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포트레이트〉의 화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제프리 러쉬)는 미국인 작가 제임스 로드(아미 해머)에게 초상화 모델을 제안한다. 때는 1964년, 로드는 파리를 방문한 중이다. …
〈파이널 포트레이트〉의 화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제프리 러쉬)는 미국인 작가 제임스 로드(아미 해머)에게 초상화 모델을 제안한다. 때는 1964년, 로드는 파리를 방문한 중이다. 며칠만 앉아 있으면 된다니, 여행 중에 그보다 특별한 기념품도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 화가가 자기가 그린 얼굴을 좀처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는 붓으로 얼굴을 그리다가 굵은 붓에 회색 물감을 묻혀 덮어버린다. 모델은 같은 자리에 있는데 그림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화가에게는 더 그려야 할 이유가 생겼고, 모델에게는 돌아갈 일정이 있다. 스탠리 투치 감독은 이 난처한 만남에서 예술가를 다룬 영화의 뜻밖의 웃음을 끌어낸다. 그림이 어떻게 완성될지 궁금한 만큼, 저 남자가 언제 의자에서 풀려날 수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자코메티라는 이름을 알고 작업실에 들어가면 훌륭한 솜씨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화가는 불평과 욕설을 쏟아낸다. 남들이 인정하는 명성과 자신이 눈앞에서 보는 그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러쉬는 그 차이를 점잖은 고뇌로만 연기하지 않는다. 불만을 터뜨리고 성질을 내는 모습에는 아이 같은 구석이 있어, 대가를 만나러 왔다가 심술궂은 사람에게 붙들린 듯한 기분이 든다.
로드는 화가의 판단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자기 얼굴을 그리는 일이지만, 어디가 잘못됐고 얼마나 더 손봐야 하는지는 그가 결정할 수 없다. 그럴듯하게 나타난 얼굴이 다시 지워질 때면 허탈하다. 한동안 앉아 있었던 시간이 물감 아래로 사라져버린 것 같다. 화가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멋있지만, 그 곁에서 계속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곳은 두 사람의 사정이 동시에 보이는 순간이다. 자코메티가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을 무시할 수 없고, 로드가 이제 그만 끝났으면 하는 마음도 이해된다. 화가의 기준을 존중할수록 모델의 체류는 길어진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정리하기 어려워서, 붓이 다시 캔버스에 닿을 때마다 기대와 불안이 함께 생긴다.
그렸다가 지우는 장면이 이어진다고 해서 영화가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은 아니다. 관객은 점점 결과보다 작업의 작은 변화에 예민해진다. 이번에는 얼굴의 어느 부분에 붓이 머무는지, 화가가 언제 불만을 느끼는지, 모델은 그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유명인의 초상화를 기다렸다면, 어느새 두 사람의 하루를 지켜보고 있다.
투치는 로드가 이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화가가 무엇을 보았는지 전부 설명하기보다, 그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겪은 시간을 따라간다. 이 선택 덕분에 미술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자세를 유지하는 일, 오늘은 끝날지 몰라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는 일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머의 큰 몸이 화가 앞에 얌전히 놓이고, 러쉬는 그 얼굴을 보고 손을 움직인다. 모델은 가만히 있는 듯해도 상대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 화가는 혼자 작업하는 것 같지만 누군가의 시간을 빌리고 있다. 초상화를 그리는 두 사람의 관계가 대화 못지않게 자세와 움직임으로 드러난다. 그림 속 얼굴에만 집중했다면 놓쳤을 노동이다.
이 영화의 자코메티는 작품에만 몰두하는 외로운 천재로 정돈되어 있지 않다. 아내 아네트(실비 테스튀)와의 관계에는 무심함과 이기심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놀랄 만큼 관대하다. 투치는 바로 그런 모순에 관심을 두었다고 말했다. 예술에 진지하다는 사실이 함께 사는 사람에게도 좋은 남편이라는 뜻은 아니다. 영화는 그 간격을 작품의 위대함으로 덮어주지 않는다.
로드에게도 작업실 밖의 생활이 있다. 그가 남자친구와 나누는 전화는 화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음을 알린다. 화가와 모델의 만남을 오래 보고 있으면 이 방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지만, 로드가 계속 머무르려면 다른 약속은 미뤄져야 한다. 화가가 좀 더 그리겠다는 한마디에는 여러 사람의 시간이 걸려 있다.
이런 사정들이 그림을 초라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완성된 작품만 볼 때는 알기 어려운 주변의 수고가 보인다. 한 사람은 그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한 사람은 떠날 때를 놓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기다린다. 예술가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은 붓을 든 손뿐 아니라 그 손 때문에 달라지는 일상도 보는 일이다.
〈파이널 포트레이트〉를 보고 나면 지워진 얼굴들이 아깝게 느껴진다. 화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었겠지만, 관객은 그 얼굴이 나타나기까지 걸린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완성된 한 점에는 남은 붓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번 덮어버린 얼굴과 끝나기를 기다렸던 사람의 하루도 들어 있다. 초상화 속 로드가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이제는 마냥 고요하게 바라보기 어렵다. 저 자리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우리는 조금 알게 되었으니까.
◆ 그리는 붓과 덮는 붓 — 얼굴의 형태가 나타났다 회색 물감에 가려지는 과정을 보자. 화가가 다시 시작할 때 모델의 시간도 길어진다. 완성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과정만 상상했다면, 이미 그린 것을 없애는 행동이 두 사람에게 각각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 화가의 불평을 듣는 모델 — 자코메티의 말만큼 로드가 그 말을 받아들이는 모습에도 관심을 기울여보자. 모델은 그림의 완성도를 판정할 권한이 없지만 작업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지쳐가는 상황에서 이 영화 특유의 조용한 웃음이 생긴다.
◆ 의자에 앉아 있는 몸 — 움직임이 많은 화가와 자리를 지키는 모델을 함께 보자. 가만히 있는 쪽도 시간을 내고 상대의 요구에 응하고 있다. 초상화가 예술가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다는 익숙한 생각을, 화면 속 두 몸이 조금 넓혀준다.
◆ 방 밖으로 이어지는 전화 — 로드가 다른 사람과 연락할 때 작업실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자. 여기서 기다리는 시간이 다른 곳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가에게 필요한 시간이 모델에게도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 〈공드리의 솔루션북〉 (2023, 미셸 공드리) — 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감독이 자꾸 다른 계획에 몰두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곁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업무가 된다. 창작자의 고집을 따뜻하게 바라보면서도 주변 사람의 피로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어볼 만하다.
◆ 〈에드워드〉 (2015, 카일 라이드아웃) —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작업과 삶을 다룬다. 움직이는 몸을 사진으로 붙잡으려는 시도가 촬영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와 함께 펼쳐진다. 사람의 모습을 남기는 기술에 관심이 생겼다면, 화가의 작업실에서 카메라 앞의 실험으로 시선을 옮겨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