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관이 배우 김동영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배우가 활짝 웃었다. 김종관은 그 웃음이 영화에 한…
김종관이 배우 김동영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배우가 활짝 웃었다. 김종관은 그 웃음이 영화에 한 번만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부신 하루〉에 실린 그의 단편 〈엄마찾아 삼만리〉에서 김동영은 일본에 있는 엄마를 찾아가려는 소년 종환을 맡았다. 만나기 전 각본에 적어둔 설명보다, 눈앞의 배우가 보인 변화가 인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된 순간이다.
김종관의 영화에는 길에서 마주치거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다 보면, 말을 멈췄을 때 얼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궁금해진다. 웃음 하나를 기억해두고 배우에게 역할을 맡긴 감독은 그런 작은 변화를 어디서 발견하고 어떻게 화면에 남길까.
〈엄마찾아 삼만리〉를 만들 때 김종관은 먼저 이야기의 구조를 잡고 배우들의 성격에 맞춰 캐릭터를 구체화했다고 밝혔다. 종환과 함께 다니는 영수 역의 정대훈에게서는 가벼운 행동에도 그늘이 느껴질 수 있겠다고 보았다. 김동영에게서 발견한 웃음과 정대훈에게서 기대한 무게가 서로 다른 두 소년의 모습을 만드는 재료가 됐다.
종환은 하루 동안 영수와 함께 다니며 엄마를 만나러 갈 돈을 마련하려 한다. 김종관은 김동영의 밝은 웃음을 영화 속 두 번의 헤어짐에 남겼다고 설명했다. 말수가 적고 속을 읽기 어려웠던 얼굴이 웃을 때, 소년은 그전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표정이 늘 같은 정도로 밝았다면 그 변화가 차지할 자리는 작았을 것이다. 감독은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알아차린 차이를 관객도 만날 수 있게 했다.
역할의 설명을 더 붙이는 대신, 평소 읽히지 않던 얼굴에서 웃음이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인물을 이해할 실마리가 대사 밖에도 있다는 믿음이 이 캐스팅에 담겨 있다.
〈최악의 하루〉에서 한예리가 맡은 은희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계속 걷는다. 김종관은 기획할 때부터 걷는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소 혼자 걸으며 기분을 환기하는 자신의 경험도 여기에 들어갔다. 누군가를 만난 뒤의 감정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몸에 남는다는 점에 관심을 둔 것이다.
걷는 장면을 만나기 위한 이동으로만 보면, 앞선 대화가 끝나고 다음 대화가 시작될 때까지의 틈이다. 그러나 배우의 걸음에 눈을 두면 그 틈에도 인물을 볼 일이 생긴다. 방금 상대에게 보인 모습과 혼자 움직일 때의 모습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피게 된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상황을 모면하려는 은희의 말과, 그 말을 하고 난 뒤 길 위에 남은 몸을 함께 보는 재미다.
한예리의 몸짓은 감독이 준비한 촬영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후반부의 무용 장면을 여러 컷으로 나눌 생각이었지만, 무용을 전공한 배우의 움직임을 현장에서 본 뒤 김종관은 한 번에 오케이를 했다. 배우가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판단한 순간 준비해둔 분할 계획을 고친 것이다.
앞서 김동영의 웃음은 캐릭터를 구체화할 재료가 됐다. 한예리의 춤은 장면을 찍는 방법에 영향을 줬다. 배우에게서 발견한 것이 각본을 준비하는 단계와 촬영 현장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들어온다. 김종관의 연출을 대화의 섬세함으로 기억하더라도, 그 대화를 맡은 사람의 얼굴과 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함께 볼 만하다.
길을 걷던 인물들을 자리에 앉힌 듯한 〈더 테이블〉에서는 다른 고민이 생긴다. 하루 동안 같은 카페의 테이블에서 네 번의 만남이 이어진다. 김종관은 에피소드마다 차이를 주면서도 한 편의 영화로 묶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공간이 크게 바뀌지 않는 만큼 빛의 색과 촬영 패턴, 얼굴을 가까이 보는 각도를 조금씩 달리했다.
같은 테이블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차이를 알아보는 기준이 된다. 대화의 상대와 내용이 바뀌고, 그 사람들을 둘러싼 하루의 빛도 바뀐다. 감독은 테이블 위 꽃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했다. 눈은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앞선 만남 때 보았던 자리를 기억한다. 그렇게 네 이야기를 이어주는 것은 줄거리의 연결만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시간이 흘렀다는 감각이다.
김종관이 가까운 얼굴을 필요로 한 이유는 대사 사이의 눈빛과 표정에 있었다. 그는 배우들이 대본의 문장뿐 아니라 그 사이에 놓인 감정까지 읽어주었다고 평가했다. 들리는 말을 따라가면서 듣는 사람의 반응을 보려면, 관객의 시선이 머물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카페라는 작은 무대는 배우에게 감정을 크게 설명할 기회를 주기보다 작은 변화가 잘 보이게 한다.
이 작업에서 그는 출연자들에게 고마움과 책임감을 함께 느꼈다고 말했다. 작은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의 선택이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기를 바랐던 것이다. 영화가 배우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만큼, 배우가 건넨 것을 영화가 얼마나 잘 담아낼지도 연출의 문제가 된다. 〈더 테이블〉의 대화가 끝난 뒤 어떤 얼굴이 떠오른다면,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와 함께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잠시 보인 표정도 되짚어볼 수 있다.
◆ 종환의 웃음 — 〈눈부신 하루〉의 〈엄마찾아 삼만리〉에서 종환이 웃을 때를 살펴보자. 말로 드러나지 않았던 소년의 모습이 잠깐 열리는 순간이다. 감독이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무엇을 발견했는지 영화 속 표정과 연결할 수 있다.
◆ 대화 뒤의 걸음 — 〈최악의 하루〉에서 은희가 사람을 만난 뒤 걷는 속도와 몸의 힘을 비교해보자. 상대에게 말로 상황을 모면할 때와 길을 걸을 때, 같은 사람이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 볼 수 있다. 재즈풍 음악의 가벼운 리듬이 더해지면 은희의 곤란한 하루가 어떻게 경쾌해지는지도 들어볼 만하다.
◆ 말 대신 춤을 볼 때 — 후반부 은희가 춤추는 장면에서는 얼굴에 쏠렸던 눈을 팔과 다리의 움직임까지 넓혀보자. 앞선 대화에서는 은희의 말을 믿어도 될지 생각했다면, 여기서는 몸이 만드는 리듬을 따라가게 된다. 곤경을 빠져나가려 말을 고르던 사람과 춤추는 사람을 볼 때 느껴지는 차이에 주목해보자.
◆ 테이블 위의 시간 — 〈더 테이블〉의 네 만남에서 빛과 꽃, 얼굴을 보는 각도를 비교해보자.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보기에 오히려 주변의 작은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 〈최악의 하루〉 (2016, 김종관) — 걷는 인물의 몸과 배우의 움직임에서 연출의 방향을 찾는 영화. 대화가 끝난 뒤에도 은희의 하루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 〈더 테이블〉 (2017, 김종관) — 길 대신 한 테이블에 머물며 사람을 보는 영화. 공간의 범위가 줄었을 때 김종관이 빛과 표정에 어떤 차이를 두는지 비교할 수 있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