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효봉(임경신)이 죽여야 했던 사람 중에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옛 검객도 있다. 아버지는 그를 죽여야 집안의 명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상대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는 중요하지…
사효봉(임경신)이 죽여야 했던 사람 중에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옛 검객도 있다. 아버지는 그를 죽여야 집안의 명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상대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를 꺾었는지가 강자의 증거인 세계에서, 이름난 검객은 물러난 뒤에도 누군가의 목표로 남는다. 천하제일검으로 불리던 사효봉도 결국 그 세계를 떠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찾아가던 일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으리라 믿기 어렵다.
〈소드 마스터: 절대강호의 죽음〉에서 그를 찾아가는 연십삼(하윤동)은 대결을 간절히 원한다. 그런데 사효봉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쪽은 이름을 버리고 싶고 다른 쪽은 바로 그 이름과 겨뤄야 한다. 만나기 전부터 어긋난 두 검객의 바람이 영화의 흥미로운 출발점이다.
사효봉은 신분을 감추고 아길이라는 이름으로 산다. 강호의 칭송 대신 그에게 붙는 말은 ‘쓸모없다’는 평가다. 검을 잘 쓰는 능력과, 그 능력을 쓰지 않고 살아갈 능력은 다른 모양이다. 천하제일이라는 자리를 내려왔다고 곧바로 편안한 생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임경신은 이 인물을 연기할 때 영화가 이미 몰락한 아길에게서 시작한다는 점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영광과 추락의 과정을 차례대로 연기하는 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객이 먼저 보는 것은 전설의 검객다운 위세보다 그 자리를 떠난 뒤의 모습이다. 나중에 그의 사정을 알아갈수록 무기력한 인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싸울 힘이 없어서 이러는지, 힘을 쓰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지 구분해야 한다.
배우는 사효봉을 아버지의 도구처럼 살다가 그 삶을 견디지 못해 달아난 사람으로 이해했다. 앞서 은퇴한 검객을 죽인 사연은 그 설명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는 가문의 위상을, 아들은 실제로 베어야 하는 한 사람을 마주한다. 명예라는 말과 칼을 휘두르는 행위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사효봉이 그만두려는 일에는 승부뿐 아니라, 남이 정한 목표를 자기 손으로 완수하는 생활도 포함돼 있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 곁에서 살 가능성을 발견하는 동안, 과거의 관계는 계속 따라붙는다. 돌아오라는 요구를 전부 적의 공격으로 묶을 수도 없다. 집안과 연인, 도전자에게는 각각 그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다. 그 이유들을 하나씩 살피면, 뛰어난 검술로도 해결하기 힘든 사정이 보인다.
옛 연인 모용추적(강일연)은 사효봉이 놓아버리고 싶은 세계와 깊이 연결돼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기억과 버림받은 분노가 함께 있다. 사효봉이 가문의 요구에서 도망친다고 해서 자신이 상처 준 사람과의 관계까지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임경신은 모용추적에게 감정이 남아 있어도 그녀의 행동에 동의할 수 없어서 함께할 수 없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염두에 두면, 헤어진 연인을 향한 태도가 단순한 미움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 있었느냐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느냐는 다른 질문이다. 두 사람의 다툼에서는 과거의 감정만큼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려 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 서극 감독은 모용추적을 강한 소유욕을 품은 완벽주의자로 설명했다. 그가 사랑하는 사효봉의 모습에는 상대가 스스로 버리고 싶어 하는 지위도 들어 있다. 이때 돌아오라는 말은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바람인 동시에, 상대가 떠나려는 삶으로 다시 데려가는 요구가 된다. 사효봉이 지쳐 있다는 사실과 모용추적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함께 보아야 이 관계가 선명해진다.
반면 아길이 된 뒤 만나는 소려(장몽첩)는 그의 다른 시절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누가 더 좋은 연인인지 겨루게 하기보다, 두 사람이 사효봉의 어떤 모습을 알고 있는지 비교해 볼 만하다. 이름 높은 검객으로 기억하는 사람과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접한 사람에게, 같은 남자의 선택이 똑같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연십삼에게 사효봉의 은퇴는 또 다른 의미다. 그가 싸우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평생 그를 넘어서려 했던 도전자에게는 겨룰 상대가 사라진다. 연십삼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바라던 대결은 혼자 완성할 수 없다. 이 관계를 보며 사효봉의 결심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사건인지 실감하게 된다.
영화는 검객들이 머릿속에서 읽는 검술까지 이미지로 보여주려 한다. 먹으로 그린 듯한 사람이 나타나 움직이는 표현이 그 예다. 이동승 감독은 상대의 검술을 알아보는 과정을 관객에게 드러내려고 이 방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눈앞의 몸끼리 부딪치는 싸움에, 상대의 수를 이해하는 과정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 형상을 만들 때는 실제 사람의 동작을 자료로 찍고, 사람이 그대로 해낼 수 없는 움직임까지 설계했다고 한다. 여기서 특수효과는 기술의 크기를 자랑하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 검객이 상대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전하는 방법이 된다. 칼이 오간 결과와 그 전에 상대를 읽는 순간을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동승은 1977년판 〈삼소야적검〉에서 바로 사효봉을 연기했던 배우다. 이번에는 자신이 했던 배역을 다른 배우에게 맡기고 연출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진 계기로 꼽은 것은 추억만이 아니었다. 서극의 3D 촬영을 보고 이 이야기를 새롭게 보여줄 방법이 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오래된 인물에게 돌아가는 일과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찾는 일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검을 두 방향에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익히고 겨루는 기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과 연인과 라이벌이 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검술을 알아보는 눈이 정교해지는 만큼, 그 검을 계속 쓰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사정도 가까이 들여다보자. 누가 더 강한지 궁금해하던 시선이, 강한 사람은 어디까지 자기 삶을 고를 수 있는지로 옮겨갈 수 있다.
◆ 먼저 만나는 아길의 모습 — 영화는 명성이 쌓이는 과정을 처음부터 차례로 보여주지 않는다. 아길의 처지를 먼저 본 뒤 사효봉의 과거를 알게 될 때, 처음의 무기력함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살펴보자.
◆ 서로 다른 복귀 요구 — 가문과 모용추적, 연십삼이 원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일이 아니다. 사효봉이 돌아왔을 때 각자가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비교하면 인물 관계를 따라가기 쉽다.
◆ 모용추적과 소려가 아는 얼굴 — 한 사람은 사효봉의 과거와, 다른 사람은 아길의 생활과 만난다. 같은 주인공이 누구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여겨지는지 보자. 연애 관계 안에도 신분의 문제가 있다.
◆ 먹으로 그린 듯한 검객 — 검술을 이해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실제 대결과 이 형상을 함께 보며,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일이 검객에게 어떤 능력인지 살필 수 있다.
◆ 〈기문둔갑〉(2017), 원화평 감독 —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연합이 서로를 믿는 문제와 만난다. 특수효과의 화려함과 그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함께 즐길 수 있다.
◆ 〈용문비갑〉(2011), 서극 감독 — 여러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사막의 객잔으로 모인다. 검객의 움직임과 공간을 확장하는 시각적 상상력을 이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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