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잘 찍는 능력이 악행에 쓰일 때도 있다. 〈화이트 온 화이트〉의 사진사 페드로(알프레도 카스트로)는 결혼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남아메리카 끝의 티에라델푸에고에 도착…
사진을 잘 찍는 능력이 악행에 쓰일 때도 있다. 〈화이트 온 화이트〉의 사진사 페드로(알프레도 카스트로)는 결혼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남아메리카 끝의 티에라델푸에고에 도착한다. 때는 20세기 초. 의뢰인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주 포터이고, 신부는 아직 어린 소녀다. 페드로는 이 불편한 결혼에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기회를 찾는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보다 빛과 자세를 어떻게 잡을지가 먼저인 남자다.
처음에는 그의 몰두를 예술가의 집착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사진사가 맡게 되는 일은 결혼식 촬영에 그치지 않는다. 원주민을 학살하는 자들에게도 자신을 남길 사진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는 능력은 이때 무엇을 위해 일하게 될까. 영화는 페드로의 눈을 빌려 풍경을 보여주면서, 그가 사진 밖으로 밀어내는 사람의 사정도 묻게 한다.
포터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으로 내려오는 지시는 사람을 움직인다. 결혼을 준비하는 이 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이상하다. 대개 영화에서는 인물의 얼굴과 행동으로 권력을 실감한다. 여기서는 그가 없어도 일이 진행되고 누구도 그의 뜻을 쉽게 거스르지 못한다는 사실로 권력을 알게 된다.
페드로 역시 그 질서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진을 의뢰받았다는 것은 그의 솜씨를 인정받았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고용주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녀에게 카메라를 겨눌 때는 자신이 화면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집주인의 뜻 앞에서는 얼마든지 밀려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자기 사진의 재료로 삼던 사람이 누군가의 도구가 되는 셈이다.
이 사정이 페드로를 면죄해주지는 않는다.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그를 처음부터 모든 일을 통제하는 악당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약한 처지라는 이유로 책임을 지워버리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이곳의 주인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앞에 놓인 사람을 어떤 모습으로 남길지 결정하는 순간에는 분명한 힘을 가진다. 더 큰 권력에 종속된 사람도 자기 손에 쥔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테오 코트 감독은 식민 개척자 율리우스 포퍼와 그 일행이 남긴 셀크남 원주민 학살 사진에서 출발했다. 관심을 끈 것은 사진에 담긴 사건만이 아니었다. 카메라 뒤에 어떤 사람이 있었기에 이런 모습으로 남길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페드로는 그 물음에서 만들어진 인물이다.
사진은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앞에 두고 누구를 중심에 세우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르게 설명된다. 가해자가 당당하게 서 있는 사진에서 죽은 사람은 그가 이룬 성과처럼 취급될 수 있다. 눈앞의 광경을 보기 좋게 정돈하는 일이 그 광경의 의미까지 바꿔버리는 것이다.
코트는 당시 사진의 긴 노출시간 때문에 학살 순간을 즉석에서 포착할 수 없었으며, 사건 뒤에 장면을 다시 꾸며 촬영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폭력을 목격하는 일과 폭력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만드는 일이 여기서 갈라진다. 페드로의 솜씨가 불쾌해지는 것도 이 지점이다. 그가 잘 찍으려 애쓸수록 사진을 주문한 사람은 더 그럴듯한 모습으로 남게 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사진은 모두 거짓이라는 주장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만들며 내린 선택이다. 사진 안의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했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도 지울 수 없다. 다만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누가 자리를 정하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알기 어렵다. 영화는 사진이 완성되기 전의 시간을 보여줌으로써 그 선택을 드러낸다.
〈화이트 온 화이트〉의 풍경은 대번에 시선을 붙잡는다. 눈에 덮인 땅과 어두운 실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인물을 둘러싼다. 코트는 실제 공간의 빛을 활용하고, 당시 사진과 오래된 회화의 인상을 화면에 담으려 했다. 처음부터 흉측하게 보이는 세계였다면 관객은 그곳을 싫어하기만 하면 됐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름답다고 느낀 화면 안에 누가 놓여 있는지를 다시 보게 된다.
넓은 풍경 속 인물은 작다. 이 거리에서는 누군가의 두려움을 얼굴 표정으로 곧바로 읽기 어렵다. 멀리서 보면 차분하고 정돈된 장면도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경험일 수 있다. 영화가 폭력에 바짝 붙어 자극을 키우지 않는 대신, 관객은 자신이 보고 있는 상황을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감독은 자기 영화의 카메라도 이 문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학살을 비판하는 영화라 해도 사람의 고통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래서 화면의 아름다움은 감독의 솜씨를 칭찬하고 지나갈 요소만은 아니다. 우리가 페드로의 사진을 의심하듯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도 생각해보게 한다. 비판의 대상인 사진사와 그를 찍는 감독 사이에 편안한 안전거리가 생기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사건을 대신 해설해주는 친절한 목소리가 없다. 페드로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명령을 내리는 자와 수행하는 자 사이에서 책임이 얼마나 쉽게 흐려지는지 알게 된다. 사진사는 자기 일만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일을 잘해냈기 때문에 가해자가 원하던 사진이 완성된다.
페드로가 카메라를 만지는 모습을 오래 보고 나면 사진 한 장을 바라보는 습관도 조금 달라진다. 선명한 얼굴과 잘 잡힌 구도만 눈에 들어오던 자리에서, 이제는 화면을 그렇게 정한 사람도 떠올리게 된다. 사진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화이트 온 화이트〉가 남기는 불편함은 먼 시대의 잔혹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폭력을 저지른 자 옆에는 그것을 그럴듯하게 남겨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총을 들지 않은 채로도 가해자의 역사에 기여한다. 좋은 사진이라는 칭찬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되는 이유다. 잘 찍었다는 말만으로는, 대체 누구를 위해 잘 찍었는지 알 수 없다.
◆ 등장하지 않는 지주 — 포터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어떤 요구를 따르는지 살펴보자. 권력자의 표정이나 위협적인 대사보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계속 작동하는 명령이 이곳의 관계를 보여준다. 페드로가 가진 권한의 크기도 그 안에서 가늠할 수 있다.
◆ 사진이 완성되기 전의 시간 — 결과물만큼 사진을 준비하는 행동에 주목해보자. 자리를 정하고 구도를 잡는 일은 중립적인 기술처럼 보이지만, 누구를 주인공으로 남길지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 준비 과정을 보게 함으로써 한 장의 사진에 담기지 않는 책임을 드러낸다.
◆ 인물에게서 멀어진 카메라 — 넓은 풍경을 감상하다가 그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다시 살펴보자. 화면이 아름답고 차분하다고 해서 인물이 처한 상황까지 평온한 것은 아니다. 거리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얼굴과 행동을 의식하면 풍경의 인상이 달라진다.
◆ 빛이 드러내는 것과 가리는 것 — 어두운 실내와 밝은 바깥에서 인물이 어떻게 보이는지 비교해보자. 밝아지면 모든 사정을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이 영화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선명하게 보이는 이미지에도 촬영자가 선택한 모습만 남는다는 점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 〈액트 오브 킬링〉 (2012, 조슈아 오펜하이머) — 학살 가담자들이 자기 과거를 영화로 재현한다. 가해자가 스스로를 어떤 인물로 보이게 하려는지, 그 욕망이 촬영 과정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필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장면과 그 장면이 다루는 실제 행동 사이의 차이를 더욱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다큐멘터리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조너선 글레이저) — 수용소 옆에서 평온한 가정을 꾸린 사람들을 보여준다. 화면에 보이는 생활과 그 바깥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화이트 온 화이트〉의 풍경을 본 뒤 이어 보면, 카메라가 무엇을 가까이 두고 무엇을 멀리 두는지가 감상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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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