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친구가 생겼는데, 공범이 됐다 | MovieLAB LAB

혼자 살던 세 노인에게 밥친구가 생겼다. 〈사람과 고기〉의 형준(박근형)과 우식(장용)은 폐지를 줍고, 화진(예수정)은 길에서 채소를 판다. 혼자 살아가던 세 노인은 형준의 집에…

밥친구가 생겼는데, 공범이 됐다 | MovieLAB LAB

혼자 살던 세 노인에게 밥친구가 생겼다. 〈사람과 고기〉의 형준(박근형)과 우식(장용)은 폐지를 줍고, 화진(예수정)은 길에서 채소를 판다. 혼자 살아가던 세 노인은 형준의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먹으며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번에는 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기로 한다. 문제는 그럴 돈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 이들의 다음 식사에는 무전취식이라는 계획이 붙는다.

돈을 내지 않고 달아날 생각을 하면서도 식탁에서는 먹고 떠드는 일이 즐겁다. 들키면 큰일이라는 긴장과 오랜만에 신이 난 얼굴을 함께 보게 된다. 연출을 맡은 양종현은 이 곤란한 식사를 노년의 범죄 코미디로 만들었다. 누가 세 사람을 구해주러 오기 전에, 이들끼리 먼저 일을 벌인다. 조용히 하루를 버티던 사람들이 왜 굳이 이렇게 소란스러워졌는지 궁금해진다.

국 한 냄비로 시작된 사이

형준과 우식은 처음부터 서로를 반기는 친구가 아니다. 입씨름을 하고 주먹다짐까지 벌인다. 나이가 비슷하고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다정한 사이가 되지는 않는다. 서로의 고집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앉는 과정에서, 이 영화의 우정은 조금씩 시작된다.

소고기뭇국이 그 만남의 계기라는 점이 좋다. 거창한 사연을 털어놓거나 서로를 돕겠다고 약속해야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같이 먹을 음식이 있다. 혼자 끼니를 때우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같은 음식을 먹으면, 맛에 관해 말할 상대도 생긴다. 형편을 설명하는 말보다 밥 먹는 동안 오가는 말이 먼저 두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화진이 합류하면 남자 둘의 신경전은 세 사람의 대화가 된다. 함께 일을 벌인 뒤에도 셋의 생각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형준과 화진이 무전취식을 그만두려 할 때 우식은 이만큼 가슴 뛰는 일이 있었느냐며 아쉬워한다. 누구에게는 이제 그만할 일인데 누구에게는 놓치기 싫은 즐거움이다. 박근형과 장용, 예수정의 대화를 따라가면 한편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마음이 보인다.

한 번 더 먹고 싶은 마음

이들의 목표는 돈을 크게 벌거나 신분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고기를 먹고 싶다. 범죄 영화에서라면 사소해 보일 이 목표가 세 사람에게는 하루의 큰 사건이 된다.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집 밖으로 나가고, 만날 사람을 기다리는 일까지 식사에 딸려온다. 고기 한 끼의 값에는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외출의 즐거움도 걸려 있다.

그래서 무전취식이 반복될수록 단순히 배가 고파서 벌이는 일이라고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배를 채우는 일에 더해 셋이 함께 들뜨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돈이 없는 사정이 눈에 들어오지만, 갈수록 다음 만남을 놓치기 싫은 마음에도 관심이 간다. 친구를 사귀면 삶이 좋아진다는 익숙한 말이, 이 영화에서는 꽤 위험한 방향으로 실현된다.

물론 즐거운 식사에도 계산서는 남는다. 그 값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세 사람을 좋아하게 될수록 들키지 않기를 바라게 되지만, 무전취식을 멋진 해결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코미디의 긴장은 그 불편함을 품고 있다. 범행에 찬성해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방금 알게 된 이 사람들의 즐거움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걱정하며 보게 된다.

이 차이를 세 배우의 얼굴이 붙잡아준다.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눈앞의 즐거움에 들뜨는 순간이 있다. 나이가 많다고 늘 사려 깊게 행동하지도 않고, 형편이 어렵다고 먹고 싶은 마음까지 줄어들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인물들을 가까이 데려오는 방식은 그런 작은 욕심을 숨기지 않는 데 있다.

거리의 좌판 옆에 앉은 세 사람

식당 문턱에서도 멈칫하는 사람들

식당에 들어간 세 사람이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방법을 몰라 돌아나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는 계산을 피하려는 꾀보다 주문 한 번의 어려움이 먼저 보인다. 음식을 먹으려면 메뉴를 읽고 원하는 것을 말하면 되리라 여겼는데, 그 사이에 익숙하지 않은 기계가 놓였다. 셋이 함께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곤란함이다.

계산을 하지 않고 달아나는 배짱과, 주문조차 하지 못하는 망설임이 같은 사람들에게 있다. 무전취식 장면과 나란히 떠올리면 키오스크 앞의 곤란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고기를 먹으러 가는 단순한 일이 이들에게 늘 단순하지는 않다. 돈이 부족한 데다 익숙하게 할 수 있던 일의 방식도 바뀌었다. 영화는 그 변화를 길게 설명하는 대신, 들어갔다가 도로 나오는 행동 안에 담는다.

폐지를 줍는 형준이 게이트볼을 하는 노인들을 바라보는 모습도 같은 생활의 일부다. 거리에는 형준처럼 일하는 사람도, 모여서 운동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나이 들었다는 설명만으로 이들의 하루가 같아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와 놀 시간이 있다는 것, 그 시간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형준의 눈길을 통해 새삼 부러워진다.

방 안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세 사람

셋이 먹을 때 생기는 소란

〈사람과 고기〉의 식탁에서는 허기를 채우는 일과 외로움을 달래는 일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혼자 먹을 때와 달리 누군가의 말을 듣고, 마음에 안 들면 받아칠 수 있다. 처음부터 서로 잘 맞았던 사이가 아니어서 그 소란은 더 반갑다. 착하고 말 잘 듣는 친구여서 함께하는 게 아니라, 서로 성가셔하면서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범행의 기발함보다 함께 먹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을 수 있다. 그래도 고기를 빼고 우정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그냥 누군가와 만나고 싶은 데 그치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만나고 싶다. 사치 같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작고, 필요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바람이다.

다음 끼니에도 셋이 마주 앉으면 좋겠다. 돈 걱정 없이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남의 접시에 간섭하며 시답잖은 말다툼을 계속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이 영화가 남기는 식욕에는 그런 시끄러운 식탁에 대한 바람도 섞여 있다.

감상 포인트

◆ 친구가 되기 전의 다툼 — 형준과 우식의 초반 관계를 기억해두자. 비슷한 처지라는 이유로 곧바로 서로를 이해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함께 식탁에 앉았을 때도 각자의 고집이 남아 있기에, 처음의 말다툼을 돌아보면 친해진 뒤 달라진 점과 그대로인 점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 맛있게 먹는 얼굴, 들킬까 걱정하는 얼굴 — 식사의 즐거움과 범행의 불안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보자. 세 사람이 신날수록 관객도 마음을 보태지만 계산서를 떠올리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코미디가 인물에 대한 호감과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함께 움직이는 대목이다.

◆ 키오스크 앞의 망설임 — 주문을 하지 못하고 돌아나오는 행동에 주목해보자. 식당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소동이지만, 이번에는 대담한 범행과 다른 종류의 곤란함이 있다. 세 사람에게 외식이 어려운 이유가 돈 한 가지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짧게 보여준다.

◆ 누군가의 여가를 바라보는 시선 — 형준이 게이트볼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장면을 살펴보자. 그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과 다른 노인들의 생활이 한 영화 안에 놓인다. 형준에게 필요한 것이 한 끼의 음식뿐인지, 일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도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

관련 작품

◆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아녜스 바르다) — 버려진 물건과 먹거리를 줍는 사람들에게 카메라가 다가간다. 같은 행동에도 생계, 취향, 신념처럼 서로 다른 사정이 있다. 한 가지 형편만으로 사람을 설명하지 않으려는 시선과, 그 사람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이어볼 수 있다.

◆ 〈아웃 오브 튠〉 (2019, 프레더릭 애스폭) — 교도소 합창단의 노래에는 단원들의 자존심과 경쟁심이 함께 섞인다. 한 공간에 모인다고 바로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도 함께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다툼과 협력이 어떤 코미디를 만드는지 비교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