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을 내주는 대신 손님의 기억을 듣겠다는 바텐더가 있다. 〈아무도 없는 곳〉의 주은(이주영)은 사고로 자기 과거의 일부를 잃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기억을 모은다. 그 …
술 한 잔을 내주는 대신 손님의 기억을 듣겠다는 바텐더가 있다. 〈아무도 없는 곳〉의 주은(이주영)은 사고로 자기 과거의 일부를 잃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기억을 모은다. 그 앞에 앉은 손님은 소설가 창석(연우진)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는 사람이 이번에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가 됐다. 쉽게 건넬 수 있는 추억을 고르면 좋겠지만, 입을 열기 전에는 무슨 말이 나올지 자신도 모를 수 있다.
창석은 영국을 떠나 오랜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사람들을 만나고, 걷고, 또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 이 영화의 대화에는 급히 내려야 할 결론이 별로 없다. 이야기를 듣는다고 상대가 겪은 일을 바꿔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자리를 뜨기가 어렵다. 말을 마친 사람이 어떤 얼굴로 앉아 있을지, 조용히 듣던 창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주은의 제안에는 뜻밖의 친근함이 있다. 과거를 묻는 질문은 때로 무례하지만, 그는 술 한 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청한다. 자기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 사정도 먼저 꺼낸다. 그러고 나면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 자리인지 쉽게 가르기 어렵다. 손님에게 술을 내는 사람이 자기 결핍을 이야기하고, 듣기만 하던 손님도 자기 안의 것을 내놓을 여지가 생긴다.
주은은 시를 쓰기도 한다. 기억을 잃었으니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일 것이라는 짐작은 들어맞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과 지금 느끼는 감정으로도 자기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주영은 주은이 시를 읽을 때 자기 세계에 지나치게 빠진 사람처럼 보이기보다 담백하게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시를 쓰는 행동이 술을 따르고 대화를 나누는 일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대목에서는 소설가인 창석의 직업도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재료로 삼는 일에는 창석과 주은이 닮은 구석이 있다. 다만 영화는 그 재료를 얼마나 근사한 작품으로 바꾸는지 보여주는 데 서두르지 않는다.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먼저다. 술잔이 오가는 짧은 거래 안에도 망설임과 호기심, 예상치 않은 고백이 들어갈 수 있다.
남의 이야기는 내 과거를 대신해주지 못한다. 그래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들을 수는 있다. 오래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을 잃은 사람이 마주 앉았을 때 생기는 일은 그래서 단순한 위로보다 흥미롭다. 한쪽만 내어주고 다른 쪽만 받는 관계가 아니다. 말해볼 자리가 생긴 창석에게도 이 만남은 필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편집자 유진(윤혜리)은 지나간 연애를 이야기하며 창석과 담배를 나눠 피운다. 담배는 헤어진 연인이 남기고 간 것이다. 갑 안에 남은 작은 물건이지만 거기에 딸린 사연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피우는 동안에는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이 다시 이야깃거리가 된다. 아직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끝난 관계가 현재의 생활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장면에서 저녁빛은 점점 약해진다. 영화는 두 사람이 어둠에 잠기는 과정을 중간에 잘라내지 않는다. 감독 김종관은 해 질 녘의 변화를 한 번에 찍기 위해 하루에 한 차례 주어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대화의 내용만 남길 생각이었다면 굳이 그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는 빛이 줄어드는 만큼 장면을 보는 방법도 달라진다.
밝을 때는 상대의 표정을 읽으려 한다. 얼굴이 흐려지면 말소리와 말 사이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배우의 감정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화면을 밝히는 대신, 잘 보이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둔다. 무엇을 느끼는지 전부 알아볼 수 없어도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남는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계속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대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둡다고 모두 무섭거나 막막한 것은 아니다. 무슨 표정을 해야 할지 몰라 누군가를 마주하기 힘든 때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장면을 보면, 얼굴을 자세히 보이지 않고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지나간 사랑의 사연을 설명하던 영화가 어느 순간 지금 함께 있는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창석은 오래된 카페에서 만난 미영(이지은)의 말을 듣고, 사진가 성하(김상호)의 이야기도 듣는다. 성하에게는 아픈 아내가 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창석이 먼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대화는 아니다. 말을 듣는 동안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반응이 인물들 사이를 이어준다.
연우진은 상대 배우의 연기에 자리를 내주는 쪽을 택했다. 김종관 감독 역시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하는 행동만큼 듣고 반응하는 연기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창석이 말수를 줄인다고 화면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 뒤에 바로 답하지 않는지, 언제 상대에게 더 말할 시간을 주는지 보게 된다. 대사를 잘 전달하는 배우뿐 아니라 대사가 오게끔 기다리는 배우도 대화의 리듬을 만든다.
조용한 사람을 속사정 없는 사람으로 착각하기는 쉽다. 창석도 계속 남의 말을 듣는 동안에는 관객에게 그런 인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서울로 돌아오기 전의 생활과 아직 꺼내놓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의 고백을 받아주는 역할이 창석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가 그를 따라 걸으며 남겨두는 침묵에는, 이제 그의 말도 들어볼 차례라는 기다림이 담긴다.
창석이 드나드는 공중전화 부스는 그런 기다림에 어울리는 장소다.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오래된 전화기를 장식처럼 구경하는 것과, 그 안에 들어가 수화기를 드는 일은 다르다. 직접 말을 시작하면 비어 있던 공간에도 듣는 사람이 있다는 상상이 생긴다.
이 영화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자리를 떠난 뒤에는 다시 혼자가 된다. 잠시 함께 있었다고 상실이 정리되거나 생활이 새로 시작됐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그래도 남의 기억을 한 가지 더 알게 됐고, 자기 이야기를 해도 될 자리를 한 번 만났다. 주은의 술 한 잔이 오래 생각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억을 팔았어도 그 기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제 그것을 들어본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 주은이 건네는 뜻밖의 거래 — 술과 기억을 교환하자는 제안 뒤에 대화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자. 손님과 바텐더라는 역할만으로는 두 사람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자기 사정을 먼저 꺼내는 것이 상대의 말을 부르는 방식에도 관심을 둘 만하다.
◆ 빛이 사라지는 동안의 목소리 — 유진과 창석의 담배 장면에서는 화면이 어두워질수록 무엇에 집중하게 되는지 느껴보자. 표정을 읽던 눈에서 말소리를 듣는 귀로 관심이 옮겨간다. 대화를 이해하는 것과 두 사람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 연우진이 답을 서두르지 않는 순간 — 창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만큼 말하지 않는 동안에도 주목해보자. 상대에 따라 대화의 기운과 속도가 달라진다. 듣는 사람이 장면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면, 조용한 주인공의 역할이 더 선명해진다.
◆ 혼자 들어가는 공중전화 부스 — 사람이 없던 장소에 창석이 들어설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자. 누군가에게 말하려는 행동만으로도 공간의 용도가 살아난다. 말하는 사람만 보이는 통화가 앞선 대면 장면들과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볼 수 있다.
◆ 〈더 테이블〉 (2016, 김종관) — 같은 카페의 한 테이블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거쳐간다. 공간은 머물고 사람이 바뀌는 이 영화를 함께 보면, 한 사람이 여러 장소로 이동하는 〈아무도 없는 곳〉의 구성이 더 잘 드러난다. 대화의 내용뿐 아니라 앉는 자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관계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살펴볼 만하다.
◆ 〈달이 지는 밤〉 (2020, 김종관·장건재) — 서로 다른 사람들이 무주의 밤을 지나며 누군가를 만나고 떠난다. 이곳에서도 현재의 대화에 과거의 사람이 함께 떠오른다. 두 영화가 기억을 회상 장면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목소리와 만남으로 전하는 방식에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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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