 주의가 옮겨가는 순간을 살펴보자. 같은 화면에 머물러도 하는 일은 달라진다. 장면의 길이가 관객에게 어떤 활동을 허락하는지 느낄 수 있다.
◆ 다시 나온 이미지 곁의 말 — 비슷한 이미지가 돌아올 때 함께 들리는 말도 같았는지 기억해보자. 이미지 자체보다 그 곁의 말이 바뀌어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본 화면을 알아보는 반가움에 새로운 뜻을 찾는 움직임이 더해진다.
◆ 책장을 넘기고 표시하는 손 — 책의 글뿐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손에도 눈을 두어보자. 인쇄된 문장은 고정되어 있지만 손은 페이지를 넘기고 관심이 간 부분을 표시한다. 완성된 책을 보는 일과 누군가가 지금 읽고 있는 시간을 보는 일이 다르게 느껴진다.
〈너는 나를 불태워〉(2024), 마티아스 피녜이로 — 직접 촬영을 배우고 동료와 편집의 호흡을 조정하며 만든 영화다. 글과 풍경이 만나는 방식뿐 아니라, 그 만남에 관객이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도 느껴볼 만하다.
〈비올라〉(2012), 마티아스 피녜이로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젊은 배우들과 셰익스피어의 『십이야』가 만난다. 문학의 말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관계로 들어오는 모습을, 〈너는 나를 불태워〉에서 책과 인물이 만나는 방식과 나란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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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무비랩이 검토·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