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 하는 말을 끝까지 믿지는 않는다 | MovieLAB LAB

임상수 감독은 〈그때 그사람들〉의 앞뒤 내레이션을 여성들에게 맡겼다. 영화의 대부분을 움직이는 것은 군사문화에 익숙한 남자들이다. 명령하고 복종하고 총을 드는 사람들 사이에, 그…

인물이 하는 말을 끝까지 믿지는 않는다 | MovieLAB LAB

임상수 감독은 〈그때 그사람들〉의 앞뒤 내레이션을 여성들에게 맡겼다. 영화의 대부분을 움직이는 것은 군사문화에 익숙한 남자들이다. 명령하고 복종하고 총을 드는 사람들 사이에, 그들의 말로만 사건을 정리하지 않는 목소리를 둔 것이다. 인물에게 화면을 내주면서도 마지막 설명까지 전부 맡기지는 않는 선택이다.

임상수의 영화에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안심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한다고 믿거나, 가족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가까운 이에게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감독은 인물이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듣고, 그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도 본다. 그러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면 꽤 불편한 웃음이 나온다. 그 웃음을 따라가면 도발적인 소재를 고르는 감독에게서 조금 더 구체적인 관심을 발견할 수 있다.

권력자의 사정과 영화를 보는 자리는 다르다

〈그때 그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의 대통령 피살 사건을 다룬다. 임상수는 당시의 기록과 서로 다른 당사자들의 진술을 살폈다. 그는 회고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화면 속 모든 말과 행동을 실제 있었던 일의 확정 기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감독이 선택해 만든 인물들이 그 안에서 움직인다.

김 부장(백윤식)은 일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주 과장(한석규)은 명령을 수행한다. 결정하는 사람과 그것을 실행할 사람은 같은 밤에 있어도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영화에서 무기가 뜻대로 작동하지 않는 순간은 그 간격을 더 크게 보이게 한다. 큰 결심을 했다고 손에 든 도구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계획에 맞춰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임상수가 남성 중심의 이야기 앞뒤에 여성의 목소리를 둔 선택도 이 틈과 연결된다. 인물들이 자기 행동에 부여한 무게를 관객이 그대로 이어받을 필요는 없다. 그들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순간을 다른 자리에서 돌아보게 된다. 개인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이해하는 일과 그가 내세운 명분을 인정하는 일은 나뉠 수 있다. 감독은 두 판단을 서둘러 하나로 합치지 않는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집까지 따라간다

임상수는 〈바람난 가족〉을 만들 때 말처럼 살지 못하는 사람들과 깨지는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의 영작(황정민)은 변호사다. 그러나 사회에서 하는 일만으로 그가 집에서 어떤 남편인지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호정(문소리)과의 관계에는 따로 살펴야 할 불만과 선택이 있다.

감독은 어두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넣고 경쾌하게 진행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인물들의 불일치를 엄숙한 고발로만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말은 그럴듯한데 행동은 초라한 사람을 보고 웃는 동안, 그 사람이 가까운 이에게 미치는 영향도 함께 보인다. 우스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책임까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이런 관심은 집 안과 권력의 공간을 가로질러 이어진다. 다만 가족의 다툼과 역사적 폭력을 똑같은 일로 묶을 수는 없다. 두 영화에서 비교할 것은 사건의 크기보다 인물을 보는 방법이다. 그가 가진 직함이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다른 사람과 부딪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본다. 임상수의 유머는 그 관찰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품위 있는 말로 덮어두려 했던 면이 뜻밖에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뒷좌석의 두 남성 가운데 한 사람이 권총을 들고 있다

미리 그리지 않은 화면도 함께 준비한다

임상수는 〈오래된 정원〉을 촬영할 무렵 김우형 촬영감독 등과 이미지로 된 스토리보드 없이 작업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현장에 도착해서 모든 것을 처음 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촬영 장소를 정한 뒤에도 여러 번 찾아갔고,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각 부서와 공유했다. 인원을 많이 동원하는 장면은 문서로 정리했다고 덧붙였다.

이 방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준비와 여지를 함께 두려는 태도다. 장소에 가면 책상에서 각본을 쓸 때 예상하지 못한 조건이 생긴다. 감독은 그 변수를 곧장 방해물로 여기지 않았다. 계획을 나누되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분까지 미리 닫아놓지는 않으려 했다. 미리 그린 그림이 없다는 사실보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으며 무엇을 함께 생각했는지가 중요하다.

임상수의 인물들도 미리 정해진 설명 하나에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촬영 방식이 곧바로 복잡한 인물을 만들어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감독이 이미 아는 것만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은 닮아 있다. 화면에서도 사람의 다음 행동이 그가 앞서 한 말과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 어긋남을 알아보는 재미를 남겨둔다.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도 반대할 수 있다

〈오래된 정원〉에서 임상수는 윤희(염정아)를 어른스럽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현우(지진희)는 도피 중 윤희를 만나지만 두 사람에게 함께 사는 시간이 오래 주어지지는 않는다. 역사와 신념이 중요한 이야기 안에서 감독은 윤희가 자기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임상수는 누군가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과 그 선택을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타인의 결심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함께할 시간을 잃는 사람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윤희를 신념 있는 남성을 기다리는 역할로만 생각하면 그 차이를 지나치게 된다. 그녀에게도 그 삶에 동의하거나 반대할 자리가 있어야 한다.

이 인물을 만들며 감독은 염정아의 도시적이고 날카로운 느낌을 윤희와 어떻게 연결할지 흥미롭다고 했다. 부드럽게 지켜보는 연인의 모습만 미리 정해두지 않은 캐스팅이다. 관객도 윤희의 말을 들을 때 현우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만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된다. 그녀가 자신의 시간에 대해 무엇을 원하는지도 들을 수 있다.

〈그때 그사람들〉의 여성 내레이션과 윤희의 말은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하나는 남자들이 벌인 일을 바깥에서 돌아보게 하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다른 뜻을 말한다. 그러나 둘을 곁에 놓으면 임상수의 시선이 어느 한 인물의 명분에 오래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 보인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나서도, 그와 함께 사는 사람의 말을 다시 들을 차례가 남아 있다.

감상 포인트

◆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받는 사람 — 〈그때 그사람들〉에서 결심과 실행을 따로 보자. 한 인물의 큰 뜻만 따라갈 때 놓칠 수 있는 주변 사람의 당혹감이 드러난다.

◆ 앞뒤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 — 영화의 중심에서 움직였던 남자들과 내레이션의 거리를 생각해보자. 행동한 사람이 자기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자리가 생긴다.

◆ 웃고 난 뒤에도 남는 행동 — 〈바람난 가족〉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대목을 살펴보자. 인물이 우습게 보여도 가까운 사람에게 끼친 영향은 남는다는 점이 웃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 윤희가 원하는 삶 — 〈오래된 정원〉에서 윤희의 말을 현우에 대한 평가로만 듣지 말아보자. 상대의 결심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할 시간을 바라는 마음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살필 수 있다.

관련 작품

◆ 〈그때 그사람들〉 (2005, 임상수) — 역사적 사건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명분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격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인물 묘사와 역사 사실의 확정을 구분하며, 주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 〈오래된 정원〉 (2007, 임상수) — 사랑하는 사람의 신념에 공감해도 같은 선택을 바라지는 않을 수 있다. 윤희를 중심으로 보면 임상수가 인물을 하나의 명분으로 설명하지 않으려는 관심을 다른 정서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