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의 목숨이 걸린 회의에서 남자들이 손을 든다. 〈콜 제인〉의 배경은 1968년 시카고다. 임신한 조이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 출산까지 버티기 어렵다는 진단을…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의 목숨이 걸린 회의에서 남자들이 손을 든다. 〈콜 제인〉의 배경은 1968년 시카고다. 임신한 조이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 출산까지 버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는다. 병원 위원회는 임신중지를 허락할지 투표한다. 당사자는 그 자리에 있는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 결과는 거절이다.
조이는 평소 다니던 병원과 가족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믿음이 무너진 뒤에야 낯선 전화번호를 찾는다. 전단에는 도움이 필요하면 제인에게 전화하라고 적혀 있다. 제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건 전화는 조이를 살길로 이끌고, 마침내 다른 사람의 전화를 받는 자리까지 데려간다. 이 영화가 따라가는 변화는 도움을 받은 한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게 되는가에 있다.
위원회 사람들은 조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의학적 판단을 나누고 절차에 따라 결정한다. 그 침착함 때문에 오히려 조이와 이들의 거리가 또렷해진다. 이들에게는 검토할 사례이지만 조이에게는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안고 있어야 할 몸의 문제다. 회의가 끝나면 일어서서 나가는 사람과 그 결정을 자기 몸으로 감당할 사람이 다르다.
조이는 자신이 원하는 임신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임신을 중단해야 한다. 영화는 이 사정을 길게 변호문처럼 내놓기보다, 병원의 응답을 기다리는 얼굴을 보여준다. 설명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의 표정에 당혹감이 생긴다. 믿어왔던 절차가 자기 사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의 막막함이다.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조이는 처음부터 제도를 뒤집으려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생기는 변화도 선언보다 작다. 늘 하던 대로 부탁하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살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움을 찾는 조이의 이동은 정치적 신념을 먼저 가진 영웅의 진군과 다르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을 하나씩 확인하다가, 이전에는 알 필요가 없었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전화를 받고 조이를 맞아주는 사람들은 ‘제인스’라는 여성들의 모임이다. 버지니아(시고니 위버)는 이 모임을 이끌고, 그웬(운미 모사쿠)은 도움이 필요한 여성을 데려오는 일을 한다. 이들은 시술을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그곳에 오는 길과 돌아가기 전의 시간도 돌본다. 조이는 시술을 받은 뒤 다른 여성들이 있는 방에서 음식을 권유받는다. 긴박한 일을 마친 사람에게 우선 앉아서 먹을 것을 내주는 풍경이다.
여기에는 병원 위원회와 다른 종류의 분주함이 있다. 찾아온 사람의 사유가 충분한지 평가하는 대신, 오늘 누가 와야 하는지와 무엇이 필요한지를 챙긴다. 전화 한 통이 실제 도움이 되려면 약속을 잡고, 이동을 돕고, 기다리는 사람을 안심시킬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제인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여러 사람이 나눠 맡는 일의 이름이 된다.
그렇다고 이 모임에 들어서는 순간 영화가 엄숙한 얼굴들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버지니아는 능숙하고 유머가 있으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무거운 일을 한다고 해서 매 순간 비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함께 일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에는, 다음번에도 이곳에 오고 싶어질 만한 즐거움이 있다. 조이를 붙잡는 것은 의무감만이 아니다. 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기쁨도 있다.
연출을 맡은 필리스 나지 감독은 이 경험을 고통에만 집중하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방향은 환자가 된 순간 이후에도 조이의 생활을 계속 따라가는 데서 드러난다. 조이에게는 남편과 딸이 있고, 집 밖에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 몸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 그 관계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가 된다.
제인스가 하는 일을 응원하다 보면, 모임 안에서 갈등이 생길 때 잠깐 불편해질 수 있다. 그웬은 시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적한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누구나 도움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락처를 알더라도 낼 돈이 없으면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그웬의 문제 제기는 특히 흑인 여성들이 처한 형편을 드러낸다. 조이가 겨우 찾은 출구조차 다른 여성에게는 너무 비쌀 수 있다. 한 사람을 구한 경험을 전체 여성의 사정으로 확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같은 방에 앉아 있어도 각자 알고 있는 바깥의 현실이 다르다.
버지니아가 이끄는 모임은 분명 필요한 일을 한다. 그래서 그 안의 한계를 말하는 그웬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 칭찬만으로는 모임이 놓친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웬이 꺼내는 이야기는 연대를 방해하는 말이 아니라, 그 연대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의 자리까지 넓히라는 요구다.
영화는 이 차이를 추상적인 토론에만 맡기지 않는다. 누가 비용을 감당하고, 누가 기술을 독점하며, 어떤 여성이 기다려야 하는지가 모임의 운영에 걸려 있다. 제인스의 변화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울 수 있는 인원과 방법을 실제로 바꾸어야 한다. 조이가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게 되는 과정에도 이 현실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
조이는 모임을 돕는 데서 나아가 시술을 보조하고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낯선 방에 몸을 맡겨야 했던 사람이 이제 그 방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 그 사이에는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판단을 믿게 되는 시간이 있다. 당사자의 선택을 다루는 영화가 주인공에게 선택할 능력이 생기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셈이다.
이 변화가 곧바로 모두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가족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일과 실제로 하고 있는 일 사이에 틈이 생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전처럼 집 안의 역할만으로 하루를 채울 수도 없다. 조이의 성장은 큰 사건 하나가 끝났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 생긴 일과 관계를 기존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지켜갈지도 정해야 한다.
〈콜 제인〉은 실제 제인스의 활동에서 출발했지만 조이 개인의 전기는 아니다. 허구의 인물을 통해 도움을 청하러 온 여성이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을 구성했다. 그래서 제인스의 역사를 한 사람의 업적으로 보기도 어렵다. 조이 혼자서는 열 수 없었던 문이, 그를 먼저 맞아준 여러 사람 덕분에 열렸다.
영화의 시작에서 조이는 다른 사람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회의에 앉아 있었다. 이후에는 자신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 변화를 보고 나면 제목의 짧은 말이 다르게 들린다. ‘제인에게 전화하세요.’ 막다른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이 한마디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계속 전화를 받고, 약속을 잡고, 다음 사람을 맞을 준비를 했다.
◆ 회의실의 조이 — 누가 질문하고 누구의 대답이 결정에 반영되는지 살펴보자. 조이는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 인물이 한 방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등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보인다.
◆ 시술 전후의 시간 — 조이가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누가 길을 안내하고 음식을 권하는지 눈여겨보자. 의료 행위 밖에도 누군가 맡아야 할 일이 많다. 영화가 모임을 하나의 영웅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여러 사람이 움직이는 공간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그웬이 꺼내는 비용 문제 — 모임이 좋은 일을 한다는 데 동의한 뒤에도 어떤 이야기를 더 해야 하는지 들어보자. 같은 여성이라는 공통점만으로 경제적 형편과 인종에 따른 차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불편한 대화가 이들의 활동을 더 넓히는 출발점이 된다.
◆ 조이의 자리가 바뀌는 과정 — 도움받던 조이가 다른 사람을 돕는 자리로 옮겨갈 때 말투와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자. 확신이 생겼다는 선언보다 일을 배우고 맡는 모습이 변화를 전한다. 처음 회의실에서 기다리던 얼굴과 비교하면 그 거리가 느껴진다.
◆ 〈레벤느망〉 (2021, 오드리 디완) — 1960년대 프랑스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대학생을 따라간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시간을 한 사람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여성들의 모임을 찾아간 뒤 이야기가 넓어지는 〈콜 제인〉과 관찰의 범위를 비교해볼 수 있다.
◆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1977, 아녜스 바르다) — 서로 다른 생활을 하는 두 여성의 우정과 변화를 오랜 시간에 걸쳐 다룬다. 몸에 관한 선택이 생계와 관계, 함께하는 운동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웃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콜 제인〉의 활기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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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