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 왕빙이 정신병원 안에서 잠들어 있다. 주변 사람들은 앉아 있거나 움직이고, 화면은 그 모습을 느린 속도로 보여준다. 〈천당의 밤과 안개〉를 만든 정성일 감독은 왕…
다큐멘터리 감독 왕빙이 정신병원 안에서 잠들어 있다. 주변 사람들은 앉아 있거나 움직이고, 화면은 그 모습을 느린 속도로 보여준다. 〈천당의 밤과 안개〉를 만든 정성일 감독은 왕빙의 촬영 현장을 따라갔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가 카메라를 들고 일하는 모습만큼, 이렇게 일을 멈춘 모습도 남아 있다.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는 감독의 하루를 다른 감독이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왕빙은 중국의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긴 시간에 걸쳐 기록해온 감독이다. 정성일은 그가 어떻게 사람 곁에 머무르며 영화를 만드는지 궁금했다. 2012년 겨울, 중국으로 건너가 시작한 동행은 거의 네 시간 길이의 영화가 되었다. 이름난 감독의 비결을 간단히 배워오는 방문은 아니었다. 만나러 가는 길과 촬영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지나야 비로소 카메라를 들 수 있었다.
자동차가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길과 산, 터널이 이어진다. 다음 장소에 도착했다는 사실만 알려주려면 훨씬 짧아도 될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동의 시간을 오래 남긴다.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가, 어느새 계속 바뀌는 빛과 풍경을 보고 있다. 감독이 영화를 찍는다는 말 뒤에는 이런 거리를 실제로 건너가는 일이 있다.
이동은 정해진 촬영 일정의 빈틈만 채우지 않는다. 정성일이 찾아간 왕빙은 여러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한쪽의 촬영이 막히면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고, 그동안에도 촬영을 위한 준비는 이어졌다. 한 편을 시작해서 끝내는 순서에 익숙한 방문자에게는 낯선 방식이었다. 영화가 오가는 장소들이 하나의 단순한 제작 일정으로 정리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객도 같은 불확실함을 조금 겪는다. 감독이 도착했다고 사람들이 곧바로 촬영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소에는 그곳의 사정이 있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생활이 있다. 영화를 만들러 왔다는 목적만으로 모든 일이 그 목적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길을 따라가는 화면에는 왕빙의 끈기뿐 아니라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도 담겨 있다.
왕빙은 사람들과 다정하게 말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촬영을 이어간다. 대화가 끝나고 촬영이 시작된다고 또렷하게 나누기 어려울 만큼 두 행동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카메라를 든 순간에도 그는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 곁에 있다. 정성일은 그 과정을 함께 찍어, 왕빙이 무엇을 기록하는지뿐 아니라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도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이 카메라를 향해 말할 때 우리는 대개 그 말에 집중한다. 여기서는 듣고 있는 왕빙의 몸도 함께 보인다. 대화를 이어가던 사이에 촬영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 얼굴 하나를 담는 데도 그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한쪽이 자기 이야기를 내어주고 다른 쪽이 그것을 받아 적는 식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 만남이다.
앞부분에서 왕빙이 자기 작업을 설명했다면, 현장에서는 그가 사람을 찾아가고 말을 듣는 행동이 이어진다. 촬영에 관한 생각이 실제 하루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볼 수 있다. 멋진 장면을 얻는 순간만 기다렸다면 지나쳤을 대화도, 이 영화에서는 감독의 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된다.
촬영을 오래 한다고 해서 더 많은 장면을 얻는 일만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성일은 병원에서 왕빙을 찍다가 자신의 촬영이 그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카메라 두 대만 허락된 현장이었고, 촬영하는 사람을 다시 뒤에서 찍는 모습에 병원 쪽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는 그때 현장을 떠나기로 했다.
이 제작 일화는 다큐멘터리의 성과를 다른 쪽에서도 생각하게 한다. 현장에 오래 있었다면 더 흥미로운 장면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왕빙의 작업을 보고 싶어서 온 사람이 그 작업을 어렵게 만들어서는 곤란했다. 자신의 영화에 필요한 것과 상대의 영화에 필요한 것이 어긋났을 때, 정성일은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완성된 화면에는 찍힌 것만 남으므로 찍지 않기로 한 결정은 알아채기 어렵다. 그렇지만 한 감독의 현장을 다른 감독이 바라보는 이 영화에서는 그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왕빙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 왕빙을 따라간 촬영진이 같은 장소에 있다. 누구도 투명한 구경꾼은 아니다. 카메라가 한 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
235분 동안 영화는 이동과 기다림을 몇 개의 요점으로 대신하지 않는다. 내레이션으로 장면의 뜻을 계속 풀어주는 방식도 택하지 않았다. 관객이 왕빙을 보고, 그 주변을 보고, 자기 관심이 옮겨가는 과정을 겪을 시간이 있다.
그래서 잠든 왕빙 곁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도 눈에 남는다. 촬영의 중심에 있던 감독이 잠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그곳의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 정성일의 영화 역시 왕빙이 모든 상황을 이끌어가는 인물인 것처럼 꾸미지 않는다. 그도 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 사람이다.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왕빙의 작업을 설명할 말이 많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남는 것은 한겨울에 사람을 만나러 다니던 한 사람의 하루다.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면, 붐비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순간만 기다려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먼 길을 가고, 말을 나누고,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는 시간까지 함께 있어야 했다.
◆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길 — 이동 장면에서 도착지만 기다리기보다 풍경과 빛이 바뀌는 과정을 보자. 촬영을 위한 이동도 감독의 하루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데 필요한 거리와 시간이 영화를 만드는 일 안에 들어온다.
◆ 말을 나누는 왕빙의 몸 — 왕빙이 사람과 대화하다 촬영으로 이어가는 모습을 살펴보자. 카메라를 든 사람과 그 앞에 있는 사람이 한 화면에 들어오면,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거리와 기다림도 보인다. 완성된 작품의 인물만 볼 때는 알기 어려운 관계다.
◆ 영화에 관한 말과 현장의 차이 — 왕빙이 자기 작업을 설명한 뒤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라가보자. 말한 원칙을 확인하는 것 외에도, 사람을 찾아가는 이동과 촬영을 준비하는 시간도 볼 수 있다. 촬영은 생각을 실행하는 일이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 잠든 사람과 깨어 있는 주변 — 왕빙이 잠든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얼굴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주변의 움직임도 함께 보자. 감독이 쉬는 동안에도 그가 찾아온 곳의 일상은 이어진다. 이 영화가 기록하는 시간은 한 사람의 작업 성과로만 나눌 수 없다.
◆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2008, 아녜스 바르다) — 감독이 자신의 기억과 작업을 직접 돌아본다. 기억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장소를 꾸미며 또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 다른 감독의 일상을 따라간 〈천당의 밤과 안개〉와 달리, 스스로를 카메라 앞에 놓았을 때 가능한 장난과 고백을 만날 수 있다.
◆ 〈히치콕 트뤼포〉 (2015, 켄트 존스) — 두 감독의 대화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선택들을 살핀다. 말과 작품의 장면을 오가며 연출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왕빙의 현장에 긴 시간을 머무른 뒤 이어 보면, 대화로 배울 수 있는 것과 현장을 지켜보며 알게 되는 것을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