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에 출연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배우 차지원은 거절하려 했다. 촬영은 사흘 앞으로 다가왔고 함께할 배우와 스태프도 낯설었다. 감독 장권호는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
〈똥통〉에 출연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배우 차지원은 거절하려 했다. 촬영은 사흘 앞으로 다가왔고 함께할 배우와 스태프도 낯설었다. 감독 장권호는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찍을지 자세히 설명했다. 찍다가 정말 아닌 것 같으면 그만둬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차지원은 그 설명을 듣고 함께하기로 했다.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개요와 인물을 가지고 찍는 영화였다. 배우에게 넓은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 자유를 받아들이려면 먼저 믿을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장권호는 현장에서 무엇을 연기할지 지시하기에 앞서, 배우에게 어떤 작업에 참여하는지 설명했다. 그만둘 수 있다는 말까지 포함해서였다.
그가 만드는 영화에는 실제 예술가와 그 사람을 닮은 허구의 인물이 함께 들어온다. 공연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몸과 말에서 영화의 가능성을 찾는다. 이 관계에서 즉흥성은 우연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복잡하다. 상대가 가진 것을 알아보고, 그것을 영화 안에서 어떻게 펼칠지 함께 정하는 과정이 있다.
〈요선〉의 출발에는 마임이스트 유진규가 있었다. 장권호는 그의 공연을 촬영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함께 영화를 만들 때에는 기록만으로 내면을 담기 어렵다고 느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방법을 섞었다. 실제 예술가를 카메라 앞에 데려온 뒤, 허구를 통해 그 사람에게 더 다가가려 한 것이다.
발상의 실마리는 유진규의 마임에 있었다. 라이터 불이 켜지고 꺼지는 공연을 보며 장권호는 한 사람 안의 두 인물을 떠올렸다. 영화 속 진규와 조르바는 모두 유진규가 연기한다. 무대의 표현이 영화에서는 또 다른 인물의 존재로 이어졌다.
이때 중요한 것은 라이터의 불빛처럼 작고 구체적인 변화다. 불이 켜졌는지 꺼졌는지에 따라 같은 사람을 다르게 보게 된다. 눈앞의 몸은 하나인데 그 몸이 드러내는 사람은 달라진다. 공연자의 솜씨를 감상하던 시선에 이제 누가 나타났는지 살피는 궁금증이 더해진다.
촬영에서는 그 불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울이라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았고 입김 때문에 꺼지기도 했다. 장권호는 중요한 장면이어서 편집에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몸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영화에 옮기려면 몸뿐 아니라 불과 추위, 촬영된 조각들의 연결도 다뤄야 했다. 즉흥적인 공연을 담는 일에도 나중에 골라 붙이는 세심한 작업이 필요했다.
〈똥통〉에서는 다른 예술가들과 배우가 한 여정에 들어온다. 차지원이 맡은 수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허구의 인물이다. 차지원은 자신이 아는 배우의 감각을 가져와 수나를 이해하려 했다.
그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은 연기를 끊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권호는 인물로서 왜 이 작품에 있는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분명하다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차지원은 회고했다. 촬영 중의 지시는 적었지만 배우가 붙잡아야 할 기준은 있었다.
이 조건에서는 대사 한 줄을 잘 마치는 것만으로 장면이 끝나지 않는다. 상대가 말을 하고 움직이는 동안에도 인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말이 없는 시간이 연기를 이어가는 시간이 된다. 관객도 누가 다음 대사를 할지 기다리다가, 말하지 않는 사람이 그 자리에 어떻게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그렇게 보면 길게 이어지는 장면의 재미는 길이 자체보다 함께 있는 사람들 사이에 생긴다. 말하는 사람이 주의를 끌어도 옆 사람은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시선을 옮기면 같은 순간에 다른 반응을 볼 수 있다. 장권호가 배우에게 허용한 시간이 관객에게는 한 장면 안에서 여러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요선〉의 야외 카페 장면에서도 준비와 변경은 함께 있었다. 출연하기로 한 팀이 오지 못하게 되자 촬영 전날 구성을 새로 짜야 했다. 카페 영업시간 때문에 촬영 시간도 제한되었다. 음악을 비롯한 많은 부분을 즉흥적으로 진행했고, 감독은 결과를 만족스럽게 기억했다. 즉흥은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약속한 조건이 달라진 뒤 새로 구성한 방법이기도 했다.
〈빛과 몸〉에서 장권호와 차지원은 다시 함께했다. 이번에는 한나와 아다다라는 두 인물이 배우에게 주어졌다. 차지원은 감독의 생각은 명확하지만 현장에서 설명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똥통〉에 들어갈 때 자세한 설명을 듣고 생긴 믿음은 다음 협업에서도 중요한 조건이었다.
차지원은 차와 시나리오를 들고 집 뒤 동산에 올라가 읽기를 거듭했다. 인물이 자신에게 와닿는 순간을 기다리는 준비였다. 이것은 배우가 고른 방법이었다. 차지원에게 독서와 자신의 경험은 배역을 탐구하는 방법이었다.
그가 두 배역을 나누며 고민한 것은 에너지의 차이였다. 같은 힘과 분위기로 두 사람을 연기하면 영화가 늘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다다에게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제어하기 어려운 힘을 찾으려 했다. 같은 얼굴이 등장해도 관객이 서로 다른 사람의 기운을 느끼도록 준비한 것이다.
한 배우가 두 사람을 맡는다는 점에서는 〈요선〉과 나란히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마임의 불빛이 인물을 나누는 발상을 주었고, 다른 쪽에서는 배우가 두 배역의 힘을 다르게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같은 몸을 영화에 두 번 놓는다고 같은 결과가 생기지는 않는다. 장권호의 영화에 들어온 동료들은 각자 가진 표현으로 그 차이를 만들어낸다.
◆ 말하는 사람 옆에 남아 있는 사람 — 〈똥통〉의 길게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대사하는 인물 곁도 살펴보자. 한 사람에게 집중할 때 지나쳤던 다른 사람의 반응이 보일 수 있다. 장면이 계속되는 동안 관객도 시선을 옮겨가며 여러 인물을 알아갈 여유를 얻는다.
◆ 길에서 공연으로 옮겨가는 몸 — 〈똥통〉에서 사람을 찾아 이동하는 시간과 공연이 펼쳐지는 시간을 비교해보자. 누군가를 만나러 가던 사람들의 몸이 이제 표현 자체로 주의를 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기다리던 관심이 눈앞의 움직임을 보는 쪽으로 바뀐다.
◆ 라이터 불빛이 바꾸는 한 사람 — 〈요선〉에서 불이 켜지고 꺼질 때 유진규의 몸이 어떻게 다른 인물로 다가오는지 살펴보자. 큰 외양의 변화보다 작은 빛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면, 마임의 표현이 영화의 허구로 이어지는 순간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 같은 얼굴에 실리는 다른 힘 — 〈빛과 몸〉의 한나와 아다다를 보며 어느 쪽의 기운이 더 강하게 밀려오는지 느껴보자.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도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이 있다. 외모의 닮음과 인물의 차이가 동시에 보이면 두 사람의 관계를 따라가는 감각도 달라진다.
〈똥통〉(2023), 장권호 — 실제 예술가들과 허구의 인물이 함께 움직이는 영화다. 연기를 끊지 않고 이어갈 때 대사 사이에 어떤 시간이 생기는지, 그 시간에 누구에게 눈이 가는지 살펴볼 수 있다.
〈빛과 몸〉(2024), 장권호 — 같은 배우가 서로 다른 두 인물을 맡는다. 〈똥통〉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 사이의 반응을 보았다면, 여기서는 한 배우가 인물의 차이를 만드는 방식에 집중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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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으며, 무비랩이 검토·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