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샤 폴락은 〈헤멜〉의 주연 오디션에서 배우 한나 훅스트라의 작은 움직임을 기억했다. 고개를 흔드는 모양이 조금 독특했고, 그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왜 이 배우여…
감독 사샤 폴락은 〈헤멜〉의 주연 오디션에서 배우 한나 훅스트라의 작은 움직임을 기억했다. 고개를 흔드는 모양이 조금 독특했고, 그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왜 이 배우여야 하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보는 순간 주인공을 찾았다고 느꼈다.
헤멜(한나 훅스트라)은 처음부터 쉽게 좋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사람을 시험하고 거칠게 굴며 자기 욕망을 앞세운다. 폴락은 그런 인물을 점잖게 정리해 소개하기보다 배우의 몸짓과 함께 만나게 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다가도 금세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여성에게 관객이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헤멜〉의 캐스팅과 리허설에는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이 있었다.
폴락은 배우와 대화를 많이 나눴다. 인물의 과거를 함께 만들고, 각본에 없는 상황도 연기해봤다. 훅스트라가 헤멜을 채워 넣을 여지를 크게 주었다. 완성된 문장을 정확히 말하는 것에 앞서, 이 사람이 어떤 경험을 가지고 눈앞의 상대를 만나는지 상상하는 시간이었다.
헤멜은 폴락 혼자 만든 인물이 아니다. 각본가 헬레나 판 데르 뮐런은 폴락의 단편 〈드랑〉을 보고 연락했다. 그 영화 속 여성과 비슷한 인물을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사랑을 찾으며 거울에 대고 성적 상상을 말하던 여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거울 앞이 아니라 실제 사람에게 한다면 어떨지 생각했다. 혼자 상상하던 욕망을 타인 앞에서 드러내는 순간, 상대의 반응도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다.
〈헤멜〉의 불편함에는 그런 만남이 있다. 주인공은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지만, 상대가 늘 그 바람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배우는 욕망을 설명하는 대사만 전달할 수 없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의 표정과 몸의 반응까지 만들어야 한다. 대본 밖의 시간을 함께 준비한 작업은, 관객이 헤멜을 한두 가지 성격으로만 정리하기 어렵게 하는 바탕이 된다.
폴락은 헤멜이 늘 다정한 사람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그가 자신을 알아가려는 호기심에 주목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과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한 배우에게서 함께 보려 한 것이다. 관객도 그의 행동을 이해할지 판단하기 전에, 왜 자꾸 다음 만남으로 나아가는지 궁금해질 수 있다.
헤멜의 아버지 헤이스(한스 다흘레트)를 연기할 배우는 먼저 정해져 있었다. 폴락은 훅스트라의 오디션 전에 두 배우가 밖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훅스트라는 다흘레트의 딸과 친구였고, 두 사람도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감독은 그들 사이에 이미 믿음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영화 속 부녀에게는 오랫동안 함께 지낸 사람들의 친밀함이 필요하다. 어머니 없이 살아온 두 사람은 서로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아버지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을 때 헤멜이 느끼는 불안도 그 가까움에서 나온다. 관객에게 관계의 과거를 길게 설명하기 전에, 둘이 같은 자리에 있는 모습에서 익숙함이 느껴져야 한다.
두 배우가 실제로 알고 지냈다는 사실은 그 관계를 시작할 재료가 됐다. 폴락이 찾아낸 것은 독특한 몸짓을 가진 주연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배우 곁에 놓였을 때 어떤 분위기가 생기는지도 살폈다. 한 사람에게 시선을 붙잡는 힘이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또 다른 편안함이 생길 수 있다.
폴락은 영화의 여덟 장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차분해지게 했다고 설명했다. 초반의 분주함이 가라앉으면, 관객도 헤멜의 행동에 즉각 반응하던 자리에서 조금 더 머물게 된다. 처음에는 성급하거나 거칠어 보였던 사람을 오래 보고 나서 다시 판단할 시간이 생긴다. 인물을 가까이 느끼게 하는 일에는 배우의 준비뿐 아니라 영화 전체의 속도도 관여한다.
이후의 〈더티 갓〉에서도 폴락은 주인공을 연기할 사람을 찾는 일에 큰 비중을 두었다. 출발점에는 감독 자신의 반응이 있었다. 음악 축제에서 얼굴에 큰 화상 흉터가 있는 여성을 보고 자신도 주변 사람들처럼 움찔했다. 폴락은 그 여성이 날마다 이런 시선을 마주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흉터가 있는 젊은 여성의 생활과 욕망을 다루는 쪽으로 나아갔다.
제이드(비키 나이트)는 산 공격으로 화상을 입은 인물이다. 그를 연기한 나이트도 화상 생존자였지만, 실제로는 어린 시절 화재를 겪었다. 배우와 인물이 가진 경험에는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폴락은 실제 흉터가 있는 사람을 찾는 데서 캐스팅을 끝낼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해도 좋겠다고 느낄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나이트에게는 과거 방송 출연에서 모욕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었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폴락을 만나 우정을 쌓은 뒤 촬영할 때 믿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할 수 있었고, 감정이 북받쳐도 숨기지 않아도 됐다. 배우가 자기 경험을 가져오는 일에는 그 경험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느끼는 시간이 먼저 필요했다.
◆ 말 다음에 오는 몸짓 — 헤멜이 상대에게 말을 건넨 뒤 어떤 표정과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펴보자. 원하는 것을 말하는 순간과 상대의 반응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다르다. 배우가 인물의 과거를 함께 만들며 준비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대사 밖에서도 헤멜을 알아갈 수 있다.
◆ 아버지 곁에서 달라지는 모습 — 낯선 남성을 만날 때와 아버지 헤이스 곁에 있을 때의 헤멜을 비교해보자. 같은 사람이어도 익숙한 관계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폴락이 오디션 전에 두 배우 사이에서 발견했던 친밀함이 어떤 긴장으로 이어지는지 볼 만하다.
◆ 점점 차분해지는 영화 — 초반과 마지막 장에서 장면이 흘러가는 속도를 비교해보자. 헤멜을 처음 볼 때의 반응과 오래 따라온 뒤의 느낌이 달라졌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인물을 이해하는 시간은 각본의 설명뿐 아니라 영화의 호흡으로도 마련된다.
◆ 엄마이면서 딸인 제이드 — 〈더티 갓〉에서 제이드가 자기 어머니와 대화할 때, 또 어린 딸 곁에 있을 때의 모습을 함께 보자. 화상 이후 가까운 가족과의 관계도 달라진다. 누구에게 의지하고 누구를 돌보려 하는지 따라가면, 흉터만 바라볼 때는 알기 어려운 제이드의 생활을 만날 수 있다.
◆ 〈헤멜〉 (2012, 사샤 폴락) — 배우의 독특한 몸짓과 부녀 사이의 친밀함에서 출발해 한 여성을 가까이 보는 영화다. 장이 바뀔 때마다 인물을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따라가면, 폴락이 배우와 영화의 속도를 함께 쓰는 방식을 볼 수 있다.
◆ 〈더티 갓〉 (2019, 사샤 폴락) — 화상 흉터와 함께 살아가는 젊은 여성을 실제 화상 생존자인 배우가 연기한다. 관객이 처음 얼굴을 보았을 때의 반응에서 출발해, 인물이 바라는 생활을 얼마나 알아가게 되는지 살펴보며 이어볼 만하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