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변호사라고,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 MovieLAB LAB

돈이 되지 않아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맡는 변호사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불만에는 그만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바람난 가족〉의 영작(황정민)은 남의 사정을 이해할 …

좋은 변호사라고,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 MovieLAB LAB

돈이 되지 않아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맡는 변호사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아내의 불만에는 그만큼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바람난 가족〉의 영작(황정민)은 남의 사정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 이해를 누구에게 얼마나 쓸 것인지가 문제다. 아내 호정(문소리)이 부부 사이의 만족스럽지 못한 관계를 말할 때, 영작은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변하는 것 아니냐며 넘긴다.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 자기 말을 좀 들어달라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대답은 아니다.

제목대로 이 집에는 혼외 관계가 여럿 있다. 임상수 감독은 누가 먼저 바람을 피웠고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따지기 전에, 이들이 부부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내온 모습을 들여다본다. 한집에 살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은 모를 수 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면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말을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영화가 불편한 것은 파격적인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가족 사이에 흔히 넘겨버리는 말에도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가 섞여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에는 왜 변론이 붙을까

영작에게 정의감이 있다는 설정은 위선을 폭로하기 위한 장식으로만 보기 아깝다. 그가 밖에서 하는 일이 전부 가짜 선행이라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원래 나쁜 사람이 집에서도 나쁘게 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도 다정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공적인 자리에서 쌓은 신뢰를 집 안의 면책 사유로 가져올 수는 없는 것이다.

영작이 호정의 말을 대하는 방식에는 이 어긋남이 드러난다. 배우자의 서운함을 들으면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치로 대답해버리면 구체적인 불만은 말할 자리를 잃는다.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맞아도, 그러니 지금의 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결론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호정은 인생의 원리를 몰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감독은 이 작품을 구상하며 이전 세대와 다른 교육을 받은 또래 남성들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데 관심을 두었다고 밝혔다. 평등한 관계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 생활을 바꾸는 일 앞에서는 주저할 수 있다. 영화의 풍자는 이 가까운 거리에서 생긴다. 영작이 아는 옳은 말이 많을수록, 그 말을 실제로 듣고 싶은 호정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더 초라해 보인다.

황정민의 영작을 보며 웃다가도 편해지기 어려운 이유다. 그는 자신을 노골적인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법한 사람이다. 괜찮은 가장이고 싶고, 괜찮은 변호사로 인정받고도 싶다. 문제는 그 자기평가에 가족이 동의하지 않을 때다. 자기 의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상대가 받은 상처까지 정리하려 하면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왜 아직 화가 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되풀이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은 쪽을 바라본다

호정의 시어머니 병한(윤여정)은 자기에게 찾아온 사랑을 말한다. 남편 창근(김인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애인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지만, 며느리는 그 마음을 지지한다. 집 안의 두 여자가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마주 보는 대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말하는 사람으로 만나는 대목이다.

병한은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온 시간이 길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윤여정이 연기하는 이 인물은 자기 욕망을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처럼 다루지 않는다. 그 태도가 가족을 당황하게 만든다. 가족의 일이라 누구나 의견을 보탤 수는 있지만, 그 의견이 병한의 남은 생활을 대신 결정할 권한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호정의 지지는 그래서 단순한 고부 사이의 화해와 다르게 느껴진다. 병한이 자기 삶을 말할 수 있다면 호정에게도 같은 자리가 필요하다. 누가 더 오래 참고 살았는지 겨루는 대신, 더는 그렇게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들어주는 관계가 생긴다. 가족 안에서 힘이 있는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는 방식과는 다른 대화다.

다만 호정의 답답함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가 하는 선택을 모두 자유의 이름으로 응원할 수는 없다. 호정이 관계를 맺는 지운(봉태규)은 고등학생이다. 어른과 미성년자 사이의 나이와 힘의 차이는 남편에게서 느낀 소외와 별도로 보아야 한다. 영화가 관습적인 아내 역할을 흔들 때 느끼는 해방감과, 그 관계에서 남는 불편함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인물의 사정을 이해하는 일이 모든 행동에 동의하는 일이 될 필요는 없다.

웃고 있는 동안에도, 아이는 그 집에 있다

영작과 호정이 입양한 아들 수인(장준영)은 어른들의 말다툼 바깥에 놓인 듯하다가도, 그 집의 한 사람으로 계속 남는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이 부모가 내린 모든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바꾸어주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자기 사정에 몰두할 때 아이에게는 그 사정을 이해할 말이나 결정에 참여할 힘이 충분하지 않다.

영화는 부모 세대의 삶도 함께 보여준다. 창근에게는 전쟁 때 가족을 잃은 기억이 있고, 그 뒤의 생활에는 술이 깊이 들어와 있다. 이 사정이 창근의 행동을 전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 겪은 일이 그 사람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함께 사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영작의 집 역시 어제 갑자기 생긴 가족은 아니다.

임상수는 이 영화를 이야기하며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주는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애쓴다는 말과 실제로 전해지는 생활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재산이나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만이 생기면 상대의 말을 듣는지, 자기 잘못을 설명으로 덮으려 하는지,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지도 아이가 함께 사는 집의 풍경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영화는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는다. 감독은 일상 같은 느낌을 내려고 촬영의 많은 부분을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찍었고, 어두운 소재에 유머를 섞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말과 불쑥 드러나는 속마음 때문에 웃을 순간이 생긴다. 그러다 같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만나면, 조금 전의 웃음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웃겼다는 이유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람들이다.

〈바람난 가족〉을 다시 보면 이 가족이 얼마나 파격적인지보다, 누가 자기 뜻을 말했을 때 누가 듣지 않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영작의 말을 반박하는 호정, 병한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며느리, 어른들의 사정에 둘러싸인 아이. 같은 집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에게 똑같은 발언권이 생기지는 않는다. 가족을 지키자는 말이 나올 때에도, 지금의 생활을 그대로 두면 누구는 편하고 누구는 계속 참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좋은 변호사와 좋은 남편을 한 사람 안에서 나란히 보려면, 밖에서의 평판만으로는 부족하다. 호정이 말을 꺼낼 때 영작이 어떻게 대답하는지까지 들어야 한다. 영화가 가족의 체면을 거칠게 벗기는 동안 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그동안 그 체면 때문에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불만이다.

감상 포인트

◆ 그럴듯한 대답으로 끝나는 대화 — 호정이 불만을 말할 때 영작이 그 내용에 답하는지, 일반적인 말로 넘기는지 들어보자. 옳은 말을 알고 있는 것과 상대의 사정을 듣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대화가 끝난 뒤 누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 병한의 고백을 듣는 두 사람 — 같은 말을 듣는 아들과 며느리의 반응을 비교해보자. 어머니와 시어머니라는 역할에 기대하는 모습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 보인다. 병한 자신의 바람을 독립된 한 사람의 말로 들을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 호정을 이해하는 마음의 범위 — 호정이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소외와 지운과의 관계를 구별해보자. 앞의 사정이 뒤의 선택을 모두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인물에게 공감하면서도 남아 있는 문제를 보는 것이 이 영화의 불편함을 더 정확히 읽는 방법이다.

◆ 아이에게 남을 집의 모습 — 어른들이 자기 이유를 설명할 때 수인의 처지도 떠올려보자.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아이가 안전하게 지낼 조건은 저절로 일치하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의 책임을 어른들의 감정 바깥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관련 작품

◆ 〈와일드라이프〉 (2018, 폴 다노) — 부모의 관계가 무너지는 시간을 아들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자기 삶을 바꾸려는 어른들의 행동이 아이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이어 살필 수 있다. 어른의 사연을 이해한 뒤에도 아이에게 설명되지 않은 일이 남는다는 점에서 가까운 질문을 던진다.

◆ 〈당신의 부탁〉 (2018, 이동은) — 가족이 될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정해진 역할을 요구하기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비교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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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