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연인과 헤어질 때 딸의 얼굴에 기쁨이 비친다. 〈헤멜〉의 헤멜(한나 훅스트라)에게 아버지의 여자친구는 오래 머물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하이스(한스 다흘레트)도, 헤…
아버지가 연인과 헤어질 때 딸의 얼굴에 기쁨이 비친다. 〈헤멜〉의 헤멜(한나 훅스트라)에게 아버지의 여자친구는 오래 머물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하이스(한스 다흘레트)도, 헤멜도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는 그대로다. 어머니를 잃고 둘이 지내 온 시간이 이 관계의 바탕에 있다. 그런데 하이스가 동료 경매사 소피(리프카 로데이젠)와 진지하게 사랑에 빠지면서, 딸이 익숙하게 누리던 자리가 흔들린다.
헤멜은 남자를 만나고 관계를 끝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새로운 관계 앞에서는 좀처럼 거리를 잡지 못한다. 누군가와 쉽게 가까워지는 능력과, 가까운 사람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같지 않다. 이 영화의 긴장은 두 능력 사이에 놓인 헤멜을 따라가면서 생긴다.
하이스는 매력적인 남자다. 경매 일을 하며 아름다운 물건과 여행, 음식을 즐기고 연애도 한다. 딸을 사랑하지만 딸이 자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까지 충분히 살피지는 않는다. 사샤 폴락 감독은 헤멜이 여러 관계를 맺는 아버지를 닮아 가는데, 정작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비슷하게 살 때는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각자 다른 상대를 만나도 그 관계가 오래 이어지지 않으면, 부녀의 친밀함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하이스가 한 사람과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 균형이 달라진다. 아버지에게는 좋은 사람을 만난 일이 딸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정해야 하는 일이 된다.
소피를 경쟁 상대로 보는 헤멜의 태도에는 이 비대칭이 있다. 소피가 어떤 잘못을 해서 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전처럼 연애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이번 변화를 넘기기 어려워진다.
영화가 헤멜의 행동을 불편하게 보여 줄 때도 이 사정을 지워 버리지는 않는다. 남을 시험하고 상처를 주는 모습과, 자신의 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한 인물 안에 함께 있다. 관객은 그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왜 이 변화가 그토록 큰일인지 따라갈 수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그 사람이 늘 호감 가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여덟 개의 장으로 나뉜다. 헤멜의 시간을 연속해서 설명하기보다 몇 번의 만남과 순간을 골라 보여 준다. 그중에는 하이스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대목도 있다. 감독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이 관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딸의 불안만 따라가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관계의 다른 면을 잠시 열어 둔 것이다.
관점이 바뀌면 갈등의 원인도 조금 복잡해진다. 하이스가 딸을 아끼지 않는다면 헤멜이 느끼는 혼란은 더 단순해질 것이다. 하지만 애정은 있고, 그 애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사랑하는 딸이 자신의 새로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미처 모를 수 있고, 딸은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이전과 같은 자리를 요구할 수 있다.
폴락은 이 관계를 실제 부녀 사이의 성적 관계로 그리려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다가 각자의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구분은 경계를 넘나드는 친밀함을 볼 때 중요하다. 놀라운 비밀을 밝혀내려는 시선으로만 좇으면, 일상적인 애정 속에서 경계가 흐려지는 과정은 놓치기 쉽다.
한나 훅스트라는 주연을 맡기 전부터 아버지 역의 한스 다흘레트를 알고 있었다. 감독은 오디션 때 두 사람이 물가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회상했다. 훅스트라가 다흘레트의 딸과 친구였기 때문에 이미 편안한 사이였다. 영화 속 부녀의 친밀함을 연기하기 전부터 서로를 대하는 익숙함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감독이 배우에게 완성된 성격표를 건네고 그대로 움직이게 한 것은 아니다. 준비 과정에서는 대화를 나누고, 대본에 없는 과거를 상상하며, 영화에 들어가지 않을 장면도 연습했다. 훅스트라가 헤멜을 이해하고 채워 갈 자리를 둔 것이다. 이런 준비는 인물의 모든 행동에 설명을 붙이는 작업과는 다르다. 배우는 화면에 나오지 않는 삶까지 생각하되, 관객은 눈앞의 만남을 통해 그 사람을 알아간다.
헤멜을 따라갈 때 말의 세기와 관계의 주도권을 함께 볼 만하다. 먼저 다가가거나 상대를 밀어내는 행동은 당장 만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 방향을 자신이 정했다고 해서 마음까지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연애가 그렇듯 다른 사람은 헤멜이 정한 때에 오고 떠나 주지 않는다.
폴락은 초반의 분주함이 뒤로 갈수록 줄어들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마지막 장에는 고요함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상대와 빠르게 부딪히던 인물을 따라온 관객도 그 변화 속에서 숨을 고르게 된다. 인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큼, 그를 바라볼 시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중요해진다.
처음에는 도발적인 말과 행동이 헤멜을 설명하는 듯 보인다. 영화가 잠잠해질수록 그 행동 다음에 남은 얼굴도 보게 된다. 상대를 움직이게 하는 데 쓰던 에너지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차이다. 헤멜이 한 번의 사건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결론 내리기보다, 그 차이를 느낄 시간을 영화가 만들어 준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기는 일은 그에게 익숙한 생활의 끝을 알린다. 그동안 다른 만남들이 지나가도 남아 있던 둘만의 자리가, 앞으로는 다른 형태가 되어야 한다. 〈헤멜〉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서둘러 성숙한 어른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여전히 누군가를 원하고, 여전히 남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오래 시선을 둔다.
◆ 아버지의 두 연애를 대하는 얼굴. 끝나는 관계와 오래 이어질 관계에 헤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비교해 보자. 상대 여성 개인보다 부녀 관계의 변화가 갈등을 만든다는 점이 드러난다.
◆ 하이스의 시점으로 넘어가는 장.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어떤 애정과 한계가 함께 있는지 살펴보자. 헤멜의 관점만으로 알기 어려웠던 부분이 더해진다.
◆ 다가가기와 밀어내기. 만남에서 헤멜이 주도권을 잡으려는 말과 행동에 주목하자. 상대와의 거리를 정하는 것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언제 어긋나는지 볼 수 있다.
◆ 뒤로 갈수록 달라지는 호흡. 초반의 분주함과 마지막 장의 고요함을 비교해 보자. 인물의 말을 듣던 시간이 얼굴과 감정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낄 수 있다.
◆ 〈애프터썬〉(2022, 샬럿 웰스) — 딸이 아버지와 보낸 시간을 되짚으며 당시 알지 못했던 얼굴을 마주한다. 가까운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의 삶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 〈딸에 대하여〉(2024, 이미랑) — 딸의 연인이 집에 들어오면서 가족이 믿어 온 친밀함의 조건이 드러난다.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는 일이 기존 가족의 자리를 어떻게 바꾸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자료 조사와 집필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