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오래전 함께 활동했던 한주가 보낸 소식이고, 장소는 강화도의 ‘똥통’이다. 그곳을 향해 온 두 남자는 사람들을 붙들고 위치를 묻는다. 마지막 공연에…
공연이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오래전 함께 활동했던 한주가 보낸 소식이고, 장소는 강화도의 ‘똥통’이다. 그곳을 향해 온 두 남자는 사람들을 붙들고 위치를 묻는다. 마지막 공연에 가야 하는데 공연장부터 쉽게 찾을 수 없다. 거창한 예술론에 앞서 길을 물어야 하는 이 출발에는 우스움과 막막함이 붙어 있다. 예술가로 살았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시 모일 장소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장권호 감독의 〈똥통〉은 두 남자의 길에 다른 두 여자를 들여놓는다. 한쪽은 옛 동료를 만나러 왔고, 다른 쪽은 작가를 찾고 영상을 찍기 위해 섬에 왔다. 각자 할 일이 있어 도착했지만 여정은 곧장 끝나지 않는다. 길 위에서 자꾸 마주치는 동안, 예술을 하고 있다는 말 뒤에 서로 다른 사정이 있다는 것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공연은 그런 시간을 지나서 도착하는 자리다.
마임을 하는 정훈(이정훈)과 함께 온 동료에게 한주의 문자는 옛 관계를 다시 잇는 연락이다. 그들이 함께했던 밴드 ‘불가사리’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소식이 두 사람을 움직인다. 공연이 계속된다는 약속과 마지막이라는 통보가 같은 초대 안에 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반가움만큼, 이번이 지나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불러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처음부터 추억에 잠긴 인물로만 볼 수는 없다. 영화는 지난 무대의 영광을 길게 소개하는 대신 지금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길을 따라간다. 과거에 누구였는지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다르다는 사실이, 이름 모를 장소를 묻는 행동 속에 들어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당장의 문제가 생기면 예술가라는 이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두 여자의 방문 목적이 다른 것도 이 여정을 넓힌다. 옛 밴드의 사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오자, 모든 대화가 추억을 확인하는 일로 흐를 수 없게 된다. 같은 길을 걷는다고 같은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나간 활동을 붙드는 마음과 앞으로 할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부딪힌다. 영화는 예술가라는 한 이름 아래에서도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미래가 더 무거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똥통’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며 길을 묻는 상황도 그래서 묘하다. 제목만 들으면 무언가를 깎아내리는 거친 표현 같지만, 인물들에게는 일단 가야 할 곳이다. 관객에게 먼저 전해지는 말의 인상과, 그 이름을 믿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필요가 어긋난다. 우스운 명칭을 웃고 넘겼다가도 그들이 끝내 찾고 싶어 하는 장소라는 점이 남는다.
길에서 만나는 배우 수나(차지원)는 예전에 잘나갔지만 지금은 동료가 원하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영화 현장에서 받은 성추행 피해와 우울증도 그의 삶에 남아 있다. 수나에게 카메라 앞에 선다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는 방법이면서, 상처가 생긴 일을 다시 이어가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촬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잘 지내는지 판단하기 힘든 사람이다.
차지원은 수나를 사연이 드러나 보이는 전형적인 인물로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누군가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는 배우의 고충은 이해하되, 고통이 얼굴에 언제나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이 선택은 관객이 수나를 살피는 방식도 바꾼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게 됐다고 해서, 그 뒤의 모든 행동을 그 사건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과 함께 이동하고 촬영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특히 누군가의 요청에 응해 영상을 만드는 처지가 앞선 공연 초대와 나란히 보인다. 한쪽에서는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사람들을 부르고, 다른 쪽에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 촬영할 것을 정한다.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일을 이어갈 기회다. 동시에 그 기회가 자기 뜻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정도 있다. 수나가 예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묻기 전에, 어떤 조건에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는 이유다.
영화가 보여주는 만남의 흥미도 여기 있다. 같은 예술 분야에 있다는 사실이 상대의 경험을 곧바로 이해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시를 쓰고 마임을 하는 사람들의 사정과 카메라 앞에 서는 배우의 사정은 다르다. 그 차이를 둔 채 한 여정에서 마주치게 하면, 서로를 동료라는 말로 정리하기 전에 한 사람씩 볼 시간이 생긴다.
이 만남을 찍은 방식 역시 인물을 빨리 정리하지 않는 쪽이었다. 영화는 완성된 시나리오 대신 개요와 캐릭터를 바탕으로 촬영했고, 배우에게 연기를 끊지 않고 이어갈 시간을 주었다. 차지원은 인물로서 표현하려는 것이 분명하면 감독이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했다고 회고했다. 모든 장면을 순간의 착상만으로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인물의 사정을 알고 출발하되, 그 인물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열어둔 작업이다.
배우가 어떤 대사를 전달했는지만 따라가면 장면은 금세 요약된다. 그러나 연기가 계속되는 시간에는 상대의 말과 몸에 반응하는 일도 포함된다. 〈똥통〉의 인물들이 예술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는지와 함께, 사람을 만나고 같은 장소에 머무는 모습을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야기 속에서 마임과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몸이 중요하듯, 이들을 연기하는 몸에도 장면을 이어갈 시간이 주어졌다.
영화 후반에는 실제 실험음악가 이한주가 공연을 펼친다. 그동안 목적지의 이름과 사람들의 사정으로 떠올렸던 공연이 이제 소리와 움직임을 가진다. 누가 얼마나 유명한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로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방식과는 다른 만남이다. 관객은 인물들이 말해온 예술의 가치를 먼저 승인할 필요 없이,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게 된다.
공연장을 찾는 길에서 출발한 영화가 공연에 시간을 내주는 것은 그래서 반갑다. 힘든 사정을 아는 일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보여주려는 것을 받아볼 기회가 생긴다. 길 위에서 우스웠던 이름 뒤에, 누군가 사람들을 부르고 준비한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는 동안 관객도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된다.
1. ‘똥통’의 위치를 묻는 사람들 거친 이름이 실제로 찾아가야 할 장소가 될 때 생기는 웃음을 따라가자. 예술가라는 소개보다 길을 묻고 헤매는 행동이 먼저 다가온다. 이들에게 공연장이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되는 출발이다.
2. 각자 다른 방문 목적 옛 동료를 만나러 온 사람과 작가를 찾고 촬영하러 온 사람이 같은 섬에서 어떻게 마주치는지 보자. 예술가라는 공통점보다 각자가 지금 하고 싶은 일과 걱정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면 관계가 더 잘 보인다.
3. 수나의 사정과 일상의 행동 인물의 상처를 알게 된 뒤에도 그의 모든 행동을 그 한 가지로 해석하지 않고 살펴보자. 카메라 앞에 서고 동료와 일을 이어가는 현재가 함께 있다. 사연을 듣는 일과 사람을 보는 일 사이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4. 찾아간 끝에 만나는 공연 공연이 시작되면 줄거리의 결론을 기다리던 속도를 잠시 바꿔보자. 이한주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움직임을 따라가는 동안, 예술가의 형편에 관한 이야기와 그가 실제로 하는 일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다.
〈요선〉(2021), 장권호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예술 세계를 실험적인 영화 형식으로 만나는 작품이다. 〈똥통〉에서 공연하는 몸에 관심이 생겼다면, 인물을 설명하는 말과 직접 몸을 보는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어서 볼 만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 임대형 작은 마을의 이발사가 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창작이 완성된 작품의 명성에 앞서 사람들을 모으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영화가 만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