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하던 두 사람에게 칼을 든 남자가 달려든다. 〈청춘시련〉의 밍량(임백굉)은 유팡(이목)을 공격한 뒤 그가 자신의 전 애인이라고 주장한다. 그 말을 듣고 나면 사건에 앞서 어…
데이트하던 두 사람에게 칼을 든 남자가 달려든다. 〈청춘시련〉의 밍량(임백굉)은 유팡(이목)을 공격한 뒤 그가 자신의 전 애인이라고 주장한다. 그 말을 듣고 나면 사건에 앞서 어떤 연애가 있었고 왜 헤어졌는지부터 궁금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밍량이 붙인 관계의 이름이다. 유팡도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렇게 말할지는 아직 듣지 못했다.
이 영화는 누구의 말부터 들었느냐에 따라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한 남자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모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드러낸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 새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칼을 휘두른 남자가 그 모든 이야기를 대신 말하게 둘 수는 없다.
유팡에게는 샤오장(임철희)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있다. 꽃을 받고 거리를 걷고, 함께할 앞날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에 마음을 열어가는 연애다. 그런데 공공장소에서 벌어진 공격이 그 시간을 끊어버린다. 조금 전까지 둘의 만남을 따라가던 관객도 갑자기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를 마주한 듯 당황하게 된다.
그 당혹감에는 앞서 로맨스를 보았던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사건 소식만 들었다면 칼을 든 남자와 피해자를 먼저 구별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유팡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 먼저 알게 한다. 공격은 사건의 시작인 동시에, 이미 시작된 누군가의 하루를 파괴하는 일이다.
이후 영화는 사건 앞뒤로 시간을 옮기고, 인물을 바꾸어가며 관계를 다시 살핀다. 이미 본 장면이 다른 사람의 사정과 연결되면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일이 중요해진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것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어떤 관계라고 생각했는지 확인하는 쪽으로 궁금증이 커진다.
연출을 함께 맡은 호위딩과 치신 후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한 사건 주변에 놓는다. 그 덕분에 밍량의 공격을 따라가면서도 화면 밖으로 밀려나기 쉬운 사람들이 되돌아온다. 사건을 거슬러갈수록 인물은 단순해지지 않는다. 각자의 생활을 알게 되면서 한 줄의 사건 설명으로는 담기지 않는 부분이 늘어난다.
밍량은 성인 영상에서 보았던 모니카(진정니)를 현실에서 알아본다. 그에게는 낯익은 얼굴이지만 모니카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밍량은 그를 뒤따라가며 사생활까지 엿보기 시작한다. 화면으로 한 사람을 보았던 경험이, 그 사람의 생활을 몰래 지켜보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때 밍량이 모니카에게 느끼는 친숙함은 혼자 만들어온 것이다. 모니카가 그에게 자기 일상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 그런데도 밍량은 현실의 모니카에게 다가가려 한다. 서로 말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과정이 생략된 채, 한쪽의 관심만으로 이미 관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불편하다.
반면 모니카는 배우로 일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는데, 과거의 영상이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 현재의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대할지까지 걱정해야 한다. 밍량에게는 보고 싶은 얼굴을 현실에서 발견한 일이지만, 모니카에게는 남이 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다. 두 사람에게 같은 영상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앞에서 들었던 ‘전 애인’이라는 말도 이런 행동을 본 뒤에는 달리 들린다. 밍량이 붙인 이름을 따라 관계를 정리하기보다, 상대와 실제로 어떤 말을 나누고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알고 싶어진다. 게임이나 인터넷이라는 큰 원인 하나를 골라 사건을 설명하기 전에, 영화는 한쪽의 관심이 다른 쪽의 생활을 침범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샤오장이 바라는 미래에는 자기 가게와 유팡이 있다. 유팡은 연기를 공부하며 누군가와 가까워지려 하고, 모니카도 배우로 새 기회를 얻고 싶어 한다. 이들의 계획을 알게 되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기억하던 이름에 다른 관심이 붙는다. 어떤 일을 하며 누구와 살아가려 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인물을 바꾸어가며 시간을 되짚는 구성이 단순한 수사 과정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사건의 원인을 찾는 데는 필요 없어 보였던 소망이 그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모니카의 배우 생활에 관심이 생겼다면 밍량이 그를 보았던 방식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처음의 데이트를 떠올려보면 잔혹한 장면 이전에 로맨스가 있었던 이유도 다르게 다가온다. 유팡이 위협받는 모습을 보고 걱정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누리려 했던 시간까지 아까워진다. 공격당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이어졌을 평범한 만남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공격 장면을 아는 채로 일상을 따라가니 다정한 순간에도 마음을 놓기 어렵다. 그래도 영화가 그 시간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좋다. 밍량이 붙인 ‘전 애인’이라는 이름을 지나, 유팡이 누구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었는지 기억하게 된다. 사건을 더 잘 이해하려고 과거로 돌아갔는데, 어느새 그들이 그 시간을 조금 더 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 공격 이전의 데이트 — 사건이 벌어지기 전 유팡과 샤오장이 보내는 시간에 주목해보자.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뒤 공격을 마주하면 피해 사실 이상의 상실이 느껴진다. 이어질 수 있었던 하루가 끊겼다는 점에서 로맨스와 스릴러가 맞닿는다.
◆ 인물이 바뀔 때 달라지는 정보 — 영화가 시간을 되돌리거나 다른 인물을 따라갈 때 이미 본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자. 새 사실을 알아내는 것뿐 아니라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는지도 중요하다. 한 사람의 설명에서 빠져 있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 모니카의 이미지와 현재 — 다른 사람들이 모니카를 판단하는 근거와 모니카 자신이 앞으로 바라는 것을 구분해보자. 과거의 영상이 한 사람의 전부처럼 취급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살필 수 있다. 화면으로 보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충분히 안다는 뜻은 아니다.
◆ 밍량의 말에서 한 발 떨어지기 — 밍량이 관계에 붙이는 이름을 다른 인물들도 받아들이는지 주의해보자. 그가 믿는 내용을 영화가 확인해준 사실과 구별하면 여러 시점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커진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맺은 관계에는 무엇이 빠져 있는지도 보인다.
◆ 〈버닝〉 (2018, 이창동) — 한 청년의 의심을 따라가면서 직접 확인한 일과 추측한 일을 구분하게 한다. 인물이 누군가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 사람에 관한 설명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남자들의 의심과 경쟁 사이에서 다른 삶을 바라는 사람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게 된다.
◆ 〈파주〉 (2009, 박찬옥) —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이전에 몰랐던 사실이 생겼을 때 이미 함께한 시간은 어떻게 기억되는지 살필 수 있다. 사건에 관한 정보와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 꼭 같은 속도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두 영화의 긴장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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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