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대신 본 시험에서 내가 사랑에 빠졌다 | MovieLAB LAB

남의 시험을 대신 보러 갔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데 그 소년은 내 이름을 잘못 알고 있다. 〈유앤미앤미〉의 미(티티야 지라폰실프)가 겪는 곤란이다. 미가 시험장에서 만…

너 대신 본 시험에서 내가 사랑에 빠졌다 | MovieLAB LAB

남의 시험을 대신 보러 갔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데 그 소년은 내 이름을 잘못 알고 있다. 〈유앤미앤미〉의 미(티티야 지라폰실프)가 겪는 곤란이다. 미가 시험장에서 만난 마크(앤서니 뷔서렛)는 상대를 쌍둥이 자매 유(티티야 지라폰실프)라고 믿는다. 자매에게 서로의 얼굴을 빌리는 일은 익숙한 장난이었다. 이번에는 그 얼굴로 얻은 기억을 누구에게 돌려줘야 할지 알 수 없다.

둘이서 한 사람 몫을 누리던 시절

유와 미는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꽤 실용적으로 이용한다. 뷔페에서 한 사람 값으로 번갈아 먹고, 영화관에서도 한 자리만 계산한다. 달갑지 않은 남자아이의 전화는 서로 대신 받아준다. 남들은 구별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웃을 수 있다. 이 작은 속임수에서 자매는 언제나 한편이다.

두 사람의 차이를 알려주는 표시는 미의 눈 아래에 있는 점이다. 관객은 그 점을 확인하며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이 그만큼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아니다. 쌍둥이가 외모를 이용하는 재미는 바로 그 차이에서 생긴다. 자기들만 아는 구별법과 남들의 착각 사이에, 둘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이익이 있다.

시험을 대신 보는 일도 처음에는 그런 공조의 연장이다. 한 사람의 곤란을 다른 사람이 해결해준다. 그런데 시험장에 간 미에게 생긴 호감은 공동의 성과로 나누기 어렵다. 시험을 치르는 데 빌렸던 이름이 만남 뒤에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크가 기억하는 이름은 유이고, 그와 만난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미다. 이름과 경험이 갈라지는 이 어긋남이 로맨스의 시작을 조금 서글프게 만든다.

마크는 처음부터 자매를 비교해서 한 사람을 고른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만 따져도 이 관계는 풀리지 않는다. 미에게는 실제 만남이 있고 유에게는 자기 이름이 있다. 평소에는 둘을 더 가깝게 만들던 닮은 얼굴이, 이제 각자의 말을 어렵게 한다.

악기를 든 소녀에게 손을 뻗는 소년

함께 가지 않은 수업에서

방학을 맞아 자매는 할머니가 사는 이산 지역으로 간다. 유는 현지의 현악기 핀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미는 내키지 않는다. 유가 혼자 수업에 간 곳에서 마크와 다시 마주친다. 다만 유에게는 처음 만나는 소년이고, 마크에게는 시험장에서 만난 소녀와의 재회다. 같은 만남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순서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이 수업이 흥미로운 것은 자매의 취향이 갈라진 자리라는 점이다. 미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갔던 시험장과 달리, 유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러 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건네받는 호감에는 자기가 겪지 않은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유가 마크에게 끌리는 마음은 지금의 자기 것이지만, 마크의 반가움이 시작된 곳은 미와의 만남이다. 영화는 이 두 가지를 한 사람의 잘못으로 간단히 정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는다.

관객이 자매보다 더 많이 아는 부분도 생긴다. 미와 마크의 첫 만남을 알고 있으므로 유에게 다가가는 마크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시에 유가 자기 취향을 따라 수업에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응원하다가 다른 한 사람의 처지를 보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 누구의 짝이 될 것인가에 앞서, 각자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게 된다.

핀 수업은 그래서 휴가지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꼭 같은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건을 움직인다. 여태 나란히 다니던 자매가 잠깐 다른 곳에 간 것만으로 서로 모르는 경험이 생긴다. 한 사람은 함께하지 않은 시간을 설명해야 하고, 다른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예전처럼 얼굴만 바꿔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

연꽃이 핀 물가의 배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세상이 끝날까 봐 걱정하는 여름

영화의 배경은 1999년이다. 새로운 천년을 앞둔 불안이 퍼지고, 자매의 집에서는 부모의 관계가 흔들린다. 처음 사랑을 알게 되는 시기와 가족이 계속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걱정하는 시기가 겹친다. 할머니 집에서 보내는 방학의 들뜬 공기에도 돌아갈 집에 대한 불안이 스며든다.

이때 첫사랑의 다툼을 부모의 이혼과 같은 문제로 묶을 수는 없다. 자매가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는 일과 어른들이 결혼 생활을 끝내려는 일은 다르다. 다만 아이들이 감당하는 시간 속에서는 두 일이 나란히 일어난다. 밖에서는 한 소년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집에서는 자기들끼리 정할 수 없는 변화가 다가온다. 어제까지 당연했던 관계들이 한꺼번에 낯설어진다.

영화가 놓인 여름의 의미도 여기서 달라진다. 방학이 끝나면 교실로 돌아가듯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리라고 믿기 어려워진다. 누군가를 좋아한 기억은 생기기 전으로 돌릴 수 없고, 부모 사이의 문제도 아이들이 서로 대신해주며 해결할 수 없다. 세기말이라는 큰 날짜가 아이들에게 가까워지는 것은 그런 일상적인 변화들을 통해서다.

이산의 할머니 집은 한편으로 그 변화가 벌어지는 구체적인 생활의 장소다. 실제 쌍둥이인 완위 홍비바타나·위안 홍비바타나 감독은 방학마다 할머니를 찾아갔던 경험과 식료품점을 하던 집의 모습을 영화에 가져왔다. 그러나 중심 줄거리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밝혔다. 익숙한 동네와 가게가 있다고 해서 자매의 사랑까지 감독들의 추억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생활의 세부를 빌려와, 그 안에서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두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점을 찾던 눈으로 마음을 구별하기

유와 미를 연기하는 사람은 한 배우다. 티티야 지라폰실프가 두 역할을 맡는다. 처음에는 같은 얼굴이 한 화면 안에 있다는 사실이나 눈 아래의 점이 눈길을 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그보다 앞서 누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떠올리게 된다. 마크를 먼저 만났던 아이와, 악기를 배우러 갔다가 그를 알게 된 아이를 구별하는 데는 얼굴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는 관객에게도 작은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쌍둥이가 남을 감쪽같이 속일 때는 그 닮음을 즐기다가,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는 구별의 필요를 느끼게 한다. 같은 얼굴을 보면서도 상대가 무엇을 겪었는지 물어야 한다. 시험장과 수업에서 시작된 두 만남을 기억하고 나면, 자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일이 처음보다 중요해진다.

감상 포인트

1. 자매가 한편이 되는 장난들 뷔페와 영화관, 대신 받는 전화에서 누가 이득을 얻는지 살펴보자. 초반에는 닮은 외모가 두 사람에게 함께 쓸 수 있는 자원이다. 시험장에서 생긴 호감과 비교하면, 같은 바꿔치기가 언제부터 공동의 즐거움이 되지 못하는지 보인다.

2. 시험장과 핀 수업의 다른 출발 미는 유를 대신해 시험을 보지만 유는 자기 뜻으로 악기를 배우러 간다. 두 장소에서 마크를 만나는 이유가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 차이를 놓치지 않으면 자매 가운데 누가 사랑의 주인인지 성급하게 정하기보다 각자의 경험을 따라갈 수 있다.

3. 한 만남에 섞인 서로 다른 기억 마크가 유를 알아본다고 생각할 때, 그가 기억하는 시간이 누구의 것인지 짚어보자. 관객이 알고 있는 사정과 인물이 알고 있는 사정의 차이가 설렘에 망설임을 더한다. 오해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일과 자매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 꼭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4. 방학을 둘러싼 가족의 변화 부모의 관계가 자매의 여름에 어떤 불안을 더하는지 살펴보자. 한 소년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자매의 갈등을 설명하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빠진다. 휴가지에서 즐거운 일이 생겨도 집에 대한 걱정이 함께 있다는 점이 이 성장담의 감정 폭을 넓힌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

〈우리들〉(2016, 윤가은) 여름방학 동안 가까워진 두 아이의 관계가 개학 뒤 달라진다. 둘만의 시간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났을 때 어떻게 바뀌는지 비교할 수 있다. 상대와 나누었던 비밀이 친밀함의 증거에서 상처를 주는 말로 바뀌는 과정도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남매의 여름밤〉(2019, 윤단비) 여름방학에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으로 간 남매의 이야기다. 한집에 모인 가족을 아이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어른의 사정이 아이의 여름에 들어오는 방식을 견주면, 두 영화에서 방학이 단순한 휴가 이상의 시간이 되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 조사와 집필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