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싸우면 철학을 시키는 학교가 있다. 벨파스트의 홀리 크로스 남자초등학교에서는 다툼이 벌어진 뒤 교장실 앞의 ‘철학 보드’를 사용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했어야…
아이들이 싸우면 철학을 시키는 학교가 있다. 벨파스트의 홀리 크로스 남자초등학교에서는 다툼이 벌어진 뒤 교장실 앞의 ‘철학 보드’를 사용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이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자리다. 벌을 받으러 온 아이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몫이 생긴다. 교장 케빈 맥아리비는 싸움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 하나로 아이와의 대화를 끝내지도 않는다.
〈꼬마 철학자들〉의 아이들은 네 살에서 열한 살 사이다. 이들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꺼낸다는 것부터 신기할 수 있다. 하지만 네사 니 치아나인과 데클란 맥그래스 감독이 찾아낸 재미는 어린이가 어려운 말을 하는 모습보다 그 말을 실제로 써먹는 과정에 있다. 화를 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전의 자기 생각을 다시 살피는 아이들. 철학 시간에 배운 것이 쉬는 시간의 싸움에도 도움이 될까. 학교의 하루는 그 질문을 거듭 시험한다.
아이들이 서로의 의견을 듣고 나면 케빈은 생각이 달라진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손을 들어 맞히는 수업과는 순서가 다르다.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끝까지 같은 말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의 판단을 고쳐도 된다. 틀렸다는 사실을 들키는 일이 무서우면 어려워질 연습이다.
이 수업에서 듣기는 잠자코 제 차례를 기다리는 일보다 바쁘다. 다른 아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자기 생각과 비교할 수 있다. 의견을 바꾸었다면 방금 누군가의 말이 자신에게 닿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토론을 볼 때 누가 가장 유창한지에만 주목하면 이 움직임을 놓치기 쉽다. 처음의 말을 끝까지 밀어붙인 아이보다 도중에 망설인 아이가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싸운 뒤 사용하는 철학 보드에는 그 연습이 더 까다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까 벌어진 일을 설명하려면 화가 났다는 마음과 자신이 한 행동을 함께 살펴야 한다. 상대 때문에 화가 났다는 말만으로는 다음에 어떻게 할지까지 답할 수 없다. 케빈이 묻는 것은 이미 끝난 다툼의 승패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가 다시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한다. 훈계를 듣는 동안 억울함만 삼키는 대신, 자신의 다음 행동에 관여할 여지를 주는 셈이다.
이 학교가 있는 아도인은 북아일랜드 분쟁의 상처가 남은 동네다. 높은 벽과 철망, 정치적인 벽화는 아이들이 철학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학교 밖에 있다. 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고 해서 그 역사와 무관한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누구를 경계하고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아이들은 수업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배우며 자란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라는 케빈의 주문에는 어려운 대목이 있다. 부모나 가까운 어른이 해준 말도 따져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만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집에 가서는 어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질문하는 연습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영화는 부모에게까지 이어지는 철학 교육을 따라간다. 아이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말해온 어른이라면,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 아이 앞에서 자신의 태도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케빈이 폭력을 모르는 안전한 곳에서 온 사람은 아니다. 그 역시 벨파스트에서 자랐고, 젊은 시절 주먹에 의지했던 과거가 있다. 아이에게 화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그의 현재에는 자신이 달라져야 했던 경험이 겹친다. 이 사실은 교장의 모든 말을 옳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도 하지 못했던 일을 어린이에게 손쉽게 명령하는 것과, 배워온 방법을 아이에게 건네는 것 사이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 속 케빈은 철학책 속에만 머무는 엄숙한 선생님과도 거리가 있다. 운동을 좋아하고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열광하는 사람이다. 교장실에는 엘비스와 교황의 사진이 함께 놓인다. 남다른 취향과 열의가 한 사람 안에 뒤섞인 모습이, 그를 교육 원칙의 대변인으로만 보는 일을 막아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에게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고 바꾸어온 생활이 있다.
카메라는 교장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학교를 소개하지 않는다. 교실과 복도에서 아이들 사이에 생기는 일을 따라간다. 니 치아나인 감독은 촬영하지 않는 날에도 학교에 머물며 아이들과 교직원이 자신들에게 익숙해질 시간을 쌓았다고 했다. 학교의 행사를 많이 찍는 것과 학교의 생활을 아는 것은 다르다. 준비한 발표가 끝난 뒤에도 누군가는 화가 나고, 누군가는 선생님에게 할 말이 남는다.
그렇기에 영화의 관찰은 유명한 교장 한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지 감탄하는 데서 멈추지 않을 때 더 흥미로워진다. 아이가 말을 꺼낼 수 있으려면 듣는 어른이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을 학교가 내주어야 한다. 케빈 곁의 교사들과 학생 돌봄을 맡은 잰 마리 릴의 존재도 함께 볼 이유다. 철학 보드라는 도구만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같은 대화가 저절로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다. 질문을 반복할 여유와 아이를 대하는 태도까지 학교의 일에 포함되어 있다.
감독들은 그 생활 속에 동네의 역사를 담는 방법도 고민했다. 국제 관객에게 필요한 설명을 별도의 해설로 넣는 대신, 케빈에게 아도인의 주요 사건을 역사 수업에서 다뤄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목을 알고 보면 교실은 바깥의 분쟁을 피하는 곳인 동시에, 그 분쟁을 다시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겪은 일을 듣되, 다음 세대가 같은 적대감을 이어받아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긴다.
철학 보드를 한 번 사용했다고 다시는 싸우지 않는다면 선생님의 일은 훨씬 쉬울 것이다. 영화가 담는 학교는 가난과 지역의 폭력이 사라진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돌아갈 집과 동네도 계속 존재한다. 좋은 교육의 힘에 기대면서도 한 학교에 모든 해결을 맡길 수는 없는 이유다. 우리가 보는 토론 한 차례가 이 아이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크게 달라졌다는 결론을 서두르지 않을 때 오늘의 대화가 눈에 들어온다. 화가 나서 찾아온 아이를 앉혀놓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묻는 일. 답을 기다리고, 다른 행동이 가능했는지 함께 살피는 일. 결과를 빨리 보고 싶은 어른에게는 번거롭게 느껴질 만큼 천천히 진행되는 교육이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들을 사람이 있다는 경험은 그 시간을 건너뛰어서는 얻기 어렵다.
〈꼬마 철학자들〉을 보고 나면 아이가 얼마나 영리한 대답을 하는지보다 어른이 그 대답을 어떻게 듣는지 궁금해진다. 말할 기회를 주었다면 예상하지 못한 말도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도 좋다고 가르쳤다면 어른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 교장실 앞 보드에 서는 사람은 아이들이지만, 그들 곁에서 기다리는 어른들에게도 끝나지 않은 공부가 있다.
◆ 다툼 뒤의 철학 보드 — 사건을 설명하는 말과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는 말을 구별해 들어보자. 잘못한 일을 인정시키는 데서 대화를 끝낼 때와 달리, 아이가 앞으로의 행동을 궁리할 시간이 생긴다.
◆ 토론이 끝난 뒤의 질문 — 누가 처음부터 멋진 답을 했는지보다, 다른 의견을 들은 뒤 생각이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의견 변경을 실패로 취급하지 않는 교실의 규칙이 아이들의 대화에 어떤 여유를 주는지 볼 수 있다.
◆ 교장실과 동네의 벽 — 교장실의 엘비스 사진과 학교를 둘러싼 벽화에 눈길을 주자. 같은 동네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물과 이미지가 익숙한지 드러난다. 학교 밖 풍경을 단순한 배경으로 지나치지 않게 된다.
◆ 케빈 곁의 교직원들 — 교장에게 시선을 모으면서도 다른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시간을 함께 보자. 눈에 띄는 교육법 뒤에서 듣고 돌보는 일이 누군가의 일상적인 노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싱 스트리트〉 (2016, 존 카니) — 학교와 가정에서 위축된 더블린의 소년이 밴드를 만들며 친구들과 자기 노래를 찾아간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기까지 곁의 사람들이 어떻게 자리를 내주는지 이어서 볼 만하다.
◆ 〈그날은 오리라〉 (2017, 허안화) — 일제강점기 홍콩의 교사가 저항 활동에 가담하는 극영화다. 이 영화의 교사에게는 점령 아래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닥친다. 서로 다른 시대의 학교를 나란히 보면, 교문 밖의 폭력과 가르치는 사람의 책임이 어떻게 얽히는지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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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